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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초별하 Aug 01. 2023

발우공양을 대하며


조계사를 몇 년 만에 찾았다. 미국에서 잠시 귀국한 동생과 인사동 나들이 길, 입구에는 동그란 대형 연화분들이 수없이 펼쳐있어 마치 연 방죽에 온 듯했다. 화분마다 불자들의 간절한 소원성취 염원을 담은 팻말이 대롱대롱 매달려 있었다. 흥건한 진흙탕 물속에 피어있는 연꽃, 활짝 핀 연분홍 꽃들은 보살처럼 환한 웃음을 띠며 우리에게 인사를 보내고 있는듯했다. 흙탕물 속에서도 제 할 일 알고서 아름답게 필 줄 아는 심지의 꽃이기에 사람들은 그의 심덕을 찬미하는 것 아닌가. 경내를 한 바퀴 돌아보니 바로 앞 불교전시관이 눈에 띄었고 만다라 그림을 체험하는 외국인들이 열심히 색칠하고 있었다. 호기심 어린 문화 체험은 여행의 백미처럼 오랫동안 추억될 것이리라.


 때가 되어 우리도 사찰 음식을 체험할 수 있는 5층 공양간을 들어갔다. 입구에서부터 절제미가 넘치는 식당임을 단박에 알게 하는 정갈한 분위기, 다양한 코스요리가 있었는데 ‘원식’이라는 메뉴를 선택했다. 사찰음식을 대표하는 정찬 메뉴로 20여 가지가 나온다는 안내자의 소개가 있었기에. 생소한 용어 메뉴판을 보니 자세한 설명이 곁들여 있었고 구도자의 원력을 느끼게 했다


. 상차림 판은 코스요리로 나왔다. 먼저 입술을 적신다는 의미의 술적심이었다. 오미자 청과 방울토마토가 앙증맞게 나왔다. 다음은 죽상, 가벼운 죽과 동치미 그 후 상미로 맛과 향을 풍미하는 제철 채소와 셀러드, 이어서 담미 와 승소로 튀김 요리와 면류, 유미 이름의 연잎밥과 시래기 된장국, 마지막 입가심의 후식은 배초향차와 증편이 나왔다. 


키 낮은 개인용 목기 사각상에 작은 도자기 그릇을 사용한 상차림, 담백하고 깔끔한 음식이 순서대로 나올 때마다 단순한 먹거리가 아닌 수행의 힘이 배어있음을 느끼게 했다. 주렴에 적힌 공양 게송 그대로 진리를 실천하고자 의도하는 음식이었다. 언제 음식을 이렇듯 진지하게 음미하며 먹었던 적 있던가. 마치 수행에 입문하려는 마음가짐처럼 단순 식사 아닌 구도자의 자세로 소중한 시간을 체험했다. 분위기는 나를 피안의 세계로 이끌어가면서 음식에 대한 예의와 감사함이 저절로 우러나왔고 차례대로 나오는 음식마다 천천히 관조하며 재료 본연의 맛을 음미하고 귀 기울여보니 저절로 경건한 자세가 되었다. 신기했다. 누구 하나 가르쳐 주지 않고 보는 사람 없어도 스스로 깨달은 듯 절제된 행동을 하고 있었으니. 음식이 수행의 중요한 부분으로 작용한다는 것을 처음으로 느꼈다. 소중하고 귀하게 다루는 음식은 마치 상대방을 존중하고 동시에 자신도 돌아보라는 여유를 주었다. 발우공양 체험은 나를 성찰하는 시간이었고 소중한 문화 체험의 기회였다. 특히 주련에 적힌 공양게송에 깊은 인상을 받았기에 음식을 대할 때마다 진지한 내가 될 것 같았다. 어리석고 어린 나를 일깨우면서.   

 *술적심: 본격적인 식사 앞서 입술을 적신다 

 *죽상: 수행자들이 새벽에 먹는 음식

 *상미: 제철 음식의 맛과향

 *담미: 전류와 튀김요*리 

 *승소: 별미로 여기는 음식

 *유미: 피로와 스트레스 낮춰주는 음식

 *입가심: 식사후 입을 헹군다는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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