한국 보수가 전통을 혐오하고 외세를 추종하는 이유

자기 부정 문명서사에 빠진 한국 신보수

by 김욱

보수주의의 본질은 이름 그대로 자국의 역사와 전통을 ‘보존’하고 계승하는 데 있다.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GA)"를 외치는 미국식 ‘미국 우선주의’든, 자국 문명의 독자성을 강조하는 일본의 보수 담론이든, 세계 보편의 보수주의는 자국 문명에 대한 강한 자부심을 기반으로 작동한다. 그들에게 ‘전통’은 극복해야 할 과거가 아니라, 현재의 정체성을 규정하고 미래를 지탱하는 뿌리다.


그러나 한국의 보수는 이 보편적 정의에서 기이할 만큼 벗어난 모습을 보인다. 자국의 역사와 전통을 긍정하고 계승하기보다, 오히려 ‘극복’과 ‘청산’의 대상으로 규정하는 데 앞장선다. 그 자기 부정의 정점에 놓인 것이 바로 ‘조선’이다. 조선은 이들에게 구제 불능의 무능과 정체, 패배와 종속의 대명사로 소비된다.


이러한 인식 위에서 ‘식민지 근대화론’과 같은 왜곡된 논리가 등장한다. 우리는 스스로 근대화에 실패했기에, 비록 폭압적이었지만 일제가 이식한 제도가 산업화의 토대가 되었다는 주장이다. 자기 부정의 스펙트럼은 거기서 멈추지 않는다. 일부는 위안부, 강제 징용과 같은 명백한 전쟁 범죄조차 ‘과장되었다’거나 ‘조작 가능성이 높다’는 식으로 깎아내리며, 피해와 책임의 역사를 희화화한다.


대외정책에서도 같은 패턴이 반복된다. 이들은 ‘코리아 퍼스트’를 주장하지 않는다. 한미동맹을 사실상의 절대선으로 상정하고, 우리 사회의 이해와 판단이 아니라 ‘동맹의 전략과 규범’에 국가 정책을 맞추는 것을 최우선으로 여긴다. 그 상징적 풍경이 바로 보수 집회 현장이다. 태극기 옆에 성조기가 당연하다는 듯 펄럭이고, 심지어 일장기까지 등장하는 장면은 이들의 정체성이 어디에 기반하는지 여실히 증언한다.


자국의 문명적 뿌리를 혐오하고, 외세의 깃발을 흔들며, 식민 지배를 정당화하는 집단이 어떻게 스스로를 ‘보수’라 부를 수 있는가. 탄식이 나올 만큼 기묘한 이 모순은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


여기서 중요한 점은, 이러한 자기 부정적 행태가 애초부터 한국 보수의 본래 모습이 아니었다는 사실이다. 박정희·전두환 군부 정권으로 대표되는 이른바 ‘구보수’는 지금의 자기혐오적 보수와 정반대의 전략을 취했다. 그들은 서구 추종을 전면에 내세우지도 않았고, 조선을 전면 부정하는 데 정치적 에너지를 소모하지도 않았다. 오히려 ‘민족적 자부심’과 ‘전통’을 가장 강력한 통치 이데올로기로 끌어올렸다.


구보수의 지상 과제는 분명했다. ‘반공’과 ‘산업화’. 쿠데타로 집권한 권력이 이 두 목표를 관철하려면, 국민을 하나로 결집시키고 동원할 강력한 상징과 명분이 필요했다. 정통성의 결핍을 메우기 위해서라도, 그들은 역사 속에서 권위와 신화를 빌려와야 했다. 그래서 구보수는 통치의 정당성을 강화하고 사회적 동력을 확보하기 위해 역사적 위인들을 적극 소환했다.


그 상징의 중심에 선 인물이 이순신이다. 그는 ‘국가(혹은 체제)에 대한 절대 충성’과 ‘국난 극복’의 신화로 재구성되었다. 1968년 광화문 네거리에 세워진 이순신 동상은 단순한 기념물이 아니라, 북한의 위협을 임진왜란에 겹쳐 놓으며 국가 중심의 결집을 요구하는 정치적 교본이었다. 율곡 이이의 ‘십만양병설’은 ‘유비무환’의 논리로 재해석되어 군비 확충과 방위산업 육성의 당위성을 떠받치는 이념이 되었고, 율곡을 길러낸 신사임당은 ‘위대한 어머니상’으로 추앙되며 가부장제와 근면·절약 윤리를 정당화하는 상징으로 소환되었다.


이처럼 구보수는 유교적·전통적 인물과 그 상징 자산을 선별적으로 발췌하고 재구성해, 반공 이데올로기와 산업화 드라이브를 정당화하는 강력한 연료로 사용했다. 그들에게 ‘전통’은 혐오하거나 청산해야 할 대상이 아니었다. 체제를 유지하고 국가 목표를 관철하는 데 유용하게 가공·배치할 수 있는, 매우 실용적인 통치 도구였다. 바로 이 지점에서, 오늘날 자기부정적 ‘신보수’의 기형성과 단절성이 더욱 선명하게 드러난다.


그러나 ‘민족’과 전통을 통치의 도구로 활용하던 구보수의 방식은 영원할 수 없었다. 1997년 외환 위기의 충격과 2000년대 연이은 진보 정권의 집권은 그들의 한계를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부패’, ‘권위주의’, ‘무이념’으로 규정된 기존 보수는, ‘민족’과 ‘민중’ 담론을 선점한 진보 세력에 맞설 새로운 이념적 무기가 절실했다.


이 공백을 파고든 것이 바로 ‘뉴라이트(New Right)’였다. ‘반공’ 외에는 이념적으로 빈곤했던 구보수와 달리, 뉴라이트는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전면에 내세우며 스스로를 세련된 보수, 이론을 갖춘 보수로 포지셔닝했다.


뉴라이트 사관의 핵심은, 1948년 이승만이 수립한 ‘대한민국’에서 비로소 ‘성공의 역사’가 시작되었다는 주장이다. 그 기준은 단 하나,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라는 ‘올바른 선택’을 했느냐 여부다. 이 틀 위에서 역사의 영웅들은 재편된다. 이승만은 ‘공산주의’와 ‘왕정’을 모두 거부하고 미국과 손잡은 ‘위대한 건국자’가 되고, 박정희는 ‘가난한 조선의 유산’을 끊어내고 산업화를 이룩한 ‘근대화 영웅’으로 재해석된다.


이에 맞추어 ‘과거’는 정교하게 배제된다. 조선은 ‘정체되고 무능하며 가난한’ 전근대 왕조로 규정되고, 역설적으로 ‘식민지’는 근대화의 출발점이라는 기묘한 위상을 부여받는다. 조선이 스스로 근대화에 실패했기 때문에, 비록 폭압적이었으나 일제가 이식한 철도·항만·자본주의 시스템이 이후 ‘대한민국 산업화’의 토대가 되었다는 논리가 여기서 등장한다.


구보수가 ‘민족’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극복의 역사’를 말하면서도 여전히 전통과 역사 자원을 활용 가능한 자산으로 처리했다면, 뉴라이트는 ‘자유민주주의’라는 새로운 울타리를 세우고 그 기준에 맞춰 역사를 대대적으로 선별·분할했다. 전통은 더 이상 체제를 뒷받침하는 ‘활용의 도구’가 아니라, 잘라내고 극복해야 할 ‘부정적 유산’으로 격하된다.


바로 이 인식의 전환 위에서, 자국의 역사와 문명을 스스로 깎아내리며 외부 질서를 절대 기준으로 삼는 오늘날의 자기부정적 보수가 모습을 갖추게 된다. 그렇다면 이 뉴라이트의 시각은 어떻게 일부 지식인의 담론을 넘어, 한국 보수 진영 전체를 규정하는 핵심 이념으로 확산될 수 있었을까.


그 결정적 계기는 ‘보수 개신교’와의 결합이었다. 이 둘은 우연한 동맹이 아니라, 마치 샴쌍둥이에 가깝게 서로를 보완하는 이념적 공명 관계를 형성했다.


핵심은 ‘전통’을 바라보는 시선의 일치다. 보수 개신교는 한국 사회 복음화를 위해 유교·불교 같은 전통 종교와 샤머니즘을 ‘극복해야 할 미신’, ‘우상숭배’로 규정한다. 뉴라이트는 ‘대한민국의 성공’을 위해 조선과 유교를 ‘극복해야 할 실패한 과거’로 규정한다. 하나는 종교적 언어로, 다른 하나는 역사·정치의 언어로 같은 대상을 부정하는 구조다. 보수 개신교의 종교적 배타성과 뉴라이트의 역사 인식은 이 지점에서 정확히 포개진다.


“유교적이고 정체된 낡은 조선을 벗어나, 기독교와 시장경제를 받아들인 위대한 대한민국을 지켜야 한다”는 서사 속에서 두 진영은 완전히 합류한다. 전통을 버릴수록, 그리고 ‘대한민국=기독교+자유민주주의+시장경제’라는 공식을 강화할수록, 자신의 정당성이 커지는 구조다.


여기에 ‘반공’과 ‘친미’라는 강력한 접착제가 더해진다. 북한의 탄압을 피해 내려온 서북 출신 개신교 세력에게 공산주의는 신앙을 말살하는 절대 악, 곧 ‘사탄’이었다. 반대로 미국은 그 사탄으로부터 자신들을 구해준 보호자이자, 한반도에 복음을 들여온 선교의 본진이었다. 이들에게 ‘미국은 선(善)’이라는 인식은 정치적 선택을 넘어 신앙 고백에 가깝다.


뉴라이트는 이 신앙의 언어와 감정을 ‘자유민주주의 수호’와 ‘시장경제 정당화’라는 세속적·학술적 담론으로 번역해 주었다. 뉴라이트는 보수 개신교의 열렬한 신념에 ‘이론’을 부여했고, 보수 개신교는 뉴라이트의 이념에 ‘조직력’과 ‘자금’, 그리고 교회 네트워크라는 대중 동원 장치를 제공했다. 이렇게 해서 이념과 신앙은 한 몸이 되었고, 그 결합 위에서 오늘날의 자기부정적 보수 담론이 한국 보수 진영의 주류로 자리 잡게 된다.


이념과 신앙이 한 몸이 되면서, 한국 보수의 내부 지형도 역시 조용히 그러나 급격하게 재편되었다. 그 중심축이 더 이상 ‘TK(대구·경북)’의 유교적 권위주의에만 머물지 않고, ‘강남’의 개신교·신자유주의 결합 축으로 선명하게 이동하고 있는 것이다.


이 변화는 우연한 결과가 아니다. 강남은 한국에서 가장 거대한 대형교회들이 밀집한, 보수 개신교의 실질적 심장부다. 그리고 이들을 강력하게 결속시키는 핵심 이념은 ‘번영신학’이다. 논리는 단순하면서도 매혹적이다. “신앙이 깊고, 십일조를 성실히 내며, 열심히 노력하면, 하나님이 그에 대한 증거로 현세의 부(富)를 허락하신다.”


이 신학은 강남 중산층·상층에게 자신의 부를 ‘불평등 구조의 산물’이 아니라 ‘신의 축복’으로 정당화할 서사를 제공한다. ‘나의 재산’이 ‘축복의 증거’로 상징되기 시작하면, 재산세나 종합부동산세와 같은 조세는 곧 이 신성한 축복에 대한 침해로 느껴진다. 반대로 ‘가난’은 구조적 문제라기보다, 믿음이 부족하거나 노력하지 않은 개인의 책임으로 돌리기 쉬워진다.


그 결과 강남의 대형교회와 강남 부르주아는 번영신학과 시장 가치관을 매개로 견고히 결속한다. ‘재산권 수호’, ‘감세’, ‘엘리트 교육’과 같은 신자유주의적 어젠다가 한국 보수의 전면에 나서며, 과거 유교적 국가주의와는 다른, 훨씬 노골적인 계급적 이해와 결합한 새로운 보수성이 형성된다. 이렇게 뉴라이트의 역사관, 보수 개신교의 교리, 강남 부르주아의 이해관계가 맞물리며 형성된 ‘3자 동맹’은, 오늘날 한국 보수를 규정하는 중심 축이 되었다. 그렇다면 한때 ‘역사’와 ‘민족’을 소환하며 스스로의 정당성을 세우려 했던 구보수는, 왜 이처럼 역사 자체를 혐오하는 신보수에게 자리를 그렇게 손쉽게 내어주었을까.


구보수의 핵심 이념은 어디까지나 ‘안보’였다. 북한이라는 현실적 위협 아래에서 한미동맹을 관리하고 체제를 방어하는 것이 최우선이라는, 철저한 안보 현실주의였다. 문제는 이 안보 논리가 점차 ‘문명 서사’를 대체해 버렸다는 점이다. 안전보장은 국가 운영의 필수 조건일 뿐, 그 국가의 국민이 무엇을 자랑스럽게 여기고 무엇을 계승해야 하는지, 공동체가 어떤 역사적 자산 위에 서 있는지를 설명해 주지 않는다.


구보수는 안보를 절대화하는 대신, 스스로 자신의 문명적 정체성과 역사 서사를 비워 둔 채로 버텼다. 이 비어 있는 공간으로 뉴라이트와 보수 개신교가 들어왔다. 그들은 한국사의 긴 축이 아니라, 1948년 이후의 체제와 서구적 가치, 기독교와 시장경제에만 근거한 외래적·부분적 서사를 들고 와 그 빈자리를 장악했다.


그 결과 등장한 한국의 신보수는 태생부터 기형적일 수밖에 없었다. 그들에게 ‘애국’이란 ‘1948년 건국된 대한민국’이라는 특정 시점을 향한 맹목적 긍정과 충성으로 축소된다. 이승만과 박정희를 ‘위대한 영웅’으로 세워야 했기에, 그들을 정당화하기 위해 그 이전의 모든 역사, 심지어 식민지 시기 민중의 고통까지도 축소하거나 부정해야 했다. ‘식민지 근대화론’은 이 논리 구조에서 자연스럽게, 거의 필연적으로 도출된 산물이다.


그러나 이것은 보수주의의 본질을 스스로 부정하는 자기모순이다. 전통을 보존하고 계승해야 할 보수가, 전통과의 급진적 단절을 외치는 순간 그것은 더 이상 보수가 아니라 우파적 급진주의에 가깝다. 그들은 ‘대한민국’을 긍정한다고 말하지만, 정작 그 대한민국 국민의 정신적 토대가 되는 과거를 통째로 부정함으로써 국민적 자부심의 근간을 허문다. 공동체 결속의 가장 중요한 자산이던 민족 서사를 스스로 파기함으로써, 그들은 공동체를 분열시키고, 결국 ‘보수’라는 이름 자체를 배반하고 있는 것이다.


신보수의 문명 서사가 이토록 공허하고 자기모순적인 이유는 간단하다. 그들의 이야기로는 대한민국의 성공을 설명할 수 없기 때문이다. ‘식민지 근대화’, ‘미국의 원조’ 같은 외부의 수혈만으로는 한 사회의 지속적인 번영과 회복력을 설명할 수 없다. 진짜 핵심은 이 땅에 장기간 축적된 내재적 자산, 곧 한국 사회가 스스로 만들어온 힘에 있다.


우리 역사 속에 면면히 이어진 공론(公論)과 문치(文治)의 전통, 불의에 맞서 움직여 온 민(民)의 조직력, 위기마다 공동체를 지탱해 온 촘촘한 관계 자산들. 바로 이 축적된 힘이 오늘의 대한민국을 가능하게 한 토대다. 그러나 신보수의 서사는 이 모든 것을 ‘실패한 과거’로 낙인찍고 삭제함으로써, 우리의 저력을 해석하고 계승할 수 있는 발판을 스스로 지워 버렸다.


문명은 자기 존중의 서사 위에서만 미래를 열 수 있다. 지금 우리에게 절실한 것은 외부의 기준을 숭배하며 스스로를 비하하는 천박한 성공담이 아니라, 자기 역사를 정당하게 해석하고, 그 속에서 축적된 자산을 확인하며, 미래를 설계할 수 있는 당당한 ‘자기 존중의 서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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