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이는 어린 시절이 잘 기억나지 않아. 매번 새로운 동네에서 새로운 친구를 사귀었다고 해도 그 놀이가 몇 개월을 넘기기 어려우니 조그만 머리에 담아두기가 어려웠던 거 같아. 기억은 그 기억에 이어지는 다른 기억이 있어야 하는데 하늘이의 하루하루는 파편으로 존재했지. 매번 낯선 동네로 어린 딸을 데리고 이사를 다녀야 하는 가난한 부부는 딸을 쉽게 동네 골목길에 내어놓을 수가 없었거든. 불안했고 걱정되니까 가능한 대문 안에 엄마의 눈 아래 있기를 원했고 하늘이도 가능한 엄마를 속상하게 하고 싶지 않았어.
그래도 가끔 운이 좋으면 친구가 생길 때도 있었을 거야. 셋방살이는 한 울타리 안에 여러 집이 모여 있는 경우가 많아서 어쩌다 운수가 대통하면 그중에 또래나 언니가 있었거든. 하늘이는 또래 친구보다는 언니가 좋았데. 또래 친구들은 천방지축 뛰어놀기를 좋아하는데 그러나 어른들한테 혼나는 일도 곧잘 생기잖아. 그렇지만 언니들은 그저 귀여워해주고 놀아도 방 안에서 이야기를 하거나 언니들을 구경하면서 조용히 보낼 수 있었거든.
그런데 그마저도 못 하게 됐어. 한 번은 옆집에 큰 언니가 살았는데 아침마다 그 언니가 수돗가에서 긴 머리를 감는 걸 지켜보곤 했어. 그렇게 긴 머리를 혼자 척척 감는 모습이 참 멋있어 보였던 거 같아. 그렇게 아침마다 뽀글뽀글 몽글몽글한 비누거품을 내며 머리를 감는 언니인데 엄마는 하늘이가 그 언니에게서 서캐가 옮아왔다고 했어. 신문지를 바닥에 깔고 그 위에 앉아 머리를 감듯이 뒷머리를 앞으로 내리고 목을 꺾고 앉아있으면 엄마는 하늘이의 머리를 참빗으로 한참을 빗어냈어. 신문지 위를 기어 다니는 서캐를 참빗 모서리로 죽이면서 하늘이 엄마는 다시는 그 언니네 놀러 가지 말라고 했어.
두 번째는 또 다른 동네였을 거야. 그 동네에선 하늘이 엄마가 조그만 가겟방을 얻어서 구두를 팔았거든. 하늘이는 종일 집에 혼자 있어야 했고 그때 옆집 언니가 놀러 와서 하늘이를 봐주면 하늘이 엄마는 고맙다고 과자를 사서 쥐어 보내곤 했어. 한 여름 더위에 하얀색 러닝셔츠 바람으로 TV 앞에 앉아 언니가 타준 설탕물을 먹었던 날. 그날 언니가 엄마 서랍을 뒤져 돈과 반지를 훔쳤다고 했어. 그날 저녁 일어난 소동은 그 언니가 결국 잡혀와서 자신의 도둑질을 마지못해 털어놓으며 끝이 났고, 그걸 지켜보던 하늘이는 낮에 먹은 설탕물의 단맛이 혀끝에서 맴도는 걸 느꼈어. 그리고 다시는 아무도 집에 불러서 놀지 않게 됐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