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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경원 Nov 25. 2023

우아하게 헤어질 결심.

혼자 화장실 사용하는 게 힘들어지자 엄마는 화장실 가는 횟수를 극히 줄였다. 게다가 나나 동생이 화장실에 함께 들어가 도와주는 걸 엄마는 무척 자존심 상해했다.  참을 만큼 참다 화장실에 갈 때면 곁에서 시중들어 주려 함께 들어가는 나를 막무가내로 밀쳐내며 무섭게 소리치는 엄마가 안타까워서 차라리 엄마가 완전히 아무것도 인지하지 못했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해져 화장실 문 손잡이를 잡고 울어야 했다.


몸은 노쇠해져 마음대로 움직여주지 않았으나 엄마의 인간적인 자존심은 여전히 강했다. 그리고 아직 희미하게 남은 정신은 엄마가 우리에게서 멀어질 기회만 엿보는 것 같았다. 

밥 상 앞에서 자주 투정 부리며 울기도 하고, 조금이라도 틈이 생기면 밖으로 나가 애를 태웠고, 밤에 잠을 안 자고 온 집안을 서성이다 잠자는 아이들 머리맡에 우두커니  서있기도 했다. 그러다 인기척에 눈을 뜬 아이가 어두운 방 안에서 자신을 내려다보는 할머니의 실루엣에 놀라 방에서 뛰쳐나오게도 했다.

마치 엄마는 '이때다!' 하는 마음에서인지  사건을 끊임없이 만들어 냈다. 확실하게 정을 떼자고 다짐한 사람처럼 돌변한 엄마에게 우리는 결국 항복했다.


엄마를 요양원에 모신다는 건 나나, 동생이 용납할 수 없었기에 차일피일 미루다 기어이 엄마의 진을 있는 대로 다 빼고 나서야 우리는 요양원을 조심스럽게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엄마를 잘 모샤야겠다는 효심이 아니라, '엄마를 요양원으로 보내면 우리를 아는 사람들이 뭐라고 할까?' 하는 소위, 남들의 눈치가 두려워서였다는 걸, 우리(나와 동생)가 인정하고 나니, 그동안 엄마의 마지막 자존심마저 외면했던 순간들이 가슴을 때렸다. '우리의 이기심이 엄마를 더 힘들게 했구나!' 하는 자책감과 엄마의 시간이 얼마나 남았을지 모르지만 그동안만이라도 자신이 지키고픈 것을 지키게 하려는 마음으로 요양원 입소 절차를 서둘렀다.


언제나 언니 같은 동생이 팔방으로 알아보고, 동분서주한 덕분에 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규모가 그리 크진 않지만 깨끗한 민간요양원으로 엄마를 입소시키기로 결정하고 나니 다음일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엄마는 요양원이 맘에 드나 봐. 집이 깨끗하다고 좋아하더라."

직장에 묶여 움직이지 못하는 나 대신 절차를 밟아 엄마를 요양원에 보낸 후 동생이 보고 아닌 보고 같은 전화를 했다.  나는 집에서 엄마를 모시지 못하고 요양원으로 보냈다는 생각이 사라지지 않아 죄인이 된 기분이라, 죄짓은 것 같은 일을 동생에게 떠맡긴 미안함으로 동생에게 고생했다는 인사도 못하고 듣기만 했다.

"바쁠 테니까 전화 끊을게 며칠 있다 같이 엄마 보러 가"

마음 씀씀이가 엄마를 닮은 동생은 내가 울고 있다는 걸 직감하곤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 명랑한 목소리로 얘길 했지만 마지막 '엄마 보러 가' 하는 뒤에 말은 울먹임이 섞여 떨렸다.


"내가 요즘 무라카미 하루키 책을 읽기 시작했는데 이런 글이 나오더라. "

동생이 운전하는 차를 타고 엄마가 있는 요양원으로 가는 길에 잎을 떨구고 선 가로수를 바라보며 내가 말했다.

"사람은 가만히 내버려 둬도 죽는다고 썼더라."

"꽤 철학적인 말이네."

앞만 보고 운전하던 동생이 세상을 달관한 듯한 낮은 음성으로 대꾸했다.

"저 가로수들 보니까 생각나서... 나무들은 이파리가 떨어졌다고 슬퍼하거나 도로 붙여놓으라고 하지 않잖아."

"쟤네들이 말을 하지 못해서 그렇지 마음은 안 그럴걸?"

"그럴까? 사람도 자연의 일부니까 죽음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건지도 모른다고 말하고 싶어서."

사실 나도 내가 무슨 말을 하고 싶었는지 모른다. 이상하게 요양원 다음은 더 먼 곳으로 엄마가 떠날 수도 있다는 생각에 불안하고 우울한 우리를 위로하고 싶었던 건지도 모르겠다. 


"언니, 나도 며칠 생각해 봤는데 엄마 요양원으로 보낸 거 슬퍼하거나 죄스러워하지 않을래. 나는 엄마가 우리한테  보여주고 싶은 엄마의 모습으로 남길 바라는 마음 알겠어. 그래서 잘했다고 생각해."

하긴 아마 나도 엄마와 같은 상황이 되면 그랬을 것이다. 차라리 간병인의 신세를 질지언정 자식들에게 용변 후 뒤처리를 맡기고 싶지 않을 게 분명하다.

"언니나 나나 엄마 성격 모르는 것도 아니고..."

맞다. 깔끔하고 자존심 강한 엄마. 그래서 엄마가 더 좋았다.  고된 삶의 시간 속을 걷느라 생활에 찌든 모습이 아니라 언제나 당당하고 기품 있는 엄마라서.

"언니 말처럼, 아니 거 무슨 작가가 말했다는 것처럼 돌아가는 건 자연스러운 거니까, 매일매일 우울한 얼굴로 지내지 말자. 나중에 울고불고하지도 말고, 할 수 있는 한 엄마 자주 보러 가서 웃는 얼굴 보여주고 나중에 후회하지 말자 우리."

내가 아무 대꾸가 없자 동생이 오히려 나를 위로하느라 말을 길게 했다.

"넌 진짜 언니 같다. 다음생엔 니가 언니로 태어나라."

"혹시 알아? 내가 전생에선 언니였을지"


엄마는 내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더 밝은 얼굴로 우리를 맞았다. 그동안 집에서 화장실 문제로 받았던 스트레스를 덜 받아서 그런지 마스크로 가려지지 않은 이마가 이쁜 분홍빛을 띠고 있었다.

휠체어에 앉아서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엘리베이터 앞에 서 있던 우리를 보며 반갑게 손을 흔들었다. 마스크로 얼굴 절반이 가려진 엄마의 눈에서 반가움이 폭포처럼 쏟아졌다. 

커피 마시는 잠깐동안 마스크 벗는 것을 담당자에게 허락받고 엄마가 좋아하는 믹스 커피를 타온 동생이 엄마의 마스크를 벗겨냈다. 

"엄마 여기서 지내긴 어때?"

"왜 이렇게 큰집으로 이사를 했어?"

엄마는 주위를 둘러보며 작은 소리로 말했다.

"불편하면 다시 집으로 가던가"

"넓고 깨끗해서 좋긴 한데 청소하는 게 걱정이다. 이렇게 집이 크니.."

"여긴 엄마가 청소 안 해도 돼. 청소할 사람 많아. 엄마는 그냥 편하게 지내기만 하면 돼."

"하여튼 고맙다! 이렇게 깨끗한 집을 얻어줘서."


말을 마친 엄마는 안락한 소파인 듯 휠체어 등받이에 깊숙이 앉더니, 커피가 담긴 종이컵을 프랑스제 커피잔인양 잡았다. 한 손으로 컵 아래를 받치고 다른 손으로 가볍게 잡고 마치 고풍스러운 성의 안주인처럼 우아한 모습으로 커피를 마시는 엄마를 보면서 생각했다. 엄마와 남은 날들을 우울하게 보내지 않기로.


엄마가 원하는 방식으로 헤어질 결심을 해야겠다. 엄마는 이미 마음의 정리를 모두 마친 사람처럼 너무도 평온한 얼굴로 커피 한 모금 마시고 나와 동생에게 미소 한 번씩을 지어보였다.

나와 동생도 종이컵의 커피를 홀짝였다. 엄마와 우아하게 헤어질 결심을 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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