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인의 비틀린 욕망 창작 그리고 FAQ
내가 이쪽 바닥에 발을 아직도 걸치고 있어서 그런 건지 몰라도 생각보다 창작을 시도하려는 사람들을 많이 만나게 된다. 좋으나 싫으나 한 산업에 10년 이상 종사하게 되면 결국 그렇게 되는 거 같기는 하지만.
특히 이런 사람들이 하필이면 회화, 시작(詩作), 작곡, 작사 쪽에 많이 빠지는 것 같은데, 왜 그러는 건지 어느 정도는 이해는 하고 또 어떤 부분들은 이해 안 되는 영역도 있다.
돈 많이 안 들고 쉬워 보이니까 그러는 거겠지
지금도 운영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어떤 회사(라고 하기도 민망한 수준)에서는 온라인으로 곡과 가사 데모를 받았었다.
잠깐 같이 그런 데모를 걸러내는 작업을 도와준 적이 있는데, 그때 느낀 충격과 공포는 말로 이루 할 수 없는 없는 정도였다.
그리고 나는 그날 이후로 다시는 가사를 쓰지 못하는 몸이 되어버렸다.
내가 쓴 것도 남에게 저렇게 보일까 봐.
일단 이전 글에 써 놓은 것처럼 항상 설명하기 귀찮은 자주 듣는 질문들 몇 가지에 대한 FAQ 먼저 시작해볼까 한다. 솔직히 앞으로의 글들은 화 나있는 상태가 기본일 거 같아 평소에 듣는 질문들과 항상 대답하는 말들을 써 놓는다.
양조간장아 나 음악 하고 싶어
취미야? 업이야?
취미라면 너 즐겁게 잘하시면 될 거고
업으로 하고 싶은 거라면 사실상 늦은 거나 마찬가지니까 다른 일 찾으셔라.
취미로 하다 아주 잘 풀리는 경우에 업이 될 수 있겠지만, 취미도 어느 수준까지 몰입하는 취미에 따라 다르지. 취미로 격투기 하다가 프로데뷔한다 같은 이야기라고 말해줄 수 있지 않을까.
어디 유명작곡가 누구는 악보도 못 보고 배운 적도 없다던데 나도 그 사람들 만큼 할 수 있는 거 아니야?
이런 말을 들으면 숨이 턱 하고 막히는데, 어디서부터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어서 대충 "그래 너도 할 수 있을 거야 열심히 해봐 ㅎㅎ" 라며 대화에서 도망치는 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다.
-그리고 이런 질문을 하는 사람은 시작도 하지 않거나 시작하고 3개월 안에 나가떨어진다.
히트곡 하나 쓰면 저작권료 얼마나 나와?
아니 얼마 버냐는 건 세상에서 가장 민감한 질문 아니었나.
애초에 내가 히트곡 작곡가가 아니라서 정확히 알려주지도 못하고
(사실 대충 알고 있다. 회계하는 사람들은 머리 조금만 굴리면 알아낼 수 있음)
니 연봉 얼마인지 알려주면 알려줄게.
월급쟁이들끼리는 얼마 받는지 말하는 게 금기시되는데 왜 수입이 불규칙한 직종에는 이런 걸 아무런 거리낌 없이 묻는지...
스포티파이(or 멜론 등)에 음원 올리려면 어떻게 해야 해? 얼마나 들어?
애초에 스트리밍플랫폼은 업로드 버튼이 있는 게 아니라서 개인이 직접 하는 방법은 사실상 없는 거나 마찬가지다. 생각해 보자 누구에게나 업로드 버튼이 있는 유튜브를 보면 정말 혼돈이 따로 없잖나.
음원유통을 해주는 유통대행사와 계약을 하는 게 일반적이고, 이 유통대행사들의 나름 퀄리티 기준선이 있다.
유통대행사들과의 계약 조건은 각 회사마다 다르다. 사실 각 회사들 마다 추구하는 포트폴리오 방향이 있어서 선택지가 많은 편은 아니다.
어떤 유통대행사들은 등록비? 수수료?로 돈을 받는다던데, 그런 곳과 일을 해본 적은 없어서 그 내용은 잘 모른다.
유통대행사와 계약을 한다고 해서 소속사/레이블에 들어간다는 개념이 아니라 그냥 딱 깔끔하게 유통만 해주는 개념이다. 매니지먼트고 제작지원이고 그런 거 하나도 없다.
유통 관련해서도 따로 글을 하나 쓸거니 자세한 건 그때 이야기 하도록 하자.
다시 질문으로. 어떻게 하냐고? 유통대행사랑 계약해서 해달라고 하면 된다.
개인이 하는 방법도 있기는 한데 이건 진짜 복잡하고 따지고 들어가면 유통대행사 계약과 비교해서 이점이 하나도 없는 거나 마찬가지라서 추천하지 않는다. 하지 말라면 좀 하지 마. 내가 해보고 말하는 거야.
저작권 등록했어?
저작권 이야기는 좀 복잡하다. 많이.
저작권은 등록을 해야 발생하는 개념의 권리가 아니다. 저작권 관련해서만 15시간 정도는 떠들 수 있지만 이건 나중에 글을 따로 쓰는 걸로 하고.
한국에서는 [저작권등록]이라는 것을 [저작권위원회]에서 하는데 이게 국가기관이다.
나는 살면서 프로음악인중에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면 [저작권위원회]에서 [저작권등록]을 하는 사람을 본 적이 없다. 저작권등록은 이게 내가 창작한 창작물이라는 증서를 국가기관 이름으로 찍어서 만들어주는 건데, 이게 진짜 특수한 경우 아니면 쓸모없고 비싼 종이쪼가리다.
특수한 경우는 어떤 나라랑 일을 할 때 가끔 "이게 니 거라는 증명서를 가져와" 같은 말도 안 되는 요구를 할 때가 있는데 이럴 때만 쓰는 거라... 딱히?
적어도 음악 산업에서 그리 쓸모 있는 아이템은 아니다. (소프트웨어산업에서는 쓸모 많은 아이템)
만약 내가 나인걸 증명하기 위해서 페이퍼로 된 증명서를 공신력 있는 기관에서 발행받아오라고 하면 뭘 가져가시겠나.
인권이 출생신고를 해야 발생하는 권리가 아니라 태어나자마자 생기는 것과 같이 저작권은 창작물이 공표된 시점부터 당연하게 생긴다.
우리들은 음악저작권을 관리하는 복수협회 - 음저협(한국음악저작권협회), 함저협(함께하는 음악저작인 협회) 둘 중 하나에 가입을 하고 그곳에 신탁을 한다. 그리고 실연자들은 음실련(한국음악실연자연합회)에 실연권을 신탁한다. 저작권위원회에 등록하면 똥멍청이 취급받는다.
이건 나중에 저작권만 따로 자세히 쓰겠다.
연예인 누구누구 만났었어?
내가 있던 곳들이 대형기획사들이 이용하거나 그런 곳은 아니라서 아쉽게도 이름만 대면 아는 사람들이랑 직접 같이 작업을 해본 적은 없다.
나름 인디에서 알만한 사람들은 꽤 많이 봤었는데 애초에 내가 먼저 사진 찍어달라거나 그런 걸 안 해서...
누구 가르쳐 본 적 있어?
있다. 커리큘럼 이름이 DAW완성 15주 과정 뭐 그런 거였던 거 같은데..
이래 봬도 꽤 오래된 사람이라 DAW를 사용 시작하던 게 대충 각각 프로툴 6, 큐베이스 4, 리즌 3 뭐 그런 식이였던 거 같은데.
애초에 음악을 잘하는 방법을 가르쳐 주는 건 못하는데 DAW를 툴로써 어떻게 사용하는지 그거 하나 알려주는 건 자신 있음.
절대음감이야?
절대음감 반 상대음감 반이다. 제일 안 좋은 듯.
생각보다 아주아주 많은 사람이 절대음감을 가지고 태어나는데, 미디어에서 처럼 음 여러 개 들려주고 따라 쳐보게 하는 거 그런 거 훈련을 통해서 얻는 결과물이다. 3년 동안 가둬놓고 청음만 시키고 틀리면 밥 안 주고 그러면 누구나 할 수 있다.
기타 이렇게 칠 수 있어? (Tim Henson, Seiji Igusa, Ichika Nito, Marcin 유튜브를 보여주며)
이것도 꽤나 무례한 질문에 속한다.
못한다. 그거 보고 옛날 말로 기인열전이라고 한다.
너 사무직이라고? 엑셀좀해? 그럼 너도 엑셀로 슈퍼마리오 만들 수 있어? 같은 느낌.
작곡가로 데뷔하려면 어떻게 해야..
이건 사실상 운의 영역이라 뭐라 해 줄 말이 없다.
운빨로 입봉을 해도 다음이 없을 수도 있어서.
프로툴 못하면 녹음실/스튜디오 취직 못해요?
네. 프로툴 안 쓰는 곳도 있기는 한데 그 몇 군데 빼고는 프로툴 쓰는 게 당연한 거라.
프로툴 자격증 있으면 스튜디오 취직할 때 유리한가요
뭐 있으면 좋기야 하겠지.
근데 그게 변별력이 없다는 의견이 많아서 딱히?
진짜 농담 안 하고 예전에 일하던데서 인턴이 자격증 가지고 들어왔는데 뭐 할때마다 버벅거리더니 실장님한테 겁나 까이고 다음날 잠수.
그 뒤로 거기서는 반농담으로 프로툴자격증 있는 사람 안 뽑기로 했다고 합니다.
케이블 차이 느껴지나요
시그널 들어가는 케이블로만 보면 솔직히 케이블 차이 없다는 사람들은 그냥 듣는 방법을 모르는 거라고 생각한다.
남자들 립스틱 색깔차이 모르는 거랑 비슷한 거.
차이가 있는지 없는지 알고 싶으면 스피커 양쪽 케이블을 다른 제품으로 끼워보는 걸 추천합니다. 왼쪽에 까나레 끼우고 오른쪽에 모가미 끼웠는데 차이를 못 느끼면 그 사람은 엔지니어는 길이 아닌 걸로.
왜 다 U87 써요
한 때 한국 녹음실 국룰 구성이 U87에 아발론 737이었고, 조금 지나서 737 대신 1073+CL1B였었고.
이게 스튜디오에서 가장 좋은 결과물을 주거나 이런 조합이어서가 아니라 그냥 클라이언트들이 찾아. 여긴 왜 U87안 써요? 같은 말을 해. 몇천만원짜리 마이크인 C800 가져다 놔도 그 말 나온다고. 적어도 한국에서 장사 하려면 U87 한 대는 있어야 한다.
녹음실 가보고 싶은데 1시간에 얼마?
일단 레코딩스튜디오들은 기본적으로 '프로'라는 단위로 시간을 계산하는데 이게 일반적으로 3시간 30분.
1시간 단위로 해주는 곳들도 있기는 한데 그렇게 가는 건 부정적인 입장이다.
일단 시간단위로 하면 프로단위로 빌리는 것보다 비싸다.
이게 부스에 들어가서 헤드폰 뒤집어쓰고 실제로 녹음하기 전까지 생각보다 시간 소요가 많이 돼서 1시간 빌리면 3분짜리 곡의 벌스 하나 녹음하기에도 시간이 빡빡하다.
그리고 실제로 처음 부스에 들어가면 긴장해서 노래 제대로 못 부르는 친구들이 엄청나게 많다 진짜로. 이게 노래방에서 부르는 거랑 진짜 완전히 다르다.
그래서 얼마냐면 보통 프로당 30주면 괜찮은(가수들녹음하는) 녹음실에서 녹음할 수 있다고 봅니다.
이게 몇 년 전 기준이라 요즘은 다를 수 있다는 것만 알아주시고 참고로 부가세 별도.
엔지니어 없이 혼자 이용되는 녹음실??
뭐 찾으면 나오기야 하겠지만 일정한 수준 이상의 녹음실들은 그렇게 장사 잘 안 합니다.
그 이유가 초짜가 와서 장비 날려먹는다던가 이것저것 눌러보다가 맥 설정 이상하게 꼬여버린다던가 하면 진짜 골치.
그리고 보통 곡 쓰는 분들 노래 부르는 분들 프로툴 못하는 사람이 더 많은데 녹음실은 거의 다 프로툴 써요. 로직 안 깔려있어요. 큐베이스도 없어요.
녹음실 처음 가면 어떻게 해야 해요
보컬기준으로 그냥 멀티트랙 혹은 스템이랑 송폼 표기한 리드시트 가져가세요. 세션 들고 오는 분도 꽤 있음
개인적으로는 2트랙 보다 멀티 추천합니다. 녹음할 때 편한 밸런스가 듣기 편한 밸런스가 달라서 멀티 가져가서 "베이스 조금만 줄여주세요" 같은 걸 가능하게 하는 걸 추천합니다.
세션을 가져올 거면 다 바운스 떠서 가져가는 게 좋아요. 요즘 플러그인이 이것저것 워낙 많아서 작업하던 거 그대로 들고 오면 없는 플러그인이 너무 많아. 그리고 세션 가져갈 때 녹음실 버전체크. 녹음실은 안정성 때문에 최신버전 안 쓰는 게 당연시되는 곳입니다.
그리고 예약할 때부터 처음이라 잘 모른다고 하면 대부분 친절하게 잘해주세요.
부탁드리면 어느 정도 디렉팅도 해주기는 하는데 그거 싫어하는 엔지니어들도 좀 있어서 사전에 협의는 필요합니다.
혼자 가면 누래 부르고 들어보고 하면서 시간 잡아먹는 게 많으니 디렉팅 해줄 사람 한 명 데리고 가는 걸 추천
왜 아직도 n 년 전 맥/프로툴 그대로써
한 번 시스템을 업그레이드하거나 그러면 덩달아서 들어가는 시간/비용이 상당히 많아서 가능하면 주요 시스템은 교체를 잘 안 하는 편. 아직도 쓰레기통 맥 쓰는 곳도 많다. 특히나 프로툴/맥 OS는 업데이트할 때마다 엄청난 스트레스라서 메인 맥에 인터넷 연결 없이 쓰는 스튜디오들도 심심찮게 볼 수 있는 게 현실. 그래서 아직도 오프라인인증/아이락물리키 지원하는 플러그인 회사가 많다고 보시면 됩니다.
요즘 바뀐 아비드의 라이선스 정책을 자세히 안 봐서 모르겠는데, 예전에는 업그레이드 비용도 상당히 들어갔고 그런데도 불구하고 한 방에 일이 되는 꼴을 생전에 본 적이 없어서 욕하면서도 쓸 수밖에 없는 프로툴.
심지어 프로툴은 메이저 업데이트 때 가끔 한 번씩 플레이백 엔진이 뭔가 미묘하게 달라져서 적응하는 시간도 필요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