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 편
안녕, 반가워. 네가 이 글을 봤다는 건, 내가 이젠 이 아픔을 놓아줄 수 있다는 신호겠지. 어쩌면 그 시작의 신고식일 수도 있다고 생각해. 그러니 이 글을 읽기 전에 하나만 기억해 줘. 이제부터 내가 들려줄 이야기는 다소 아프고 끔찍한 이야기일 수도 있어. 마냥 아름답거나 평화로운 동화 속 세계가 아니라, 잔혹하고 아리게 아픈 그런 적나라한 이야기 말이야. 그래도 불구하고, 그 모든 것을 감내하고 읽어준다면 나는 더 할 것 없이 무한한 감사를 표하는 입장이야. 그럼 이제 들어줄 너에게 나의 이야기를 시작할게.
1. 언제부턴가
내가 아프기 시작했던 게 정확히 언제부터인지는 사실 나조차도 잘 몰라. 어느 순간부터 밤낮이 뒤바뀌었고, 그로 인해 찾아간 정신과에선 진단 세 번째에 우울증 약을 내 손에 쥐여주었지. 처음엔 정말 먹기 싫어했어. 내가 왜 먹어야 하는지, 하다못해 왜 병원에 가야 하는지조차 몰랐으니까, 어쩌면 당연했지. 그때의 미지수는 고작 열셋, 기껏 해 봐야 열 넷이었으니까. 사실 미지수가 제일 아팠을 나이는 바로 열다섯이야. 자신이 왜 사는지도 모르고, 왜 살아있는지조차 몰랐으니까. 그래서일까, 아마 그때부터였어. 엄마와 미지수 사이의 무엇인가 끊어지기 시작했던 게.
2. 엄마
우리 엄마는 엄청 좋은 사람이었어. 적어도 우리 가족에겐 말이야. 누군가와의 갈등이 있으면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해결해 주는 사람이었고, 사람을 사랑으로 품을 줄 아는 사람이었어. 우리 가족에선 없어선 안 되는 존재였고, 어딜 가나 사랑받는, 정말 아름답고 고운 존재가 바로 엄마였어. 물론 때때로 이해하지 못했을 때가 있고, '왜 저러지?' 하는 때도 있었지. 그래도 미지수의 기억 속에서 엄마는 참 좋은 사람이었어. 그래서 그런가, 이런 엄마에게 나 같은 딸이 왔다는 건 어쩌면 불행일 수도 있겠다고 열네 살, 열다섯의 미지수는 생각했지. 어쩌면 그래서 그랬던 걸 지도 몰라. 그날 진탕 싸웠던 게 말이야.
3. 방 문
때는 미지수가 열네 살, 열다섯의 중간쯤. 그때의 미지수는 어느 연유로 인해 엄마와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어. 그 중심은 자해와 자살에 관한 이야기였고, 더 나아가선 미지수의 미래와 지금 당장의 목숨에 관한 이야기였지. 사실 그 당시의 미지수는 아무런 생각이 없었어. 정말 아무 생각 없이, 머리가 비었다는 게 아니라 '삶'에 대한 욕망, '목숨'에 대한 욕심이 없는 상태였지. 때문에 미지수의 방 문은 굳게 잠겨있었어. 그건 엄마가 들어와서도 마찬가지였지. 이런 대화를 거실에 있던 동생이 들을까 봐 노심초사하며 방 문을 굳게 닫았어. 사실 그때의 미지수는 동생들이 듣든 말든 상관이 없었어. 어차피 자신은 당장 내일 죽을 건데, 이 대화를 듣는다고 한들 무슨 상관이겠어. 사실 정말 죽지도 못했지만 말이야. 그렇게 방문을 굳게 닫은 후, 이야기는 시작됐어.
4. 엄마와 식칼
그렇게 한참 이야기를 하다가, 엄마가 물었어. 그럼 정말 그대로 살다가 죽을 거냐고. 미지수는 그렇다고 대답했지. 여전히 살기 싫다며, 왜 사는지도 모르겠다며 끊임없이 죽고 싶다고 대뇌 었어. 이야기의 정확한 시작도 기억나지 않던 그때였어.
"내가 죽으면 너도 죽을 수 있으니까. 내가 너 죽게 해 줄게."
엄마가 소리 내어 울던 울음을 멈추고 방 밖으로 나가 주방으로 향했어. 미지수는 벌떡 일어나 따라나갔지만, 이내 엄마는 안방으로 들어갔지. 그러나 미지수는 봐버렸어. 엄마의 손에 들려있던 식칼을 말이야. 미지수는 소리쳤어.
"엄마, 지금 뭐 하자는 거야. 엄마, 엄마."
끊임없이 엄마를 부르며 흐르는 눈물을 닦아내려 애썼지. 그러나 그 작은 손으로 끊임없이 흐르는 눈물을 닦아낼 수 있을 리는 만무했어. 결국 미지수는 거실에서 게임하던 동생들을 놀이터로 내보내고 젓가락을 손에 들었어. 그리고는 떨리는 손으로 안방 문을 따고, 그 안에 앉아있던 엄마를 보았지. 미지수가 또 한 번 소리쳤어.
"대체 뭐 하는 거야. 칼은 왜 들고 가, 그걸."
5. 무릎
뭐 하는 거냐는 미지수의 말에, 엄마가 입을 열었어.
"도저히 못 죽겠더라."
그 말이 시작이었어. 미지수는 이젠 나오지도 않을 것 같던 눈물이 호수가 될 만큼 흘러나오는 걸 느꼈지. 사실은 대화를 할 때부터 계속 울고 있었는데 말이야. 그러나 그건 엄마도 마찬가지였어. 미지수의, 나의 엄마 역시 다 부르튼 눈으로, 텅 비어버린 눈으로 미지수를 올려다보며 말했어. 왜냐하면, 엄마는 무릎을 꿇고 있었거든.
"그러니 제발 살아줘. 엄마가, 아니... 내가 이렇게 빌게. 응? 제발 살아줘."
그때가 처음이었어. 엄마가 엄마라는 이름을 포기하고 사람 대 사람으로서 살아달라고 무릎까지 꿇고 빌었던 게. 사실 처음조차 허락되지 않는 일인데 말이야. 미지수는 말했어.
"이게 지금 뭐 하는..."
그러나 말을 끝맺지 못했지. 끝맺기엔 너무나도 많은 말이 남아있었어. 결국 미지수는 행주에 덮인 칼을 주방으로 가져다 놓고, 엄마를 일으켰지. 그것이 미지수에겐 최선의 선택이었어. 그렇게 일단락된 사건은 미지수가 대충 입힌 동생의 옷을 엄마가 보고 마무리 돼. 이게 뭐냐며 미소 지은 엄마의 모습으로 말이야.
6. 행주에 덮인 칼
그 후, 현재의 미지수는 생각했어. 행주에 덮인 위험한 칼처럼, 이 일도 사람이라는 따뜻한 온기 아래 덮이면 좋겠다고. 그것은 그저 미지수의 얄팍한 바람이지만 말이야. 그래서 현재의 미지수는 이렇게 말해.
"엄마가 자식에게 무릎을 꿇고 빈다는 게 정상적인 게 아니잖아요. 물론 죽겠다는 딸도 정상은 아니지만, 이렇게까지 만든 것조차 정상이 아니잖아요. 적어도 저는 그렇게 생각해요."
그리고, 조금 머뭇거리며 말을 이었지. "그래도 어쩌면 그 추한 모습을 보고도 진심을 느낀다는 게 정말 사랑이라는 걸 깨달았어요. 한 사람을 살리기 위해, 진심이 아니라면 나올 수 없는 모습이었잖아요."
참 이상하고도 모순된 말이 진심이라는 걸 깨닫게 된, 그런 미지수였지. 오늘의 이야기는, 오늘의 특별 편은 여기까지야. 어떤 이야기로 다가올지, 나는 잘 모르겠네. 그럼, 오늘도 들어줘서 고맙다는 인사로 이만 마무리할게. 잘 들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