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사님 차를 타면 잠이 와요."
"미안해하지 말고 푹 자도 괜찮아, 30분 정도."
교육생들을 태우고 30분(내 기준) 정도의 거리를 이동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뒷좌석에서 슬슬 감기는 눈꺼풀과 씨름하던 교육생이 졸음에 백기를 들고 아예 자려고 맘먹었다는 소릴 이렇게 돌려서 한다.
고된 하루 일정을 마친 후, 긴장이 풀어진 것이기도 하겠지만 어지간해선 속도를 내지 않는 나의 운전 습관 때문에 동승자를 가끔 졸음과 사투를 벌이게 하거나 아예 꿈나라로 보내버리는 경우가 허다하다.
기계 다루는 것에 익숙지 않아 소심하게 운전하는 이유이기도 하지만, 언젠가 엄마와 시내 대형마트에 다녀오던 날부터 나는 웬만해선 속도를 내지 않는다. 속도만이 아니라 추월하려는 차가 신호를 보내면 냉큼 길을 터주기도 한다.
운전 면허증을 20대 초반에 따두기는 했어도 정작 내 이름이 등록증에 기재된 차는 40대가 되어서야 가질 수 있었다. 장롱 속에서 깊은 잠을 자던 면허증은 백마 탄 왕자의 입맞춤으로 긴 잠에서 깨어난 백설공주처럼 20년 만에 세상으로 나와 나의 지갑 안에 자리를 잡았다.
새 차는 장롱면허 경력 20년째인 나의 운전 실력 때문에 쌩쌩 달리지 못하고 그야말로 거북이걸음처럼 도로 위를 기어 다녔다.
운전이 서툴러도 면허증 취득한 지는 오래되었다는 생각에 '초보운전'이란 문구가 적힌 표지는 붙이지 않았다. '초보운전'이란 딱지(?)를 붙이고 다니면 다른 운전자들이 우습게 본다는 생각도 있었고, 치졸한 자존심이라고나 할까? 여하튼 지금 생각하면 유치한 생각이었지만, 그 당시엔 운전이 초보인 것처럼 생각조차 유아적이었던 것 같다.
두 달 정도 운전하며 출, 퇴근하다 보니 엉금엉금 걷는 거북이에서 조금 빠른 오리(?) 정도의 속도를 낼 수 있었다. 그러자 자신감이 생긴 나는 집에서 차로 20분 정도 떨어진 곳에 있는 대형마트에 엄마를 태우고 갔다.
"엄마, 딸이 운전하는 차 타니까 좋지?"
행여 잘 못될까 봐 핸들을 잡은 손과 팔에 한껏 힘을 주고, 고개도 못 돌린 채 시선은 앞만 주시하며 뒷좌석의 엄마에게 물었다.
"그러게 오래 사니까 이런 날도 오네. 딸이 운전하는 차도 타보고!"
"오래오래 살아 엄마. 지금은 작은 차지만 다음엔 더 크고 좋은 차로 여행도 다니게."
"나는 지금도 좋다. 니들이 차 한 대씩 가지고 다닐 줄 예전에 상상이나 했겠니?"
엄마의 말속에 지나온 고난의 세월이 다 들어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 잠깐 코끝이 찡하고 아려왔다.
냉장고, 세탁기, TV, 자동차... 등등. 물질적인 것으로 그 집안 가정형편을 파악하던 국민학교 가정환경조사 시간, 해당하는 것이 우리 집엔 하나도 없어서 나는 손 한 번 들지 못했다. 하긴 그 시절엔 손 드는 아이가 반에 한 두 명 정도였으니까. 물론 "냉장고 있는 사람?" 하고 선생님이 물으시면 손 들고, "텔레비 있는 사람?" 하고 물으시면, 또 손을 드는 아이도 있었다. 손을 못 드는 우리들은(수가 훨씬 더 많았으니까) 매번 손을 드는 아이를 부러운 눈으로 바라보았고, '자동차 있는 사람?"하고 선생님이 물으셨을 때 손을 드는 아이는 "와~~~!" 하는 반 아이들의 함성소리에 자신의 손을 우승 트로피인양 더 높이 들어 올리기도 했었다.
뭐 그런 연유로 엄마에게 지금의 우리는 무척 '부자'의 계열에 속한다. 삼 남매가 모두 각자의 차를 소유하고 있으니.
나도 가끔 그시절을 생각하며 '지금은 계속 손 들고 있을 수 있는데..' 하며 실없는 웃음을 짓기도 한다.
다시 생각해 봐도 그 시절의 어른들은 참으로 별난 것을 가지고 아이들 기를 죽였던 것 같아 씁쓸하다.
하여튼 지나간 시간의 이런저런 얘기를 하며 마트에 도착했다. 딱히 살 게 있어서 간 것이 아니기 때문에 천천히 진열된 물건을 둘러보며 1층과 2층을 오가다 엄마와 푸드코트에서 짜장면을 먹고, 휴지와 음료수를 사서 돌아올 때는 어두워져서 자동차 라이트가 즐비한 도로를 달려야 했다.
"아유~~ 좀 봐줘요! 천천히 갑시다!"
뒤에서 소형 트럭이 나에게 빨리 달리라는 신호로 상향등을 계속 깜빡이는 통에 화가 나서 나도 모르게 냅다 소리를 쳤다.
"왜? 누가 뭐라고 해?"
내가 지른 소리에 뒷좌석의 엄마가 묻는다.
"뒤차가 빨리 가라고 번쩍번쩍하잖아."
"급해서 그런가 본데 비켜줘라."
"나는 안 급한가?"
괜한 오기가 생겨서 비켜주고 싶은 마음이 없는 나는 엄마가 뒤차의 운전자인 것처럼 엄마에게 화를 냈다.
"실컷 놀다 가는데 뭐가 급해? 그러지 말고 비켜줘라. 혹시 아냐 바쁜 일이 있을지?"
뒤차에게 양보하고 싶지 않아 속도를 올린 탓으로 바짝 긴장해서 핸들을 잡은 손에 땀이 배어 축축하고 등에도 땀이 흐르는 게 느껴졌다.
"다른 차 먼저 보낸다고 집에 못 가냐? 쓸데없는데 오기 부리지 말고 먼저 보내줘라."
내가 아무리 엄마 배속에서 열 달을 있었기로 어떻게 나를 속속들이 잘 알 수 있는지 신기했다. 엄마는 내가 일부러 안 비켜 준다는 것까지도 알고 한 마디 더 했다.
"그러다 사고 나면 진짜 집에 못 간다."
베테랑이라고 하기엔 조금 어설프긴 해도 제법 운전을 잘하는 지금도 나는 웬만해선 속도를 올리지 않는다. 누군가 바쁘다고 뒤에서 나이트 클럽 조명처럼 상향등을 현란하게 번쩍이면 빠르게 차선을 바꿔 길을 터준다.
"아~ 많이 바쁘시군요!" 하는 혼잣말을 하면서.
엄마 말처럼 다른 차를 먼저 보낸다고 내가 목적지에 못 가는 것도 아니다. 더구나 이 좋은 계절 가을이 너무 짧아 아쉽고, 금빛 가을 속에 오래 머물고 싶은 마음은 크니 조금 천천히 달려도 괜찮지 않을까?
내가 느리게 가을을 달리는 동안 뒷좌석의 인생 후배들은 달디단 꿈을 오래 꾸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