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명심이 Sep 15. 2023

원망과 증오의 감정 해소법

미운 놈에게는 떡 하나 더 주고 빨리 돌아서야 하는 이유





 오늘은 비가 오는 아침이라 그런가 심리상태가 저기압인 분들이 많이 보입니다.

그래서 오늘은 마음이 힘드신 분들에게 도움이 되실지 모르겠지만 제 방법을 한 번 이야기해보려고 합니다.

내 마음을 힘들게 하는 사람들은 참 많습니다.

가깝게는 형제자매, 남편, 자식, 부모, 애인, 친구, 직장상사, 선생님 등...

멀게는 연예인, 지나가는 사람들, 행복해 보이는 사람들, 여행 다니는 사람들, 유명한 사람들, 정치인, 대통령, 북한 놈들... 나만 빼고 다!!



 아무도 미워하지 않고 사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미움의 정도를 1~10까지로 나눈다면 그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누구나 다 미워하는 대상은 있습니다.

그런데 참 아이러니하게도 내가 미워하면 미워할수록 자꾸 그 미운 대상을 떠올립니다.

특히나 가까운 관계의 사람을 미워할 때는 상대방이 눈에 보이기 때문에 더욱 마음에 맺히는 상대방의 상을 밀어내지 못합니다. 그리고 속으로 온갖 저주를 퍼붓고 부정의 에너지를 뿜어냅니다.

망해버려라, 죽어버려라, 길 가다 차에 치여라, 가다 똥이나 밟아라, 내가 너 얼마나 잘 먹고 잘 사는지 두고 볼 거야!! 하며 무기한의 증오를 선언합니다.



 그런데 또 아이러니하게도 내가 미워하면 미워할수록 그 대상을 더 미워해야 할 일이 나에게 생깁니다.

그런 인간이 더 잘 된다는 거죠.. 나한테 상처와 피해를 주고 본인은 상사에게 예쁨 받으며 승진하고, 여행 다니고, 집 사고, 더 잘 벌고, 더 행복하게 삽니다. 그러면 나는 더 배가 아프고 급기야 신을 원망합니다. 그리고는 신의 존재를 부정합니다.



"아니, 나에게 저런 짓을 한 사람이 어떻게 더 잘 먹고 잘 살 수가 있습니까? 세상에 신은 없는 거 같네요. 신이 있었다면 벌을 내렸어야죠. 남에 눈에 피눈물을 흘리게 한 사람들은 잘 살고, 그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나만 더 고통스럽고 힘드네요.. 불공평한 세상이에요. 하늘이 원망스럽습니다."

미움이 깊어지면 절로 나오는 레퍼토리입니다.



 여기에 정답이 다 있습니다.

네, 세상은 원래 불공평합니다. 공평하다면 애당초 약육강식은 없었겠죠. 수많은 다양한 종들이 먹이사슬관계에 놓일 일도 없고, 그럼 결국 멸종되고 진화 또한 없었을 겁니다.

모든 생명체에게 가장 중요한 목표는 생존입니다. 그래서 이름도 단순합니다. "생명체"

지금 내가 살아있다는 건 나의 조상님들도 살아남기 위해 다른 생명체를 이기고, 죽였고, 남의 것을 빼앗고, 짓밟아 가면서 온 겁니다. 나 역시 기억하지 못하겠지만 누군가를 밟았기에 올라갔던 경험이 있을 것입니다. 우주는 선과 악을 구분하지 않습니다. 나를 포함한 모든 것은 하나의 에너지 집합체일 뿐입니다.

그냥 억울해하지 마시고 욕 한 사발 퍼붓고 당연한 건 받아들이셔야 맘이 편합니다.



 물론 현대사회는 물질이 풍요로우니 생존을 걱정할 일은 별로 없습니다. 그러다 보니 생존유지 장치인 불안, 불평, 불만은 과다한 잉여감정이 되어서 나와 타인을 공격합니다.

스마트폰 배터리를 사람에게 장착했다고 생각해 봅시다. 자고 일어나서 배터리가 100으로 완충된 상태에서 우리는 에너지를 사용하기 시작합니다.

아침에 일어나서 씻고, 밥 먹고, 출근해서 일하고 퇴근해서 친구 만나 술 한잔하고 집에 돌아와 씻고 쉬다가 다시 잠드는 모든 양적 활동과 내가 뭘입을지 뭘 먹을지 생각하고 느끼고 사고하는데 들어가는 내적활동까지 뭘 하던 100이라는 배터리 용량에서 에너지를 사용합니다.

 


 사람의 에너지도 결국 같은 원리입니다. 내가 가진 에너지를 어떤 행동과 감정으로 쓰던 100이라는 총량 안에서 분배해서 쓰고있습니다. 그래서 누구를 좋아하건 미워하건 감정도 결국 다 같은 에너지일 뿐이라는 겁니다. 그렇게 내가 소모한 에너지는 다 사라지는 걸까요?

아니죠. 에너지는 안 보이지만 유기적으로 순환하고 있습니다.

자원을 통해 만들어진 전기가 배터리라는 물체로 옮겨와 저장되고 다른 물체의 동력으로 작동되고 다른 물체는 다른 것을 생산하며 생산된 것은 또 다른 것을 작동하게 쓰고남은 폐기물은 다시 모여 자원으로 재탄생하며 또 다른 에너지를 생산하는 동력이 됩니다. 그래서 모든 것은 순환하며 이것은 무한 반복입니다.




내가 오늘 누군가를 미워하는데 20% 에너지를 뿌렸다면 그 에너지는 내가 미워하는 상대에게 전달됩니다. 그 사람은 그 에너지를 흡수해서 20%라는 추가 동력을 얻게 됩니다.

이게 말이 된다는 건 눈에 보이지 않아도 기(氣)는 분명히 존재하고 있으며 그 존재는 부정할수 없이 모두 다 느끼는 실존의 에너지입니다. 기는 행동을 통해 발산되기도 하며, 감정을 통해 발산되기도 합니다. 기쁨은 나누면 배가되고, 슬픔은 나누면 반이된다. 도대체 기쁘고 슬픈 그 감정이 무엇이길래 더하고 덜어낼 수 있는 걸까요? 

이처럼 기라는 것은 내 감정, 말, 행동 그 어떤형태로든 쓰이며 전달되는 에너지입니다. 그래서 나의 에너지는 그것이 긍정이던 부정이던, 관심이던 미움이던 전달받는 대상에게는 그저 에너지로써 작용할 뿐입니다.

특히나 관심을 먹고사는 부류의 사람들인 연예인, 정치인, 인플루언서, 유튜버등 그들은 웃으며 말합니다. 악플도 관심이라고 말이죠.




 반대로 누군가에게 관심을 못 받는 사람들은 잘 먹고 잘 살 수가 없습니다. 아무도 그를 기억하지 못하고 떠올리지 않으며 아무런 감정의 에너지도 주지 않는다면 결국 받을 에너지 또한 없으니까요...

우리가 특정 연예인이나 정치인을 또는 사회적 불합리에 불만을 토로하며 혀를 끌끌 차면 찰수록 내 에너지를 그들이 다 흡수하게 힘을 얹어 주는 것과 다름이 없습니다. 그래서 그 사람들은 더 잘 삽니다. 불편한 진실이죠.




 그래서 저는 언젠가부터 뉴스도 잘 안 보고, 남 얘기도 잘 안 하려 하고, 매사 그러려니~ 하고 부정적인 생각으로부터 심리적 균형상태를 유지하려고 엄청 노력합니다.

모든 에너지는 항상 균형을 유지하려고 할 뿐 그 전환과정에서 사건으로 일어나는 충돌은 내 상태를 봐가면서 균형을 맞추지 않습니다. 그래서 힘든 일도 한꺼번에 오고 좋은 일도 한꺼번에 오나 봅니다.

에너지 균형의 관점에서 음양이 교차하는 것을 인간들은 고진감래 흥진비래로 본 것입니다.




 그런데 뭐든 치우치는 것이 제일 무섭습니다.

내가 고통으로 많이 기울어져 있는 만큼 반대쪽의 쾌락을 동일한 만큼의 힘으로 눌러줘야 수평이 이루어지기 때문에 지금 너무 고통스럽고 힘들고 죽는 게 차라리 낳겠다는 마음이 든다면 다시 균형으로 돌아가기 위해 엄청난 양의 큰 쾌락을 필요로 합니다.

고통에서 벗어나고 싶다면 방법을 찾으셔야 합니다.

내가 지금 누군가를 미워하고 피해의식으로 가득 차 있는 이유는 자의식이 과잉되었기 때문입니다.

자의식은 자아가 붕괴되는 것을 막기 위해 보호하는 역할을 합니다. 즉 적당한 자기 합리화, 남 탓, 등의 방어기제를 통해 내가 나를 지켜갈 수 있을 정도로 자존감을 유지시켜 주는 게 정상적 기능입니다.

그런데 자의식이 과잉이 되면 그건 문제가 됩니다.

자기 스스로를 너무 높게, 가치 있게 평가함으로써 내가 받고 있는 대우가 실제 나의 실력에 비해 부당하다 여기며, 남 탓이 피해의식 수준으로 과해집니다.


나에게 일어난 상황은 이치에 맞지 않으며 나는 늘 피해자입니다. 타인이 생각하는 나, 타인에게 비치는 나, 타인의 평판이 곧 나를 결정합니다.



 실제 있었던 사건을 나의 감정을 더해 스토리화하면서 사실과 다르게 기억의 왜곡이 일어납니다. 그리고 왜곡된 기억을 진짜라고 믿게 됩니다.

낮은 수준의 불안이나 불만이 발행할 때 빠르게 해소해버리지 못하고 계속 미워하는 마음을 가지고 오게 되면

자의식이 결국 자아를 지배하게 됩니다.

 


 또 타인에게 보이는 모습을 나 자신으로 받아들이는 순간에도 불행과 불만족이 시작됩니다.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불행합니다...

비교가 시작되는 순간 인간은 자신의 변화의 가능성을 부정하게 됩니다. 이미 세상을 보는 관점이 내가 아닌 타인기준으로 바뀌어 버렸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쟤보다 잘나야겠고, 쟤보다 예뻐져야 하며, 쟤보다 부자가 되어야 하고, 쟤보다 좋은 차를 타야겠고, 쟤보다 행복한 모습으로 살도록 타인에게 보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감정이 많이 치우 져져 있을수록 고통의 추는 크게 기웁니다. 그러면 웬만한 작은 쾌락으로는 타인을 미워하는 마음의 고통으로부터 해방되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한방에 큰 쾌락추를 올려 급격하게 수평을 잡으려 한다면 그 과정에서

많은 에너지 충돌이 일어날 겁니다. 빠른 속도 안에는 언제나 살기(殺氣)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타인에 대한 미운감정으로 고통이 너무 극에 달하면, 판단력을 상실하고 내가 살기 위해(고통에서 해방되기 위해) 그 사람을 제거(죽여)해버리는 수준의 강력한 쾌락을 우발적으로 선택하는 극단의 경우가 있는 겁니다.......



 그러니 저렇게 충격적인 쾌락을 추구하는 상태까지 가기 전에 일상에서 얻는 소소한 행복의 빈도를 천천히 올려가야 합니다. 일단 감정은 생각으로 제어할 수 없는 영역입니다. 오로지 말, 제스처, 등 다양한 행동으로 표출됩니다.

기쁘면 소리 내어 웃고, 손뼉 치고, 누군가를 끌어안고, 팔짝팔짝 뜁니다. 미소는 절로 나오며, 콧노래도 납니다.

슬프면 대성통곡하고, 눈물 콧물 짜내며 , 감정을 배설하듯 발산합니다.



 미워하는 마음과 원망의 감정도 해소하기 위해서는 행동을 해야 합니다.

첫 번째.  미워하는 대상을 머리에 떠올리는 것을 멈추세요. 내가 떠올릴 때마다 내 에너지를 그 사람이 가져간다고 생각하면 의식적으로 미워하는 마음을 차단할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뺏긴 것도 억울한데? 내가 그냥 원망과 분노의 감정을 느끼는 것만으로도 내 에너지를 그 사람에게 주고 있다는 사실을 항상 기억하세요

그래서 현자들은 그렇게 말해왔나 봅니다. 원수를 사랑하고, 미운 놈은 떡을 하나 더 주며, 내 탓이오 하라고.



두 번째. 나 스스로 좋은 작은 행복을 차곡차곡 쌓으세요

여행을 가거나 새로운 경험을 하거나, 전혀 모르는 동네를 무작정 걸어보거나, 운동을 하거나, 양질의 단백질을 섭취하거나, 청소하거나, 작은 목표를 세우고 달성하거나, 음악이나 영화를 보거나, 살짝 빠르게 걷거나, 햇볕을 쬐거나, 책을 읽거나, 새로운 것을 배우거나...



마지막 세 번째 나를 유일한 나로서 돌아봐주세요

결국 나를 힘들게 만든 건 그 사람들 때문이 아니라, 진짜 상처 입은 나의 마음을 방치해 온 나 때문입니다.

남에게 자신을 가져다 맞추고, 남을 미워하기만 하는데도 왜 내가 아파야 하나요?

당신이 누군가를 미워하는데 그만큼의 감정 에너지를 빼서 섰으니까 당신은 무기력해지는 겁니다.



더 이상 에너지 낭비하지 말고

나부터 사랑하시고, 나부터 치료해 주세요.

나를 사랑하는 에너지는 고스란히 나에게 옵니다.

그래서 나를 사랑하는 방법을 깨달은 사람들은 진짜 행복이 뭔지, 그 감정이 어디에 머무는지를 압니다.



 

잠언 4장 23절에

"모든 지킬만한 것 중에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

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생명의 근원이 마음에서 난다. 즉 마음은 생명의 근원이다.라는 말입니다.

마음이 무엇이길래 생명의 근원이라고 할까요?

인간의 언어는 추상적인 것을 구체적으로 설명하기 힘들다는 한계가 있습니다만

마음은 내 영혼이고 생명의 근원은 에너지를 말하는 거 같습니다.

내 영혼을 행복하게 하는 것이 나를 잘 살게 하는 것이니

모두가 행복한 세상이 왔으면 좋겠습니다.



작가의 이전글 유난히 불안이 많은 사람들에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