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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사랑 Jul 31. 2024

(육아회고 18) 성공하는 버릇

작은 성공들 

전에 말씀드린 적이 있지만 전 아이들에게 공부하라는 잔소리를 거의 한 적이 없습니다. 특히 아이들이 어릴 때는 공부하라는 얘기를 더 하지 않았습니다. 아이들이 고등학교에 들어가고 나서, 성적 때문에 원하는 전공을 못하는 건 현명하지 않으니, 하고 싶은 전공이 있다면 그 꿈을 이룰 수 있을 정도의 성적을 받으라고 한 것이 공부하라는 잔소리의 거의 다였던 것 같습니다. 대신 공부를 하는 자세에 대한 잔소리는 조금 했던 것 같습니다. 예를 들어, 공부를 할 때는 진짜 공부를 하는 것처럼 집중해서 하고, 집중을 못할 것 같으면 차라리 놀라고 했고, 공부의 집중을 못하는 것을 외부의 요인에 핑계 대지 말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공부하라고 잔소리를 하지 않는다고 해서, 제가 아이들의 미래에 대해 관심이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여느 부모와 마찬가지로 아이가 공부를 잘하기를 바랐고, 좋은 학교에 들어가고, 안정된 직장을 가지고 경제적인 어려움이 없이 살길 바랬고 지금도 바라고 있습니다. 하지만 단지 저는 좋은 성적이 좋은 미래를 약속해 준다고는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초중고를 다는 동안의 교육이 올바른 가치관을 세우는데 도움을 주고, 기본적인 지식, 인간관계의 법칙, 그리고 좋은 습관을 갖는데 중요한 과정이라고 여겼기 때문에 아이들이 그 학교에서 필요한 것들을 얻기를 바랐습니다. 또한 제가 잔소리를 한다고 아이가 더 공부를 열심히 하리라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아이들이 자신이 '왜' 열심히 해야 하는지를 알게 된다면, 스스로 잘하리라는 믿음이 있었을 뿐입니다. 


저의 궁극의 양육 목표는 아이가 '행복한' 사람으로 크는 것이었습니다. 제가 공부하라고 잔소리를 한다거나, 아이가 공부를 잘한다고 해서, 아이가 행복해진다고는 믿지 않았기 때문에 공부가 우선순위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아이가 "성공하는 습관"을 가진다면 아이가 행복해질 가능성이 더 커진다고 생각했습니다. 제가 살아온 좁은 경험에 비추어볼 때, 사람은 "성취감"에서 행복을 느끼고, 조그마한 것에서도 성취감을 느끼는 방법을 배운다면 아이가 조금은 더 행복해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제가 여기서 말하고픈 '성공'은 돈을 많이 벌거나 좋은 직장을 갖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자신이 목표한 것에 조금 더 가까워지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설령 그 목표를 달성하지 못해도 괜찮습니다. 내가 최선을 다했지만 내 능력이 모자라서, 운이 닿지 않아서 어떤 목표를 못 이루는 것은 누구의 잘못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공부를 억지로 시키거나 아니면 무언가를 강요하기보다는 아이가 '성취감'을 느낄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려고 노력했습니다. 




나무위키를 찾아보니 성취감(accomplishment)을 "자신이 뜻한 바를 이루었을 때 얻는 감정"이라고 정의하고 있네요. 또한 캐임브리지 사전은 accomplishment를 "성공적인 일 혹은 많은 노력을 들인 후에 이루어 낸 일"이라고 정의하고 있습니다. 저는 이 두 가지 정의를 합쳤을 때, 성취감을 더 잘 표현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시 말해서 "자신이 뜻하는 바(이루기 어려운 것)를 많은 노력을 들여서 이루어 낸 후에 느끼는 감정"이라고 표현하고 싶습니다.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더라도 약간의 노력만으로 쉽게 얻을 수 있는 것에서는 성취감을 느끼기 어렵다는 것을 경험으로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이가 성취감 - 저는 아이를 키울 때, 이것을 "작은 성공"이라고 불렀습니다 - 을 느끼게 하기 위해서는 세 가지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첫째는 부모의 도움이 어느 정도 배제되어야 합니다. 부모가 많이 도와주게 되면 아이는 자신이 많은 노력을 넣지 않게 됩니다. 언젠가는 부모가 도와줄 것이라는 것이라고 아이가 믿게 되면, 아이는 스스로 노력하지 않게 되고, 오히려 아이의 발전을 저해한다고 생각합니다. 부모의 1의 노력이 아이의 10의 노력보다 크기 때문에, 아이는 오히려 자신의 능력을 부모와 비교하고 자신의 능력에 좌절하거나 값없게 여길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둘째는 아이가 발전하는 것에 대해서 칭찬해 주어야 합니다. 아이는 종종 자신을 어른과 비교하기 때문에 자신이 이룬 것을 과소평가하는 경우가 종종 있는 것 같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이의 발전에 대해서 칭찬해 주어야 아이가 계속해서 노력을 해나갈 수 있게 된다고 생각합니다. 셋째는 아이가 "성공하는 습관"을 갖도록 해주어야 합니다. 포기는 누구에게나 쉽고 달콤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누구나 쉽게 포기하곤 합니다. 아이가 무언가를 포기하지 않도록 격려하고 훈육해서, 포기하지 않고 노력했을 때 '성취감'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을 체득시켜 주어야 합니다. 


이러한 3가지 단계 중 두 번째의 칭찬에 대해 부모가 특히 조심할 것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오래전에 "칭찬을 고래도 춤추게 한다"라는 책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이 책에서 상어조차 무서워하는 난폭한 범고래가 사육사의 칭찬을 통해서 춤을 추게 되는 것을 보면서, 칭찬이 참 강력한 것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느꼈습니다. 그런데 조금 더 시간이 지나고 나서 조금 더 생각해 보니, 칭찬의 독성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단순히 말해서 이것입니다. "그 춤을 추는 것이 그 고래를 더 행복하게 만들었을까요?" 그 고래는 사육사와의 유대관계, 혹은 간식을 먹기 위해서 춤을 추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이 정말 고래가 춤을 추고자 하는 의지의 발현이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또한 범고래의 입장에서는 그것이 '춤'이 아니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이들은 늘 부모의 칭찬을 갈구합니다. 특히나 다른 어떤 동물보다도 오랫동안 부모에게 생존을 의지해야 하는 인간의 아이들은 그 부모의 눈치를 더욱더 많이 보도록 프로그램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한 결과로 부모에게 칭찬을 듣기 위해서 거짓말을 일삼는 아이, 부모가 보는 곳(칭찬을 받을 수 있는 곳)과 보지 않는 곳에서 행동이 완전히 달리지는 아이 등, 아이들을 가르치다 보면 칭찬의 부작용을 종종 접하게 됩니다. 그리고 부모가 원하는 일을 했을 때, 또는 그 방향으로 나갔을 때에만 칭찬을 하는 부모들도 많이 보았습니다. 


아이가 성취감을 느끼려면, 아이가 무언가를 원하고, 그것을 이루기 위한 방향성과 그 목표까지 이르기 위한 중요한 단계들을 세우고 또 이루어야 한다고 봅니다. 위의 '성취감'의 정의에서 보는 바와 같이 "자신이 뜻하는 바"를 이루어야 느낄 수 있는 것이 성취감이니 독자 여러분도 제 생각에 동의하시리라 믿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는 부모가 칭찬이라는 도구를 사용하여 아이를 길들이는 (tame) 것은 아이가 성취감을 느끼게 하는 것에서 오히려 멀어지게 만드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수십 년간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공부에 '흥미'를 느끼지 못하는 학생들을 정말 수없이 바 왔습니다. 그 학생들의 공통점은 공부를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부모"를 위해서 하는 것이었습니다. 좋은 대학을 가서 부모를 기쁘게 해 주기 위해서, 책상 앞에 앉아있으면 부모님이 좋아하시니까. 그냥 억지로 공부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책상에 앉아서 딴생각을 하고, 오래 앉아만 있으니 공부의 능률이 떨어지는 악순환이 반복되는 것 같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을 위해서 공부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고3이라는 이유로 유세를 떠는 것이죠. 자신은 부모를 위해서 공부하고 있다고 생각하니깐요.  




두 번째로 주의할 점은, 이 '성취감'은 남을 이기는 성취감이 주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쉽게 이해가 되지 않으시죠? 제 영어공부 경험을 말씀드리면 좀 더 이해가 쉽지 않으실까 합니다. 전 중고등학교를 다닐 때, 다른 과목에 비해서 영어를 유독 못했습니다. 하루에 2-3시간 이상 꾸준히 공부했는데, 영어실력이 잘 늘지도 않았고 성적이 비슷한 친구들에 비해서 영어점수가 떨어졌기 때문에 등수가 오르기도 쉽지 않았습니다. 더욱이 남보다 더 많은 시간을 영어에 투자하는데 다른 친구들보다 훨씬 낮은 점수를 받는 것에서 좌절감도 느꼈습니다. 그런데 대학에 와서 매일 2시간 이상씩 5년을 영어 회화 공부를 하니 어느 순간 남보다 영어를 더 잘 듣고 말하는 저를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그때부터 영어가 조금씩 재미있어지기 시작한 것 같습니다. 많은 노력을 통해서 어느 수준 이상이 되었다는 생각에, 영어가 잘 늘지 않아도 더 이상 고통스럽지 않았고, 천천히 조금씩 늘어가는 제 영어실력에 영어공부에 점차 재미를 붙이게 되었습니다. 


한참 후에 제가 느낀 것은 학교를 다닐 때, 영어 성적이 나빴던 것은, 제 어학에 대한 재능이 떨어지는 것도 있지만, 제 공부습관이 나빠서였다는 것입니다. 저는 아무런 목표나 계획이 없이 무작정 공부를 했고, 특히나 저는 주위의 사람과 저를 비교하고 경쟁을 하느라 충실히 100% 공부를 하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제 공부를 하는 것이 아닌 그냥 남들이 하는 것을 따라 하면서, 경쟁을 한 것이고, 압박감과 싸우고 있었던 것이죠. "나는 왜 영어에 이렇게 재능이 없을까?" "나는 왜 영어실력이 늘지 않을까?" "영어를 더 잘해야 좋은 학교에 갈 수 있을 텐데?" "어떻게 해야 영어 성적이 더 잘 나올 수 있을까?" 이런 생각들이 제 영어공부를 오히려 방해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대학에 와서는 회화라는 뚜렷한 목적이 있었고 제 자신과만 싸우면 되었기 때문에 꾸준히 포기하지 않고 영어를 공부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다시 말해서 제 초점이 '타인과의 비교'와 '남들에게 보일 자신'에게서 '영어 회화'라는 스스로의 목적으로 옮겨지면서 꾸준히 노력하게 되고, 많은 노력을 들여서 목표한 바도 이루었기 때문에 성취감도 느낄 수 있었던 것이지요. 


또한 어떤 일을 해도 나보다 더 재능이 있고 능력이 있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아이가 '어제보나 나아진 오늘의 나'가 목표가 아니라 '그 어떤 누구보다 잘하는 나'를 목표로 삼게 되면 쉽게 실망하는 것 같습니다. 모든 아이들이 가지고 있는 재능이 다르기 때문에, 자신과 남을 비교하기 시작하면, 성취감보다는 열등감이 더 생기기 쉬운 것 같습니다. 늘 나보다 더 좋은 재능을 가진 친구들이 늘 주변에 있기 마련이니깐요. 남보다 모든 것을 잘하고자 하는 마음은 교만이고 또 불행해지는 지름길이라고 생각합니다. 또한 이러한 잘못된 마음가짐을 갖게 되면 오히려 계속 포기하는 나쁜 버릇을 들이기가 더 쉬워진다고 생각됩니다.   




제가 제안하고 싶은 것은, 아이가 자신의 수준에 맞는 작은 성공들을 하도록 도와주고, 그 작은 성공들을 계속 확장하도록 도와주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제 첫째는 저를 닮아서 운동신경이 별로 좋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아빠인 저와 캐치볼을 하는 것을 어려서부터 좋아했습니다. 아마도 씨끄럽게 떠들어도 되는 밖에 나가서 노는 것도 좋고, 아빠와 의미 있는 시간(quality time)을 보낼 수 있어서였을 것 같습니다. 또한 캐치볼을 하면서는 칭찬을 들을 수 있어서 좋아했을 것 같습니다. 어쨌든 아이는 자신이 좋아하는 캐치볼을 하면서, 오늘은 어제보다 더 정확하게 던지는 것도 칭찬받을 수 있고, 어제는 10번을 놓쳤지만 오늘은 9번만 놓치는 것에도 칭찬을 들으면서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렇게 10년 정도 아빠랑 캐치볼을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눈과 손의 협응력이 높아지고 (hand-eye coordination), 운동신경이 없던 아이가 운동에 자신감이 있는 아이로 있었습니다. 나중에는 소프트볼 클럽팀의 3루수로 활동하기도 했고요. 


이제는 학교에서 자신이 맡은 바를 알아서 잘하는 하이들을 보면 참 대견합니다. 아직 부족하고 더 발전해야 하는 부분이 많은 것은 사실이지만, 그 나이 때의 저보다는 나은 사람인 것 같아서 보기 좋습니다. 또한 학교생활이 행복하다고 해서 참 좋습니다. 아이가 이렇게 행복하게 큰 데는 '작은 성공'을 할 수 있도록 옆에서 도와준 아빠의 몫도 조금은 있다고 생각하니, 제 입가에 미소가 머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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