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이는 옆집 언니에게 서캐가 옮아서 혼났을 때도, 자기에게 설탕물을 타주고 엄마의 반지를 훔쳐간 사람을 보면서도 미워하지는 않았어. 화를 내지도 않았고 사과를 요구하지도 않았어. 그냥 그 모든 소동을 가만히 보고만 있었어. 그리고 아이 답지 않게 아는 척을 하는 실수도 저지르지 않았지.
처음으로 하늘이가 진짜 싫다고 느낀 건 어른들이었어. 거짓말하는 어른들. 아이들에게 겁을 주고 재미있다는 듯이 웃음을 터트리는 어른들.
무슨 일인지 기억은 안 나지만 하늘이가 동생 손을 잡고 엄마를 찾으러 동네 골목길을 나선 길이었어. 슈퍼 앞에 놓인 널따란 평상에 동네 어른들이 모여 앉아있는 게 보였어. 가운데는 소주 몇 병이랑 벌어진 과자 봉지가 몇 개 놓여있었고 하늘이는 가능하면 멀찍이 떨어져서 걸었지만 그래도 그 골목에서 완전히 숨을 수는 없었어. 마침 심심하던 차였는지 그중에 한 아저씨가 어디 가냐고 물었고 하늘이는 엄마 찾으러 간다고 대답했지. 그랬더니 자기들끼리 큰 목소리로 이야기했어.
"너네 엄마 도망갔어."
"아이고 어떡하냐. 엄마 도망갔는데. 이제 너네끼리 살아야 돼."
"너네 엄마 진짜 엄마 아니잖아. 몰랐어? 너네 진짜 엄마는 저~기 다리 밑에 살아. 너희도 거기서 주워왔잖아."
하늘이는 처음으로 화가 났어. 평소라면 그냥 못 들은 척하고 잰걸음으로 지나쳐 갔을 텐데 지금은 동생이 같이 있잖아. 동생이 다 듣고 있었단 말이야. 그렇지만 어른들은 여러 명이고 하늘이는 자기보다 더 어린 동생을 잡고 대거리를 할 용기는 없었어. 동생이 그 말을 조금이라도 더 못 듣게 하려고 더 빨리 그렇지만 무례해 보이지 않도록 얼굴을 돌리고 걸을 수밖에.
그렇게 자리를 벗어나는 동안 등 뒤로 아줌마 아저씨들이 큭큭 거리며 웃는 소리가 들렸어. 다 놀렸는지 이리 와서 과자 먹으라고 하는 말소리가 들렸지만 하늘이는 마치 그런 말은 너무 빨리 걷느라 못 들었다는 듯이 한 번도 쉬지 않고 앞만 보고 걸었어. 그동안 심장이 얼마나 큰 소리로 쿵쿵거리는지 마치 귀 옆에 심장이 있는 거 같았지. 그렇게 골목길이 꺾어지고 더 이상 그 웃음소리들이 들리지 않게 되었을 때 동생이 뒤를 한 번 쳐다보더니 하늘이의 손을 두 손으로 잡아당기며 늘어졌어. 소리 내어 말하지 못하고 점점 어깨를 들썩거리며 손을 잡아끄는 동생을 발견한 하늘이는 걸음을 멈추고 빠르게 말했어.
"저거 다 거짓말이야. 엄마 도망가지 않았어. 그리고 너도 주워오지 않았어. 봐봐. 아빠랑 너랑 나랑 이렇게 입술이 똑같이 생겼잖아. 저거 다 거짓말이야. 엄마 있어."
동생은 진짜냐고 다시 묻고 싶은 듯했지만 이내 고개를 숙이고 언니 손을 꼭 쥐고 언니의 빠른 걸음을 따라가는 데 온 신경을 집중했어. 그렇게 그날 저녁이 지나갔지.
하늘이는 그날 밤 너무 속상해서 잠을 이룰 수가 없었어. '왜 어른들은 그런 뻔한 거짓말을 할까? 왜 겁을 주고 아이들이 겁을 내면 웃어댈까? 그게 정말 재미있을까?' 그렇지만 언제나 그렇듯 하늘이는 이 이야길 엄마에게 하지 않았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