싫어, 난 아니야.
열 시 삼십 분
정신과에서 받아온 약은 어김없이 열 시 삼십 분에 내 손 위에 놓였다. 잠에 잘 드는 약은 대수롭지 않게 넘기며 그럭저럭 잘 먹었지만, 우울증 약은 아니었다. 내가 아프단 사실이 왜 그리도 뾰족하게 다가왔는지 나는 약을 먹지 못하고 손바닥 안에서 가만히 놀리고만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약을 먹자는 엄마의 말이 유독 거슬리고 짜증 나게 느껴졌던 날이었다. 열셋과 열넷의 경계에 서 있던 미지수는 아무런 말 없이 손에 들린 약을 쳐다만 보았고, 곧이어 입을 열었다. 그러나 먹기 위한 과정이 아니었다.
"엄마, 나 약 안 먹으면 안 돼? 너무 먹기 싫어."
"그래도 먹어야지."
그래도 먹어야지, 하는 엄마의 말이 왜 이리도 야속하게 느껴졌을까. 나는 연신 고개를 저었고 어느 순간 흐른 눈물은 뺨을 타고 내 손등에 떨어졌다. 그 작은 울림이 내 안에 호수를 만들어 짙은 우울을 풀어놓았다. 나는 약을 먹기 싫다며 울며 매달렸고, 그렇게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너무나 먹기 싫어 물컵에 녹였던 약을 손에 쥐어져 땀에 녹아가는 약과 함께 털어 넣었다. 장장 두 시간 하고도 삼십 분의 일이었다.
미안함
약을 먹은 후, 엄마가 나에게 던진 첫마디는 "고마워"였다. 약을 먹어줘서 고맙다고 나를 안았고, 이렇게 만들어서 미안하다며 눈물을 훔치셨다. 다시금 잔잔해졌던 나의 짙은 우울은 또다시 파도를 만들어 작은 눈물을 내었다. 살아생전 누군가를 안는다는 것에도, 부둥켜 안아 눈물을 흘린다는 것에도 거부감이 있던 미지수가 스스럼없이 눈물을 쏟아낸 유일한 시간이었다. 그 이후에도 엄마는 나에게 연신 미안함과 고마움을 반복해서 늘어놓았다. 이렇게 만들어서 미안하다며, 그래도 여전히 살아줘서 고맙다며. 그 말이 왜 그리도 구슬프게 들렸는지. 마치 부모를 잃은 청개구리의 울음소리처럼 구슬프게 들렸다. 그러나 나는 말하지 못했다. 엄마가 이렇게 만들지 않았다고, 엄마는 나에게 잘해주었다고. 어쩌면 정말 미안한 것은 열세 살과 열네 살의 미지수였을 테다.
어차피 선택
내가 약 먹기를 거부하고, 병원에 가기를 극도로 싫어할 때 엄마께서 해 주신 제안이 하나 있었다.
"청소년 전문 병원이 있는데, 한번 가볼래?"
그 당시의 미지수는 '어차피 병원을 다녀도 무슨 소용이야. 난 죽을 건데.' 하는 극에 치닫았던 상황인지라 대강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나는 내 인생의 두 번째 전문의를 만나게 되었다.
"안녕~ 어떤 일로 왔어?"
다소 진지한 분위기였던 길병원과는 다르게 옮긴 병원에서의 첫 경험은 상당히 특별했다. 일단 하나뿐인 원장 선생님은 여자분이셨고, 나이가 지긋하신 분이 아니었다. 전 병원에서는 주로 노인층을 반겼다면, 이 병원에선 '정말 청소년 전문이구나'하는 생각이 드는 그런 곳이었다. 나는 스스럼없이 내 증상을 말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이야기를 하고 나서 이번엔 엄마가 선생님과 만났다. 똑같이 약을 처방받고, 누군가 먹고 싶다던 닭강정을 사가는 길. 어쩐지 엄마의 표정이 어두워 보였던 미지수는 그 사실이 못내 신경 쓰여 엄마에게 물었다.
"선생님이 뭐라 하셨길래 그래?"
엄마는 잠시 긴 한숨을 내쉬곤 나를 지긋이 쳐다본 후, 힘겹게 말을 이었다.
"너 정신과 입원 할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