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첫 진단서
권유
정확히 언제부터 내가 정신과를 다니기 시작했는지는 사실 당사자인 나 조차도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때문에 내 기억 속에서 분명한 건 정신과를 다니기 시작한 이유와 그로 인해 겪게 된 일뿐이었다.
열세 살과 열네 살의 경계에 걸친 애매한 나이의 미지수는 제 분을 못 이겨 팔에 그림을 새겼고, 밤낮이 뒤바뀐 채 생활 중이었다. 아침에 자고 밤에 일어나는, 마치 야행성 동물 같은 생활을 해 오던 미지수였다. 그러나 그 생활도 잠시, 나는 이 생활이 곧 그 자리에 가만히 멈춰 있었음을 알지 못했다. 밥을 먹고, 씻고 잠을 자는 행위조차 너무나도 버겁고 귀찮게 느껴졌으며 생사와 관련된 일들 조차 '굳이?'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나의 말을 들은 엄마는 조심스레 정신과에 가보자며 나에게 권유했고, 그로 인해 가게 된 길병원이 나의 첫 진단서였다.
약 봉투
처음으로 내 발을 들여 정신과를 들어갔을 때, 어쩌면 나도 편견이 있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물론 정신과를 멸시하는 사람들처럼 생각한 건 아니었지만 내 마음속 어딘가에는 '정신과는 다른 병원과 무언가 다를 것'이라는 고정관념이 자리하고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간호사 분들도, 의사 선생님도 여느 병원과 다르지 않다는 걸 깨닫고서야 나는 뒤늦게 병원 대기실에 앉아 등을 기대었다.
접수를 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나의 이름이 불렸다. 들어오라는 말에 나 혼자 의사를 만났다. 의사는 나에게 어디가 불편해서 왔냐고 했고, 나는 병원에 오기 전 엄마가 적어준 쪽지를 그대로 말씀드렸다. 사실 보지 않아도 말할 수 있었지만 나는 말해야 하는 별 다른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기에.
"밤낮이 바뀌었어요."
라는 나의 말에 의사는 잠을 잘 자는 약을 처방해 주었다. 제때 잘 수 있는 약을. 그러나 세 번째 방문날, 나의 진단서에는 익숙하지만 낯선 이름이 추가되었다.
진단서
"낮에 자고 밤에 일어나고, 밥 먹는 것도 자는 것도 씻는 것도 귀찮고 '꼭 해야 하나'하는 생각이 들어요. '굳이?' 하는 생각도 들고요."
세 번째 방문날, 내가 의사 선생님께 드렸던 말씀이었다. 의사는 잠깐 나의 차트를 보더니 몇 가지를 물어보셨다. 잠은 잘 자냐, 피곤하진 않냐, 잘 일어나냐, 밥은 잘 먹냐, 하는 전형적인 우울증 진단서의 질문이었다. 너무나도 익숙해진 질문들에 미지수는 풀이 꺾인 채 대답을 이었고, 곧이어 의사는 추가될 약이라며 설명을 해 주었다.
"자, 보세요. 이건 우울증 약인데-"
그 순간 툭, 무언가 나의 속에서 끊어지는 느낌이었다. 분명 예상하던 우울증인데, 왜인지 모르게 기시감이 들었다. 진료를 마치고 엄마한테 '우울증 약 추가됐어'라고 말씀드렸더니 '우울증이래?'라며 그럴 줄 알았다고 하셨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이상하리만치 담담했고, 아무런 생각이 없었다. 그러나 약 봉투와 진단서에 적힌 나의 병명, '우울증'을 마주하는 순간엔 자꾸만 미지수의 안에서 무엇인가 끊어져만 갔다.
그것이 나의 첫 진단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