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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헤 May 20. 2024

경원재, 한옥호텔에서의 쉼표

호텔스닷컴이 준 내 삶의 리워드

올해 들어 세 번째로 떠난 1박 2일 나 홀로 여행.     


여러분 호텔스닷컴을 아시나요? -광고아님-


10박을 하면 평균에 해당하는 금액만큼 리워드 1박을 주는 호텔 예약 사이트인데, 나는 10년 전부터 이 사이트를 이용해 왔다.     


코로나 시기에 어디도 갈 수 없어서 까맣게 잊고 있다가 리워드 1박을 허무하게 날려본 경험이 있어서 그 뒤로는 리워드가 쌓이면 잘 체크해두고 있었는데... 분명히 잘 체크했다고 생각했는데?!!!     


올 초부터 5월에 만료가 되는 리워드가 있다는 걸 인지하고는 있었는데 뭔가 특별한 날 특별한 사람과 특별한 곳으로 가고 싶어서 계속 여차저차 미루다가 어느새 5월이 되어버렸다.


-그사이 특별한 날도, 특별한 사람도 없었다는 슬픈 여담-     


차곡차곡 10박을 쌓아 받은 리워드는 무려 33만 원.


기왕 이렇게 된 거 특별한 사람(=나 자신)과 특별한 날을(=일 없는 날) 만들기로 했다.

그날은 바로 리워드 만료 되는 날 ;)


*     


금액이 꽤 돼서 5성급 호텔에 가려는데 서울에는 더 이상 가보고 싶은 호텔이 없었고, 리워드보다 너무 넘치는 돈을 내고 가고 싶진 않아서 드라이브하며 여행 기분도 낼 겸 서울 근교로 찾아보다가 알게 된

<경원재 앰배서더 인천>     


주변에 딱히 관광하거나 돌아다닐 곳은 없었지만, 경원재 외관을 보자마자 여기다 싶었다. 국내 유일의 5성급 한옥호텔.      


고.           





첫눈에 감탄, 두 눈에 스며들다


여행 당일 ‘월요일은 하체!‘를 외치며 하체 웨이트 부수고(그리고 역시나 부서진 건 저였습니다) 점심을 먹고 오후에 출발했다.  


식사 뒤 따끈한 햇빛 아래 운전하자니 몰려오는 졸음을 스타벅스 오트콜드브루(사랑♡)와 무려 2003년 작 영화인 허니 OST로 쫓아내며 지루하게 막히는, 재미없는 길을 달려 도착.


이윽고 마주한 경원재는 송도 센트럴 파크의 중간에 위치하고 있어 주변 높은 빌딩들 사이에 고고하게 자리하고 있었다.      





경원재 앰배서더 호텔은 기본 룸인 디럭스와 두 번째인 디럭스 스위트, 마지막으로 2 객실뿐인 로얄 스위트가 있는데 나는 ’디럭스 스위트‘로 예약했다.


차액을 굳이 내고 가고 싶지 않아 살짝 주저했었는데 여러분 이곳은 돈을 좀 더 주시고 꼭 꼭 꼭! 디럭스 스위트에서 묵으시길 바랍니다.


디럭스 스위트로 예약한 나 자신 너무 칭찬해 셀프 쓰담.      


*     


체크인을 하고 직원이 객실까지 안내해 주셨는데 이곳은 들어갈 때부터 특별했다. 디럭스 스위트는 객실마다 대문이 따로 있어서 대문을 열고 들어가면 마당이 있고, 안채가 있었다.      





나는 <희원정>이라는 이름의 301호에 묵었다. 건물의 첫 번째 객실이라 ㄷ자로 된 마당이 있었고 그 사이에 객실이 있었다. 양쪽 창을 열면 양쪽으로 안마당과 뒷마당이 보이는.      




     

이곳은 17평이 조금 넘는 공간으로 침실과 거실이 분리되어 있고 거실 또한 미닫이문으로 두 개의 공간으로 분리할 수 있었다. 거실에서 마당으로 나갈 수 있었는데 꽃무늬 고무신이 준비되어 있었다. 아침저녁으로 쌀쌀해서 굳이 나가 있진 않았지만, 마당에도 테이블이 있었다.      


한옥의 분위기에 맞게 거실에는 상과 방석, 좌식 소파가 있는 것과는 반면 침대는 양식이어서 편했고 안마기와 공기청정기, 얼음이 나오는 정수기와 전자레인지, 음료와 간식이 들어있는 미니바(모두 무료!).


가장 좋아했던 부분은 커다란 편백 욕조에 펜할리곤스 어메니티 그리고 다이슨 드라이기까지. 한옥에 양식의 기가 막힌 조화.      


게다가 바닥 온돌이 따뜻하게 열이 올라와서 아침저녁 쌀쌀할 때 딱 기분 좋은 온도로 맞춰져 있었다.    

  

한마디로 맘에 들지 않는 것이 그 무엇도 없었다는 소리지요.        

             






공간이 주는 행복


좋은 장소란 무엇일까?      


이전의 템플스테이때 그랬듯 나의 여행은 주로 부침에서 비롯되는 편이라 격하게 휴식이 필요할 때 떠나는 편이었는데 이번에는 쿨타임이 안 찬 상태에서 오게 된 거라 생전 안 하던 묘한 염려가 올라왔었다.

주변에 가보고 싶은 곳도 없고 딱히 관광지도 아닌데 혼자 가서 뭘 한담?


근데 내가 아직도 나를 잘 몰랐나 봐.     

하기도하지.

뭔가 어딘가를 갔을 때 ’무언가를 해야‘만 좋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나 보다.


혼자 뭘 안 해도 잘 있으면서.      


그냥 나는 여기 이곳에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행복감이 차올랐다.     


*     


사진을 조금 찍고는 선선히 바람이 부는 창문을 열어두고 앉아서 도심 속 고요를 느낀다.      


창문이 많아서 너무 좋았다. 날씨가 너무 좋은 날이라 창문을 열어놓으니 시원하고 햇볕은 따뜻해서 보기만 해도 기분이 좋았다.      


앉아서 글을 토닥토닥 쓰고 있으려니

아-

모든 것이 완벽하게 행복했다.      


*


잠시 쉬다가 호텔 구경을 했다.

이토록 높은 빌딩들 사이의 한옥 호텔이라니.   

   

객실 수는 30개뿐인데 부지는 넓어서 사진 찍는 동안 잠시 몇 명의 투숙객을 마주친 것 외에는 굉장히 프라이빗하고 조용해서 혼자만의 여유를 만끽할 수 있었다. 이 장소를 온전히 느낄 수 있었다.


할 게 없으면 나가서 센트럴 파크 구경하고 걷고 와야지라던 나의 생각은 온데간데없이 이곳에 있는 시간이 벌써 아까워지기 시작했다.               





오랜만에 나 자세히 보기


요즘 사실 스스로의 얼굴에 권태기라 셀카를 거의 안 찍는데 이번에는 한옥 호텔이라는 특수성을 가진 곳이라 약간 작정하고 한복 스타일의 치마를 입고 화장 열심히 하고 무려 삼각대를 가지고 갔더랬다.  

   

그러면서 약간 현타가 왔었는데 막상 호텔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사진 찍는데 아무도 없어서 눈치 안 보고 마음껏 찍고 놀고 들어와서 보니 사진을 오백 장 정도 찍어서 ’아 나 사진 찍는 거 좋아했네‘를 오랜만에 느꼈다.      


여기저기 사진 찍기 좋은 장소들이 많았다. 호텔 밖에도, 안에도.





그중에 건진 사진은 한 열 장쯤이었지만 그래도 너무 재미있는 시간이었다.      


또 한 번 나에 대해서 자각하고 기억한 시간.                





한옥과 달과 비행기


저녁을 먹고 나서 해가 완전히 지기 전 경원재의 밤 풍경은 어떤가 싶어 구경 나왔다가 선명한 달을 보았다.      


거기에 때맞춰 지나가는 비행기.     

 




다시 대문을 열고 들어와 빗장을 걸어 잠그고 담장 밖을 바라보니 고즈넉한 한옥에 작은 불빛들이 반짝거리고 그 너머로는 높다란 빌딩 몇 개가 보였다.      


내 눈에 담기는 풍경이 참 좋았다.             

       







조금쯤 센치한  


8시쯤 되니 나는 배부르고 나른하고 조금쯤 센치해졌다.   

   

이 좋은 곳에 나 혼자 있다는 것.      


이렇게나 좋은 공간을 공유할 사람이 없다는 것에 대한 서글픔... 까지는 아닌데 무슨 기분이었을까 아쉬움? 그래 아쉬움쯤이 되겠다.     


*     


심심할까 봐 이것저것 챙겨 왔지만 역시나 하루짜리 여행에서는 격렬하게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아 진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아무 ’생각‘도 하고 싶지 않다.

특히나 일상을 가져오는 생각은 더더욱.      

그래서 나의 생각은 90%쯤 오프상태.      


*     


커다란 편백 욕조에 집에서 가져온 일본산 온천 입욕제를 3개나 풀었다.      


요즘 사우나 자주 해서 사실 굳이 반신욕을 하고 싶은 건 아니었지만 굳이 나를 풀어주는 시간을 갖는다.      





물을 받는 동안 밤이 어둑하게 내려앉았다.


스텐 와인잔에 얼음을 가득 넣고 맥주를 따랐다.

     

유튜브로 한껏 나른한 재즈를 틀어두고 얼음 때문에 다소 밍밍해진 맥주를 한두 모금 홀짝이며 땀을 뺐다.  욕조가 참 커서 친구들과 두 명이고 세 명이고 둘러앉아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어도 재밌었겠다 싶었다.      


하지만 난 혼자였지.      


근데 사실 그것조차 좋았다.      


*     


실크 소재의 보드라운 파자마를 입고 안마를 하고는 나른하게 풀어진 몸으로 영화 한 편을 보고 좋아하는 음악 한 곡을 반복해서 듣고 잠을 청했다.     

           






마지막까지 야무지게


나는 잘 때 빛과 소리 모두에 예민한 편인데 새벽 5시에 동이 틀 때부터 눈이 부셔서 1시간 간격으로 계속 깼다.      


최대한 늦게까지 자려고 알람은 10시에나 맞춰뒀었는데 말이죠...     


침실에 있던 창문 위쪽에 작게 블라인드가 있었는데 그걸 못 보고 그냥 자서 계속 빛이 들어와서...... 게다가 잠결에는 깨기만 하고 조치를 못 하고 바로 다시 잠들어서.... 나란 사람... 참 꼼꼼하고 가끔 허술한 사람.  

    


그 와중에 잠결에 짜증 나서 빛 들어온다고 찍어둔 사진.


그래도 침구류가 참 좋았다.


역시 5성급.      


적당히 포근하고 적당히 시원하고 적당히 푹신하고 적당히 단단한.


*     


창문을 열어두니 첫날과 같이 같이 창밖은 조용하고 바람은 선선하고 햇빛이 따끈따끈하게 보여 예뻤다.


새소리만 들리는 아침.      


호텔 조식을 굳이 신청해서 먹는 편이 아니라 간단히 챙겨 온 아침을 먹었다.


보사노바를 틀어두고 휴대용 다기에 차를 우려 마셨다.

아침에 음악 들으며 멍 때리면서 아침을 먹는 여유라니.


이런 시간은 매일 가져도 매일 새롭게 좋겠다.

볼 때마다 행복해지는 풍경과 시간.





이제 다시 일상으로



그렇게 일박 이일의 짧은 휴가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다.      


반짝거렸던 시간에 며칠째 다시 사진을 꺼내본다.    

  

이토록 좋은 양질의 휴식은 언제든지 환영이야.


이곳은 꼭 다시 방문하고 싶은 곳.


언젠가 소복이 눈 쌓인 한겨울에 또 한 번 올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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