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보같이 솔직했던
프롤로그
이번 글을 쓰기에 앞서, 이 글을 읽으시는 여러분이 몇 가지 알아야 할 것이 있다.
첫째, 나는 상담을 매우 싫어한다. 그리고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다.
둘째, 이 글은 나의 상담을 주로 다룬 에피소드가 많아서 내 개인적인 이야기나 감정이 많을 것이다.
셋째, 나는 절대로 내 아픔에 대한 동정을 바라지 않는다.
이 세 가지를 반드시 알아주시길 바라며, '나의 우울증 일기- 괜찮아, 그까짓 거.'를 시작하도록 하겠다.
바보 같은 솔직함
때는 2022년, 미지수가 중학교에 막 입학했던 따끈따끈한 시기였다. 모든 새 학기가 그렇듯, 학교에서 여러 가지 프로그램 안내와 성향검사를 비롯한 레크리에이션을 진행했으며 그중에서 미지수가 집중했던 건 신입생 심리검사였다. 사실 집중이랄 것도 없었다. 자그마한 태블릿에 뜬 질문에 예/아니오 라거나 1-5까지 점수를 매기는 쉬운 작업이었기에. 그러나 열넷의 미지수는 그 질문에 바보같이 솔직하게 답했고, 그 결과는 학교 위클래스에서 진행하는 상담이었다.
누구세요?
태어나서 처음으로 가 본 위클래스는 여간 낯선 곳이 아니었다. 내가 그곳에 발을 들이면 모두가 나를 '정신 이상자'취급하는 것 같아서 미지수는 문 앞에서조차 손가락을 허공에 그려가며 망설일 뿐이었다. 그러나 문을 열고 들어가자, 그간 미지수의 생각과는 사뭇 다른 풍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결론적으로 선생님은 매우 좋은 분이셨다. 현재 다니는 고등학교의 위클래스 선생님 못지않게 좋은 분이셨다. 내 아픔을 함께 들어주려 하셨고, 감히 어린 미지수 혼자 짊어지지 않게 노력하셨다. 이야기도 잘 들어주시고, 상황에 맞는 조언도 때에 따라 알맞게 해 주시는 좋은 분이셨다. 그러나 문제는 따로 있었다. 바로 외부에서 오시는 상담 선생님이었다. 그 상담 선생님은 앞으로 더 있을 총 3번의 상담을 모두 거부감으로 이끈 대단한 분이셨다.
불쌍함 1
사실 몇 년 전 일인 만큼, 그 선생님과 나누었던 이야기가 잘 기억나지는 않는다. 그러나 선명히 기억에 남는 것은 죽어도 잊지 못할 '불쌍함'이었다.
2022년, 지독히도 더웠던 어느 여름날. 미지수는 여느 때처럼 상담을 받으러 위클래스에 발을 들였다. 그 선생님이 어느 정도 익숙해진 뒤였으므로 별생각 없이, 약간의 거부감만을 가진 채 상담실 의자에 앉아있었다. 곧이어 상담 선생님께서 들어오셨고, 미지수와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참고로 이때의 미지수를 대하는 상담사의 나이대는 할머니와 아줌마 사이였고, 화장은 매우 짙었다. (외모는 지극이 어린 미지수의 편견 어린 시선이니 감안하고 봐주시길 바란다.) 어린 미지수는 그런 점부터 썩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괜찮은 사람이겠지'하고 스스로에게 되내며 상담에 임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그 되뇜을 후회하게 되었다.
불쌍함 2
"너 참 불쌍하다."
그 순간 상담실의 모든 공기가 차갑게 얼어붙었다. 시간은 멈추었고, 공기는 내려앉았다. 그 말이 미지수의 안에 작은 가시가 되어 마음 이곳저곳을 쑤시고 다녔다.
실제로 상담사가 어린 미지수에게 했던 '불쌍하다'는 말 때문이었다. 대다수의 상담사들이 사용하지 않는 단어를, '과거에 나에게 불쌍하다고 했던 상담사가 있어요'하면 다들 눈썹을 찌푸리는 단어를, 그 상담사는 미지수를 동정하며 쉽게 꺼냈다. 아마 그때부터였다. 어린 미지수에 이어 현재의 미지수가 상담을 끔찍이도 싫어하게 된 것이, 사람에게 이야기를 터놓지 않게 된 것이, 나 스스로를 깎아내리며 아팠던 것이.
과장이라고 느낄 수 있겠지만, 미지수는 그날 이후로 상담에 대한 마음의 문을 닫아버렸고, 그건 열일곱 살인 지금의 미지수에게도 해당되는 말이었다. 때문에 이 상담을 시작으로 수 없이 많이 받았던 상담들도 모두 실패로 돌아갔다.
다소 심오했던 이번 편을 뒤로한 다음 편에선 두 번째로 받았던 상담과 그때의 나의 상처에 대해 이야기하도록 하겠다.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하단 말씀을 드리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