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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스막골 Oct 14. 2024

싫다고 말하고 싶어

하늘이는 옆집 언니에게 서캐가 옮아서 혼났을 때도, 자기에게 설탕물을 타주고 엄마의 반지를 훔쳐간 사람을 보면서도 미워하지는 않았어. 화를 내지도 않았고 사과를 요구하지도 않았어. 그냥 그 모든 소동을 가만히 보고만 있었어. 그리고 아이 답지 않게 아는 척을 하는 실수도 저지르지 않았지.


처음으로 하늘이가 진짜 싫다고 느낀 건 어른들이었어. 거짓말하는 어른들. 아이들에게 겁을 주고 재미있다는 듯이 웃음을 터트리는 어른들.


무슨 일인지 기억은 안 나지만 하늘이가 동생 손을 잡고 엄마를 찾으러 동네 골목길을 나선 길이었어. 슈퍼 앞에 놓인 널따란 평상에 동네 어른들이 모여 앉아있는 게 보였어. 가운데는 소주 몇 병이랑 벌어진 과자 봉지가 몇 개 놓여있었고 하늘이는 가능하면 멀찍이 떨어져서 걸었지만 그래도 그 골목에서 완전히 숨을 수는 없었어. 마침 심심하던 차였는지 그중에 한 아저씨가 어디 가냐고 물었고 하늘이는 엄마 찾으러 간다고 대답했지. 그랬더니 자기들끼리 큰 목소리로 이야기했어.

"너네 엄마 도망갔어."

"아이고 어떡하냐. 엄마 도망갔는데. 이제 너네끼리 살아야 돼."

"너네 엄마 진짜 엄마 아니잖아. 몰랐어? 너네 진짜 엄마는 저~기 다리 밑에 살아. 너희도 거기서 주워왔잖아."

하늘이는 처음으로 화가 났어. 평소라면 그냥 못 들은 척하고 잰걸음으로 지나쳐 갔을 텐데 지금은 동생이 같이 있잖아. 동생이 다 듣고 있었단 말이야. 그렇지만 어른들은 여러 명이고 하늘이는 자기보다 더 어린 동생을 잡고 대거리를 할 용기는 없었어. 동생이 그 말을 조금이라도 더 못 듣게 하려고 더 빨리 그렇지만 무례해 보이지 않도록 얼굴을 돌리고 걸을 수밖에.

그렇게 자리를 벗어나는 동안 등 뒤로 아줌마 아저씨들이 큭큭 거리며 웃는 소리가 들렸어. 다 놀렸는지 이리 와서 과자 먹으라고 하는 말소리가 들렸지만 하늘이는 마치 그런 말은 너무 빨리 걷느라 못 들었다는 듯이 한 번도 쉬지 않고 앞만 보고 걸었어. 그동안 심장이 얼마나 큰 소리로 쿵쿵거리는지 마치 귀 옆에 심장이 있는  거 같았지. 그렇게 골목길이 꺾어지고 더 이상 그 웃음소리들이 들리지 않게 되었을 때 동생이 뒤를 한 번 쳐다보더니 하늘이의 손을 두 손으로 잡아당기며 늘어졌어. 소리 내어 말하지 못하고 점점 어깨를 들썩거리며 손을 잡아끄는 동생을 발견한 하늘이는 걸음을 멈추고 빠르게 말했어.

"저거 다 거짓말이야. 엄마 도망가지 않았어. 그리고 너도 주워오지 않았어. 봐봐. 아빠랑 너랑 나랑 이렇게 입술이 똑같이 생겼잖아. 저거 다 거짓말이야. 엄마 있어."

동생은 진짜냐고 다시 묻고 싶은 듯했지만 이내 고개를 숙이고 언니 손을 꼭 쥐고 언니의 빠른 걸음을 따라가는 데 온 신경을 집중했어. 그렇게 그날 저녁이 지나갔지.

하늘이는 그날 밤 너무 속상해서 잠을 이룰 수가 없었어. '왜 어른들은 그런 뻔한 거짓말을 할까? 왜 겁을 주고 아이들이 겁을 내면 웃어댈까? 그게 정말 재미있을까?' 그렇지만 언제나 그렇듯 하늘이는 이 이야길 엄마에게 하지 않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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