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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끠적끠적

한 사람과의 오랜 만남이 좋은 이유.

한 사람의 인생.

by 북꿈이네


2013년부터 시작된 한 사람과의 교제.



예전에 부모님이 "내가 당신과 15년 동안 살면서 얼마나..!" 하며 싸웠던 것 같은데..



나도 그 정도의 세월을 한 여자와 보내게 되었다니.



뿌듯하기도 하고 시간이 참 야속하기도 하다. 언제 시간이 이렇게 흘렀는지. 와이프와 사귀자마자 사고 쳤으면 애가 벌써 중학생이다.



20대의 모든 시간을 함께한 만큼 더욱 특별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 서로 완성된 모습을 보고 선택한 것이 아니라 미성숙한 시절에 만나 함께 성장해왔으니까.



그렇게 우리는 30대가 되었고,

이제는 30대 중반에 접어들게 되었다.




스물두 살.

고등학생의 티를 이제 막 벗기 시작하는 시기.



여자라면 전공 책을 품에 안고 캠퍼스를 누비며 한창 인기가 많을 그 꽃다운 나이에 와이프는 나를 선택했다. 빡빡머리 군인에 가진 돈이라고는 군인 월급이 전부였던 나를.



참 가진 것 없었다. 나도 가진 것이 없었지만 우리 집안도 가진 것이 없었다. 넉넉지 못한 집 안 환경은 나를 더욱 주눅 들게 했다. 20대 청춘에 당연히 가져볼법한 자신감조차 나에게는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와이프는 나를 좋아해줬다. 나에겐 숨겨져 있는 빛이 보인다며 나를 응원해 주고 다독여줬다.



따듯했다.

부모님의 사랑과는 또 다른 결의 따듯함이었다.



와이프의 따듯함은 나에게 연료가 되었다. 따듯함이 더해질수록 내 삶은 나아져갔다. 앞이 보이지 않던 인생의 안개가 점점 개어져갔다.



길이 보이니 그다음은 수월했다. 그냥 그 길을 묵묵히 걸으면 됐다. 가끔 보이는 장애물만 조금씩 치워가면서.



덕분에 지금은 상황이 많이 나아졌다. 13년 전의 나였다면 상상도 못 했을 정도로. 한 사람의 인생이 단 한 사람으로 인해 180도 변하게 된 것이다.




주말은 평일에 보지 못 한 환승연애를 보는 것이 우리 부부의 루틴이 되었다.



하필 이번 환승연애 출연자 중에는 장기 연애를 했던 유식과 민경 커플이 나오고 있다. 와이프는 출연진의 감정에 격하게 공감하며 과몰입을 하고 있다.



아니 유식이 잘 못하면 내가 왜 벽보고 서있어야 하는거냐고. 그리고 왜 내가 너의 기분을 살펴야 하는 건데.



어쨌든, 환승연애를 보는 도중 와이프와 이런 대화를 나누게 된다.



"장기 연애가 참 좋긴 했어. 한 사람과의 진득한 연애.. 남들은 여러 명 만나보고 결혼해야 한다고 하는데 난 지금이 좋아.."



와이프는 장기 연애가 참 좋았다고 한다. 나도 마찬가지다. 덕분에 내가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부정할 수 없으니까.



"여보는 장기 연애가 왜 좋았어?"



와이프 입에서 예상치 못했던 답변이 나온다. 예상했던 답변은 '여러 사람 만나는 건 귀찮으니까'라는 답변이었는데.



"그림자에 가려져있던 한 청년이 건강하게 성장해서 남자가 되어가는 모습을 보는 게 얼마나 가슴 웅장해지는 줄 알아? 참 설레는 일이야. 한 남자의 일생을 바로 옆에서 지켜볼 수 있다는 거.."



한 남자의 인생을 옆에서 지켜보고 있다는 것. 그게 그렇게 설렌다고 한다. 자신을 지키기 위해, 이제는 뱃속의 아이를 위해 고군분투 살아가려 하는 그 모습에는 멋이 들어있다고 한다.



김부장 이야기에 푹 빠져있는 요즘, 참 가슴 뭉클해지는 말이다. 장기 연애의 장점이 한 남자의 일생을 가장 가까이서 지켜볼 수 있어서라니.



생각해 보니 나도 그렇다.

한 여자의 일생을 가장 가까이서 지켜보고 있다.



어울리지 않는 진한 화장을 하던 20대 초반의 여자, 취업 준비에 고군 분투하던 20대 중반의 여자, 결혼 후 아이를 갖기 위해 본인 배에 직접 주사를 놓는 강인한 의지를 가진 여자. 그리고 그 어떤 라인과도 바꿀 수 없는 어여쁜 D라인을 뽐내고 있는 지금의 모습까지.



익숙함에 감춰진 소중함이 다시 보이기 시작한다. 책은 내가 더 많이 읽지만 깨달음은 항상 와이프가 한발 앞서있다.



이번에도 배웠다.



한 사람과의 오랜 만남이 좋은 이유는 내 남자 또는 내 여자의 일생을 가장 가까이서 지켜볼 수 있어서라는 것을.



이토록 귀한 것이 또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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