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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anke Apr 21. 2024

독에 대해 연구하지 않는 독성학(24)

각성제의 위험

    흑백 티브이로 보는 전쟁 장면은 혈액 색이 보이지 않으니 덜 끔찍할 듯하지만, 오히려 상상력을 자극해 그 비참함이 극대화되기도 한다. 특히, 사춘기 예민한 소년에게 무엇을 얻기 위해 저런 고통과 야만을 저질러야 하나 전쟁의 장면은 끔찍했다. 그 가운데서도 총에 맞은 상태에서 비행기에서 내려 복귀 신고를 당당히 마치고 그 자리에서 숨을 거두는 장면은 오래도록 기억에 남았다.

    훗날 일본이 전쟁 수행을 위해 메트암페타민을 philophon(philoponus 그리스어로 노동을 사랑하다에서 유래)이라는 상품명으로 약으로 개발했고, 군수품 생산공장 종사자나 군인들에게 투약했다는 사실을 알고 피를 흘리며 쓰러져간 일본 병사는 애국심이나 군인 정신도 있었겠지만 약물의 힘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메트암페타민은 중추신경계에 도파민을 분비시키고 분해와 재흡수를 억제해 작용을 강화한다. 고도의 긴장감과 각성상태를 만든다. 또 신체에는 심장 박동을 강화해 심장 박출량과 심장 박동수를 늘린다. 에너지 소비를 증가시켜 근력을 향상한다. 신체 능력이 고도로 향상된다. 식욕을 억제해 먹지 않고도 몸에 있는 에너지를 최대한 끌어 쓴다. 그리고 약효가 끝나면 무기력과 우울감이 찾아온다. 마약류 중 각성제로 분류되는 코카인, 엑스터시(MDMA), 비만치료제인 펜터민, 펜디메트라진 등이 가지는 작용이다. 다만 비만치료 목적으로 사용되는 펜터민이나 펜디메트라진은 상대적으로 식욕억제 작용이 더 강한 것으로 평가되어 의약품으로 사용될 뿐이다. 작용 강도의 차이가 있을 뿐 이들 약물은 위에 나열된 작용을 가진다. 

 이런 약물을 과다 투약하게 되면 심장 박동이 증가하고 에너지 소비가 증가하며 체온이 상승해 45℃에 이르기도 한다. 메트암페타민 급성 중독사 중 체온 상승은 가장 치명적인 사망 원인이 된다. 영화적 상상력을 보태면 아이언맨 3에 몸이 불타고 있고 괴력을 보이는 상태의 악당은 코카인이나 메트암페타민 등 각성제에 의한 근력강화, 체온 상승은 과 유사하다. 실제 인체는 40℃를 넘으면 단백질이 변성되어 손상을 입기 시작한다. 이를 막기 위해 메트암페타민 급성중독의 경우 얼음물에 담가 체온을 내려야 한다.

    각성제를 반복적으로 투약하면 도파민이 작용하는 보상체계를 교란시켜 정신적 의존성을 만들고, 신체 에너지 균형과 조정을 교란시켜 신체적 의존성이 생긴다. 정신병적 상태가 되어 약을 하지 않은 상태에서는 편집증, 과도한 의심, 집착, 우울감에 빠지며, 세상사 모든 것이 귀찮아지고 무기력하게 된다. 반복적인 노출은 유전자 발현에 영향을 미쳐, 도파민 수용체를 감소시키고 도파민 생성량을 줄어들게 되어 보상체계가 망가져 약물을 더욱 추구하게 된다. 도파민은 과산화물을 만들어 뇌에 손상을 유발하는데, 약물로 인해 과산화물로부터 뇌를 보호하는 능력을 초과해 도파민이 생성되면 뇌는 계속해서 과산화물에 노출되고 뇌손상을 일으킨다. 이로 인해 인성이 변화하고 파킨슨이나 알츠하이머 등 뇌질환 발병률을 높인다. 특히, 정신질환의 기왕력이 있는 경우에는 정신질환을 악화시켜 더욱 위험하다. 또, 식욕저하와 무기력으로 인해 영양 결핍이 되기 쉽고 면역이 취약해 각종 질환의 위험을 높인다. 특히, 비위생적인 주사기의 사용은 AIDS(후천성 면역결핍증), 간염의 위험을 증가시킨다. 불필요하고 무리한 심장 박동수와 박출량 증가는 심장에 부담이 되며, 심근염 등 심장질환의 원인이 된다. 특히, 심장질환의 기왕력이 있는 경우 급성심장사 가능성을 증가시킨다. 지속된 남용으로 정신질환이 깊어지면, 편집증, 불안, 불신감이 증가하고 피부에 벌레가 기어 다니는 듯한 이물감, 환각, 환청 상태에서 칼로 피부에 상처를 내는 등 자해하거나 극심한 공포감에 사로잡혀 자살하기도 한다.

 메트암페타민이나 코카인과 같은 불법 마약류가 아닌 비만치료제로 사용되는 약물들도 이런 작용이 없는 것은 아니며, 쉽게 불법 마약류로 옮아가기도 한다. 이들 비만치료제는 각성제가 가지는 여러 작용을 모두 가지고 있으며, 그중 식욕억제 작용이 커서 고도 비만 등에 제한적으로 사용되는 약물이다. 그러나, 10대나 20대에서 미용 목적으로 살을 빼기 위해 서용하는 예가 증가하고 있으며, 젊은이들의 정신적 육체적 건강에 악영향을 주고 있다. 감수성에 따라, 환각, 환청, 고도의 불면을 경험하기도 하며, 방치할 경우 심각한 정신병적 상태가 되기도 한다. 이들 살 빼는 약물도 사용 기간이 길어지면 메트암페타민, 엑스터시나 코카인과 같은 부작용이 나타난다. 마약 남용에서 대체적으로 여성은 진정계통의 마약 남용이 높고 남성이 각성 작용의 마약 남용이 높다. 그런데 특이하게 우리나라 10대와 20대 여성은 메트암페타민 등 각성제 남용이 높아, 비만치료제 오남용과 연관성이 있음을 시사한다. 이들 비만치료제도 다른 각성제와 마찬가지로 정신질환 기왕력이 있는 경우 정신질환을 악화시킨다. 정신질환의 기왕력이 있는 엄마가 산후 우울증이 있는 상태에서 비만치료제를 먹고 수개월 된 아이를 끓는 물에 넣었던 예도 있다. 약물에 기대어 살을 빼는 것은 비만으로 인해 심각한 건강의 이상이 있는 경우, 전문가의 정확한 진단아래 사용되어야 한다. 그러나 여전히 우리나라에서는 인터넷을 통해 불법 유통되는 예가 끊이지 않고 있으며, 비만치료제 남용이 불법 마약 남용으로 이어지고 있다.

 코카나무에서 정제하여 얻은 코카인은 순도가 낮아 흡입으로 투약하였던데 반해, 합성품인 메트암페타민은 순도가 높아 주사가 일반적이었다. 그러나, 주사에 대한 거부감과 주사로 인한 투약흔적이 남는 것을 피하기 위해 흡입 방식이 늘어나고 있다. 흡입 방식의 가장 큰 위험성은 투약량을 알 수 없어 쉽게 증량이 일어난다는 것이다. 코카인이 헤로인을 제치고 1위 마약이 되었던 결정적인 이유는 코카인 크랙이 나오면서부터다. 코카인은 코카나무에서 얻을 때 보통 코카인 염산염 형태로 만들어져 유통되었다. 그러다가 코카인에서 염산염을 떼어낸 형태(코카인 베이스)의 코카인 크랙이 유통되며 남용자 수가 크게 증가하였다. 코카인 베이스는 코카인 염산염보다 결정이 작아 흡입 시 폐부 더 깊게 들어가 더 넓은 표면적에서 흡수가 일어나고, 지용성이 증가해 흡수가 훨씬 빨랐다. 보다 강력하고 극적인 효과를 나타냈다. 또한 흡입의 특성상 흡입되는 양이 조절되지 않아 쉽게 많은 양을 투약하게 되면서 남용자가 급격히 증가했다. 메트암페타민 투약의 흡입방식으로의 변화는 기존 주사 방식보다 중독 속도를 빨게 할 가능성이 높다. 또한 비강 혈관을 수축하게 해 심각한 경우 비강 괴사를 유발할 수 있다. 흡입 방식은 주사 흔적을 남기지 않고, 감염 위험을 줄이며, 주사보다는 느리지만, 경구투여보다는 빠른 효과를 얻어 급속히 증가하는 투약 방식이다. 그러나, 투약량을 조절할 수 없어 중독 속도와 강도를 높일 위험이 크다.

    각성제는 미래의 에너지와 미래의 집중력을 불필요하게 당겨 쓰게 한다. 그 대가로 약효가 떨어진 후, 무기력, 우울감, 불안감의 고통을 감내해야 한다. 이를 피하기 위해 계속해서 남용하면, 정신질환, 심장질환, 뇌질환 등 각종 질환 발생을 증가시키며 정상적인 사회활동을 어렵게 한다. 20대에 남용을 시작해 약물을 끊지 못하고 주기적으로 남용하게 되면, 영양 결핍 등으로 인한 감염 위험, 사고 위험을 증가시키고, 뇌질환, 심장질환 등 각종 질병과 자살충동 증가로 대부분 50 이전에 사망하거나, 더 이상 약물을 구할 수 없는 건강상태에 이른다.

    모든 마약류가 그러하듯 각성제도 중추신경계의 균형을 무너뜨린다. 그리고 무너진 균형을 바로잡는 데는 큰 대가를 치러야 한다. 한두 번 할 때는 자신이 통제할 수 있는 것처럼 착각하지만, 잘못된 것을 인지했을 때는 돌아오기 위해 엄청난 고통의 시간을 감내해야 함을 잊지 말자. 인간의 의지는 때로 강하지만, 의지는 화학물질에 의해 매개되며, 그 화학물질의 균형을 무너뜨리는 물질은 인간의 의지를 넘어선다. 마약 중독자는 의지가 약한 사람이라거나, 나는 의지가 강한 사람이라 괜찮아라는 생각은 마약에 대해서만큼은 자만이다. 혹시 중독되었다면 가능한 한 빨리 주변의 도움을 받고, 마약에 관심이 없었다면 마약의 위험성을 한 번쯤은 돌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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