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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스막골 Oct 13. 2023

그스막골엔 넘치게 해맑은 젊은 개도 살아요

 

뽀송이는 5시 반이면 일어나요. 일어나서 무얼 하느냐고요? 짖어요. 아주 우렁차게! 야트막한 산 밑에 위치한 우리 집에서 목청 좋은 젊은 개가 짖으면 메아리가 친 답니다. 가까이에서 들으면 머리가 울릴 정도예요. 인간으로 태어났다면 성악가로 대성하지 않았을까요? 얘 때문에라도 우리는 절대 아파트로 돌아가지 못할 거라고 생각합니다. 새벽형 인간만 모여 사는 단지가 아니라면요.


그렇게 기상나팔을 불며 제가 현관문을 열 때까지 1시간이고 2시간이고 거실 창을 주시하다가 제가 현관문을 나서면 그때부턴 갑자기 바닥에 납작 엎드려서 제가 얼른 다가와 산책용 목줄을 채우주길 기다리죠. 웰시코기는 안 그래도 눈도 입도 커서 표정이 확실한데 이때 뽀송이의 설레는 표정을 보면 ‘아~ 내가 일어나길 정말 잘했구나!’ 싶은 생각이 들어요. 반대로 정말 아침부터 서둘러 나가봐야 하거나 몸이라도 으슬으슬해서 산책을 못 한 날은 마당으로 나가 저 얼굴을 마주치는 게 겁이 나 망설일 정도랍니다. 안 당해본 사람은 그 죄책감을 모른다니까요.


뽀송이의 산책 길은 두 갈래입니다. 집에서 나와 왼쪽으로 가면 그스막골 동네를 한 바퀴 돌 수 있는데 그렇게 원을 그리듯 산책을 하고 오면 못해도 7,000 보를 가뿐히 넘죠. 길목길목에는 꼭 들러야 하는 풀숲, 밭고랑, 전봇대, 꽃, 냇가 등 이 있어서 순찰을 돌 듯 하나하나 점검하고 냄새를 맡고 확인하고 자기 영역 표시를 하다 보면 2시간 가까이 걸린답니다. 마을 집집마다 다 살피고 돌아오는 길에는 산에서 내려오는 개울물을 실컷 마시는데 이때부터는 걸음이 갑자기 느려지기 시작해요. 어슬렁어슬렁 몇 발짝 걷다가 아쉬운 마음을 뚝뚝 흘리면서 뒤를 백번씩 돌아보며 발을 질질 끄는 모습을 보면 기가 찬다니까요.


두 번째 산책길은 집에서 나와 오른쪽입니다. 그럼 100 보도 안 걸었는데 미지의 산속에 던져진 느낌이 나요. 산림청에서 관리하는 산이라 인간이 따로 목적을 가지고 손댄 흔적이 없는 가끔 오는 약초꾼들이 다니는 희미한 오솔길만 있답니다. 여기선 조금만 올라가면 핸드폰조차 불통이 돼요. 여름에 한창 나무와 풀이 우거질 때는 전정가위를 들고 조금씩 길을 트며 가야 할 정도죠. 이것도 조금만 헤치고 올라가면 아늑한 공간이 나오는데 이 모습을 영상으로 담으면 자연 다큐멘터리 수준이랄까. 산에서 내려오는 물을 따라 돌들을 밝으며 녹색 공기를 실컷 마시고 나면 자연스레 일상이 명상의 공간으로 바뀌곤 한답니다. 철철이 피는 야생화와 열매들은 매일을 보물 찾기를 하는 설렘으로 바꿔주기도 해요.


뽀송이는 웰시코기입니다. 흔히 뒷모습이 식빵 같이 생겨서 엉덩이가 크고 뽀송하고 다리가 짧아서 귀여운데 저희 뽀송이는 여우처럼 풍성한 꼬리가 그대로라서 더 사랑스럽죠. 다리보다 훨씬 더 길고 우아하게 흔들리는 꼬리를 보고 있으면 근심 걱정이 사라지는 마법을 경험할 수 있어요. 아쉬운 점은 너무너무 순하고 해맑고 귀여운 아이지만 몽이 누나한테는 여전히 받아들여지지 못하고 있다는 점. 친해져 보려고 조금 다가가면 정말 조막만 한 하얀 뭉탱이가 얼마나 앙칼지게 노려보며 으르렁거리고 물듯이 뛰어오르는지. 몸무게가 1/10 밖에 안 되는 누나가 저러니 다칠 까봐 오히려 슬금슬금 피해 주는 착한 아이예요.

사실 뽀송이는 이 나무에 묶인게 아니다. 마당에 5미터 정도 되는 긴 줄을 공중에 빨랫줄 처럼 걸어놓고 거기에 2미터 정도 줄을 바닥으로 연결해서 묶여있지만 묶여있지 않은 듯 생활한다. 그런데 아침 산책이 조금만 늦어지면 저 나무에 줄을 꼬아놓고 짖는다. 마치 자신을 구해달라는 듯이... 그러나 저 표정을 보라. 저게 나무에 줄이 꼬여 곤란한 자의 표정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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