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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사랑 Mar 18. 2024

언어 잼뱅이의 영어 분투기

나의 외국어 학습 분수령 

전 참 운이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고 3 때, 교수가 되기로 마음을 먹었고, 당시 부족한 지식을 쥐어 짜내어 어떻게 하면 쉽게 교수가 될 수 있을까 고민을 했습니다. 그때 제 조그만 생각으로 20년 후에는 한국이 더 발전해서 환경과 생태에 더 많은 인력이 필요하겠다고 생각을 하였고, 그래서 다른 전공보다 생태학이 더 교수가 쉽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래서 생태학자가 되기로 결심을 했습니다 (참 이렇게 쓰고 나니 부끄러운 이유의 진로 결정이네요). 그렇게 대학에 입학하자마자 교수가 되기 위한 15년 계획을 세웠습니다.  그리고 한국에서가 아니고 미국에서 교수를 해보겠다고 마음을 먹었습니다. 그것도 저는 돈이 없고 도움을 받을 기대도 할 수 없으니 장학금을 받고 공부하겠다고 마음을 먹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제가 무슨 근거로 그런 계획을 세웠는지, 어떻게 그런 자신감을 가지고 있었는지 잘 이해가 되지 않지만, 그때는 15년을 그렇게 노력하면 교수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아니 더 정확하게 말하면 최소한 그렇게 노력을 하고 목표를 이루지 못해도 15년을 열심히 노력하고 나서 실패하면 후회는 없을 것 같았습니다. 지금은 상상도 못 하시겠지만, 그때는 해외여행을 하려 해도 안기부에서 허가가 떨어져야 할 때였고, 단순히 단기간 가까운 이웃 나라에 여행을 가는 것조차 매우 어려울 때였습니다. 제 계획을 들은 주위 사람들의 대부분은 허황된 꿈을 꾸지 말라고 저에게 조언을 했습니다. 현실을 잘 직시하고 있었던 사람들은 머리도, 능력도, 돈도 없는 제가 그 꿈을 이룰 가능성은 없다고 말하면서 저를 걱정해 주었습니다. 그런데 왜인지는 모르지만 그들의 걱정이 귓등으로도 안 들렸습니다. 그때 생각으로는 만약 제가 제 꿈을 이루지 못한다면, 그것은 제가 노력을 안 해서가 아니고 능력이 못돼서 안된 것이니 겸허히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노력도 시도도 안 해본다면 평생 후회할 것 같았습니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대견한 생각이기도 하고, 정말 괴짜이자 아웃사이더의 기질을 가지고 있었다는 생각도 듭니다. 


하지만 문제가 하나 있었습니다. 전에 글에서도 말씀드렸듯이 고등학교 다닐 때, 전 참 영어를 못했습니다. 그냥 언어에 재능이 없었습니다. 고등학교 다닐 때, 하루 최소 2시간 평균 4시간은 영어 공부를 했지만, 이해가 잘 되지도 않았고, 단어를 하나 외우면 하나를 까먹었습니다. 지금에 와서 생각해 보면 영어를 공부하는 방법이 잘못되었던 것인데, 저에게 어떻게 공부해야 하는지 알려줄 사람도 없었고, 도움을 받을 곳도 없어서, 저에게는 단순히 '열심히' 공부하지만 성적은 나오지 않는 딜레마에 빠져 있었던 시절이었습니다. 


하지만 외국에서 공부하려는 꿈이 있었기에 재능이 없다는 단어 하나로 포기할 순 없었습니다. 그래서 조급한 마음을 갖지 말고, 천천히 공부를 하기로 했습니다. 아기가 말을 배우듯이 듣고 말하고, 읽고 쓰는 연습을 하기로 했습니다. 매일 6시에 일어나서 라디오로 영어 프로그램을 들었고, 영어 회화책을 외웠습니다. 그리고  찾을 수 있는 가장 싼 영어학원을 찾아가 매일매일 영어 공부를 했습니다. 매일 최소 2시간, 시간이 있을 때는 하루 8시간씩 공부를 했습니다. 제가 들을 수 있었던 최고의 칭찬은, 어머니가 왜 다른 집 대학생은 노는데, 너는 왜 고등학교 때보다 더 열심히 공부하냐며, 제발 자라고 하시는 말씀이었죠. 그렇게 4년을 하니 일상적인 대화가 되기 시작하더군요. 남보다 조금 잘하는 것 같자, 조금씩 영어가 재미있어졌습니다. 귀가 들리니 말을 할 수가 있게 되었고, 책을 사서 혼자 글쓰기를 공부하면서 조금씩 영어가 늘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오래 영어를 공부한 덕분에 토플과 지알이 시험도 한 번만에 제가 필요한 점수를 얻을 수 있었고, 유학도 올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유학을 와서 첫 학기는 순조롭게 흘러갔습니다. 전공 수업을 따라가는 것도 어렵지 않았고, 대부분의 의사소통에도 큰 어려움은 없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대학원 친구 중 하나가 오늘 대학원생들끼리 같이 커피숍에서 차를 마시는데 같이 가지 않겠냐고 물어봤습니다. 친구를 사귀는 좋은 기회가 될 것 같아서, 처음으로 다른 학생들과 같이 놀러 가게 되었습니다. (제 전공 자체가 외국인이 많이 하지 않는 전공이라 대학원생의 대부분이 영어를 모국어로 쓰는 학생들입니다.) 그 커피숍에서 전 유학 와서 처음으로 언어에 큰 좌절감을 느꼈습니다. 2시간 동안 저는 아무 대화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저 바보처럼 미소를 지으면서 간간히 고개만 끄덕일 뿐이었습니다. 


이상하지 않으세요? 한국에서도 미국에 와서도 의사소통에 문제가 없었던 제가 왜 2시간이라는 긴 시간 동안 한마디도 못 알아 들었던 것일까요? 그 이유는 대화의 주제에 있었습니다. 자연스럽게 흘러간 그날의 대화는 어려서 텔레비전에서 봤던 만화에 대한 얘기였습니다. 어떤 만화가 방영되었는지, 그 만화에 나오는 캐릭터의 이름이 무엇이었는지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저에게는 그저 한마디도 알아들을 수 없는 외계어였던 것입니다. 또한 이 경험은 일반적인 미국 대학생의 마음을 알 수 있는 기회이기도 했습니다. 만약 한국에서 그런 일이 있었다면 머리색이 다른 단 한 명의 이방인을 위해 이방인이 끼어들 수 없는 대화의 주제를 2시간이나 유지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물론 제가 재치가 있었다면 대화를 자연스럽게 다른 주제로 끌고 왔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내성적인 성격의 저로서는 그냥 2시간 동안 미소를 지으면서 고개를 끄덕인 것이죠. 어쩌면 그 학생들은 '저 동양 학생은 다 알아듣지만 대화에 참여하고 싶어 하지는 않는구나'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쨌든 이 사건은 제 자신에 대해 배우고 미국의 문화에 대해서 경험한 좋은 기회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제가 가진 영어에 대한 생각을 크게 바꾼 계기가 되기도 했습니다. 


그전까지는 영어의 기능적인 것에 포커스를 맞추었다면 이날부터는 문화적이고 문맥적인 영어에 더 초점을 맞추기 시작했습니다. 그 결과로 코난 오브라이언 등 다양한 토크쇼를 보기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또한 문화를 이해하기 위해서 역사에 관심을 갖고, 또한 생활습관의 차이에 대해서도 관심을 갖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면서 발견한 것은, 단순한 발음보다는 그들이 평소에 말하는 문맥에 맞게 대화를 이어나간다면 그리고 그들의 컬처 코드에 맞게 대화를 이어나가면 더 쉽게 대화를 이어 나갈 수 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그때까지 외국인들이 제 영어를 못 알아 들었던 것은 제 발음의 문제라고 생각했는데 (물론 제 발음의 문제도 있었겠지만) 그보다는 제가 그들의 문화를 몰라서 의사소통이 어려웠던 경우가 더 많았다는 것을 깨달은 것입니다. 


어쩌면 저는 이 사실을 훨씬 더 일찍 깨달아야 했었습니다. 분명히 알고 있는 사실이었는데, 저는 깨닫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스피노자가 '안다는 것은 느낀다는 것이다'라고 말했던 것처럼, 저는 안다고 생각했지만 뼛속 깊게 문화의 차이를 느끼지 못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유학을 오기 전, 제가 영어를 가르쳐주던 선생님 중 한국이 너무 좋아져서 미국에 돌아갔다가 다시 돌아와서 한국어 어학당을 들어간 사람이 있었습니다. 하루는 저에게 한국어 숙제를 도와달라고 하더군요. 그 숙제는 "중간, 중심, 중앙"의 차이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저는 분명히 그 뜻의 차이를 명확히 알고 있었는데, 그 차이를 설명하는데 매우 힘들었습니다. 또한 각 표현이 중첩되는 부분(예를 들어 한 책이 책장의 중간에 있으면서 중앙에 있는 경우)도 그 친구에게 이들의 차이를 설명하는데 것을 더 어렵게 만들었습니다. "어머나 세상에"는 맞는 표현이지만, 왜 "어머나 세계에"는 틀린 표현인지 두 표현에는 어떤 차이가 있는지 설명할 수 없었습니다. 또한 한 번은 "(손오공) 부처님 손바닥 안이다"라는 표현을 설명하려니, 서유기를 설명하지 않고는 설명이 매우 어려워짐을 느꼈습니다. 한국인이라면 쉽게 이해할 표현이라서 깊게 생각해 본 적이 없었지만, 평소의 표현들이 얼마나 많은 문화를 담고 있는지를 이러한 경험을 통해서 저는 이미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언어라는 것이 단순한 단어의 전달이 아닌 문화의 전달이라는 것을 제 아픈 경험을 통해서 비로소 깊게 느낄 수 있었던 것입니다. 


통역을 하면서도 이것이 가장 큰 어려움 중의 하나입니다. 통역사는 '관 (conduit)'의 역할을 하는 것이 기본이기 때문에, 자신의 생각을 넣으면 안 되지만, 한국어 사용자와 영어 사용자의 생각과 문화가 너무 떨어져 있어서 아무리 통역을 해도 서로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챗바퀴를 도는 경우를 자주 접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와 똑같은 이유로 저는 너무 어린아이들이 영어 '몰입교육'을 받는 것에 반대하는 입장입니다. 한국어를 통한 한국문화의 기초를 충분히 쌓지 않고 영어의 문화를 받아들이게 하는 것은 아이의 자아 형성에 긍정적이지 않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저는 아이가 한 가지 언어를 통해 자신의 아이덴티티를 쌓은 후에 두 번째 언어에 대한 몰입 교육을 하는 것이 바른 언어교육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와 비슷한 이유로 북미에서 태어나고 자란 제 아이들도 어려서 아이덴티티를 찾는데 많은 고비를 넘겼고, 그래서 저희도 아이의 언어를 가르치는데 많은 노력을 하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한국에서 행해지는 과도한 영어교육에 많은 우려가 되고, 아이에게 '영어'를 도구로서 제공할 것인지 문화로서 제공할 것인지에 대해, 한국의 부모들이 많은 고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오늘은 주제가 주제가 좀 횡설수설한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제 글이 영어 공부에 고민을 하고 있는 혹은 자녀의 영어 공부에 대해 고민을 하고 계실, 그리고 외국에서 자녀의 언어교육에 대해 많은 고민을 갖고 계실 독자분들에게 작으나마 도움이 되길 희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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