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그리움 May 12. 2024

끄적이는 밤

엄마 차지하기 

'엄마 차지하기'는 보통 둘 이상의 형제가 있을 때, 동생들이 태어나고 집에 오면서 시작된다(우리집은 둘이므로 둘의 관점에서 기술한다).


 엄마를 오롯이 차지하던 첫째는 동생이 생기면서 엄마를 나눠야 하는 일이 발생한다. 아기인 둘째를 전적으로 보느라 자신에게 소홀해지는 엄마를 보면서 첫째는 서운함과 미움, 심지어는 분노를 느끼게되는데, 동생을 괴롭히거나 본인이 아기의 모습으로 퇴행하기도 한다. 자신이 아직 아기라는 것, 나도 좀 봐달라는 마음을 드러내고자 하는 것일텐데 이미 몸과 마음의 여유가 없는 엄마로선 그걸 용납하기 어려울 수 있다.


 둘째는 이미 태어나면서부터  엄마를 오롯이 가질 수가 없다. 이미 엄마는 누군가의 것이었고 자신에게 잠시 향하는 것 같으나 그것도 온전하지 않다. 언제나 생존하기 위해, 엄마를 차지하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입장이다.


 이에 대해서 이론으로는 익히 알고 있었으나 우리도 둘째를 가지면서, 그리고 둘째가 태어나면서 많이 고민하게 되는 부분이었고 나름의 과제였다.  어떻게 첫째를 대해 줘야 할지, 우리가 둘째에게 향하는 마음은 어떤지에 대해서 많이 나눴었다. 나와 신랑 둘다 첫째로 자라서 (이게 또 많은 영향을 끼치는 것 같다) 첫째에게 많이 기울어서 둘째가 좀 서러웠을수도..


 다행인 건지(?) 우리 집에 둘째가 엄청 늦게 오게 되면서, 더군다나 약 5개월 동안 많이 아팠기 때문에 첫째와 함께 둘째에 대해서 오랜 시간 동안 기다리면서 어떻게 대해줘야 할지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었다. 기다림이 길어질수록 동생에 대한 호기심과 사랑이 증폭되는 효과(?)까지 있었다.


 기다리고 기다리던 둘째가 돌아오면서 격한 환영을 받았고 첫째는 우리보다 둘째를 더 사랑하는 듯했다. 물론 시간이 지나면서 '내 거야, 안돼, 안돼. 안돼! 안돼! 안돼!'가 점점 늘어나긴 했지만.


 이 또한 다행인것은 둘째의 병과 돌봄의 절실함으로 신랑이 회사에서 전례없던 육아휴직을 받았고 그래서 첫째와 둘째 각각에게 엄마 아빠가 따로 돌봄을 집중할 수 있었다. 둘째는 아빠가 전적으로 돌봤고 나는 첫째에게 집중했다. 둘만의 시간도 자주 가지고 오히려 이야기도 많이 하고 더 열심히 놀아주고 동생보다 더 사랑하는 듯한(?) 모습을 보였더니 첫째는 오히려 엄마에게 동생을 더 보라고 하거나 양보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래서 나름 동생에게 향하는 질투나 미움보다는 애정과 사랑으로 돌봐주는 전환이 좀 더 빠를 수 있었던 것 같고, 감사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우리 엄청 사랑합니다 ㅎㅎ


 둘째는 워낙 자주 아파서 입원이 잦다. 수술도 많았고 그에 따른 입원 생활이 길 때도 있었다. 그럴 때마다 어쩔 수 없이 둘째를 옆에서 돌봐야 하니 첫째는 신랑과 친정 부모님이 돌아가면서 볼 수밖에 없었다. 첫째가 서너살일 때는 '엄마'가 옆에 없으니 시무룩한 표정으로 우울해할 때가 많았고 나를 다시 만나게 되면 내 얼굴을 만지는 등 그동안 채워지지 못했던 어떤 것을 채우기 위하여 노력하는 행동을 보였다.  


 최근에 둘째와 입원했을 때는 이제 어엿한 5돌 지난 7살 언니라고 나름 씩씩하게 견디는가 싶었는데 보기에만 그랬나 보다. 병원에서 잘 못 자고 힘들어 하는 나를 위해 주말이나 연휴가 끼면 신랑이 교대를 해주는데, 연휴가 껴서 주말까지 3일을 집에서 좀 편하게 쉬면서 체력 보강을 하겠다고 왔었다. 물론 와서도 밀린 집안일에, 둘째보다 먼저 아팠는데 여전히 아파서 돌봄이 필요한 첫째에, 그럼에도 신나게 놀아줘야 하는 역할을 다하느라 정신 없이 보냈다. 자신에게 온전히 집중 못하고 오히려 정리해라, 이거 하자 저거 하자는 잔소리가 듣기 싫었던 첫째는 '아빠가 보고싶다. 할머니 할아버지가 보고싶다'고 투덜대서 속을 긁어댔다. 그러다 연휴 마지막 밤이 왔고 첫째와 함께 누워서 함께 두런두런 이야기를 하다가(우리는 자기 전에 누워서 마음을 많이 나눈다) 그동안 참았던 울음과 설움을 폭포수같이 터뜨리는 첫째로 인해 마음이 너무 아파서 잠을 이루지 못했다. 다시 교대를 해야 하는 내일을 앞둔 '엄마와의 마지막 밤'을 보내면서 본심이 나왔나 보다.


 어쩔 수 없는 상황을 본인도 알고 있지만, 그래도 엄마의 부재는 어린 아이에게는 매우 큰 일이다. 한 번 터져나온 솔직한 감정은 다시 숨겨지지 않을 만큼 불어나서 아이는 계속 울먹이며 말한다. 큰 눈에는 눈물이 고인다. "엄마 가지 마, 내 옆에 있어줘, 엄마가 보고 싶어, 나도 같이 있고 싶어"라고 하는 첫째의 울음 섞인 투정은 마음을 무너지게 하고도 남았다. 둘째와 빨리 퇴원해서 오겠다고, 한 밤, 두 밤만 자고 오겠다고 약속을 하고서야 겨우 헤어질 수 있었는데, 병원에 남는 나의 마음은 너무나 슬픔으로 가득 찼다. 이 슬픔을 드러내지도 못하고 둘째와 또 혼신을 다해 놀아드려야 했지만. 


 예민하고 감성적인 첫째가 대놓고 표현하는 것과는 다르게 둘째는 대체로 무던해 보인다. 엄마를 애타게 찾고 아빠와 교대를 할 때가 되면 목놓아 울기도 하지만 아빠가 와서 생기는 이득을 잘 설명해 주면 나름 또 쉽게 설득이 된다. 그래서 오히려 첫째에 비해 함께하는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했을 테고, 전적인 케어를 받는 시간이 많이 부족했을 텐데도 또 마음으로 밀리는 상황이 생길 때가 많다. 그로 인해 미안할 때도 많고... 아픈 둘째에 대해서는 여러 감정들이 있으나 대체적으로 요즘은 미안함이 큰 것 같다. 더 집중해주지 못해서, 더 열성을 다해 사랑해 주지 못해서.. 


 메아리로 들려오는 첫째의 울음 소리, 아픈 상황에서도 씩씩해서 더 마음이 아픈 둘째를 보면서 얄궂은 상황만 탓하게 된다. 그저 아프고, 그래서 헤어져야 하는 현실이 애석하다. 엄마는 하나고, 애는 둘인데, 둘 다 아픈데 둘 모두를 돌볼 수 없는 상황에 애가 타기만 한다. 이 모든 것이 나를 짓누르고 속이 너무 상하고 결국은 폭발하기 직전의 나의 감정들을 쏟을 데가 없어 이렇게라도 해소해 본다.


   


작가의 이전글 어린이날에 이산가족으로 보냈습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