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대체 왜 그래? 정신을 어디다가 팔아먹고 다니는 거야!”
정형외과 병동 스테이션 앞.
난 죄인처럼 고개를 숙이고 서있었고,
그 앞에 선 담당 교수는 나를 노려보며 한숨을 내쉬고 있었다.
“박인수!”
“······.”
옳고 그름을 따지자면 내가 잘못한 게 맞다.
그리고 잘못을 한 전공의는 담당 교수로부터 똑바로 교육을 받아야 한다.
환자를 위해서 말이다.
“박인수!”
“······.”
즉, 그는 담당 교수로서 마땅히 해야 할 의무를 다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엔 불만 없다.
다만 그 훈육 시간이 사십 분이 넘어간다는 게 문제였다.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저지른 실수는 사십 분 어치가 절대 아니었다.
“야! 박인수!”
“네 교수님.”
훈계 도중 굳이 상대방 이름을 외치는 패턴은 어디서 왔을까?
군대?
회사?
아니면 조선?
혹은 10만 년 전의 동굴에서 왔을 수도.
“대답 바로바로 안 해? 지금 반항하는 거야?”
다음에는 어떤 대답을 해야 이 시간을 줄일 수 있을까?
아마도 정답은 없을 것이다.
내가 어떤 대답을 해도 저 인간은 더 화내겠지.
왜냐고 묻는다면 이렇게 대답하겠다.
저 인간의 분노에 내 실수가 지닌 지분율은 사실 그리 높지 않기 때문이다.
“죄송합니다.”
"뭐? 죄송?"
역시나, 그는 눈을 더 크게 뜨고 콧김을 내뿜더니 우렁찬 목소리로 화를 쏟아내기 시작했다.
“죄송하면 다야? 이 새끼가 어디서 그딴···”
비난, 욕설 등이 섞인 단어들이 우측 귀를 통해 들어왔다가 좌측 귀로 흘러 나갔다.
아마도 십 분은 더 연장된 듯하다.
4년 차 선배들도 줄이지 못하는 시간.
제자들의 실수를 핑계로, 그가 어디서 쌓았을지 모르는 자신의 분노를 표출하는 시간.
“···너 같은 새끼가 나중에 환자 잡아먹는 거야! 알아?! 그따위 정성으로 어디 의사를 하겠다고···”
이럴 때마다 내 정신 상태는 매번 똑같은 패턴으로 흐른다.
어느 순간부터 시야가 흐려지더니 의식이 몽롱해진다.
그의 목소리가 작게 들리며, 몸이 붕 뜨는 것 같은 감각이 느껴지기 시작한다.
중력이 약해지면 시간이 느리게 간다 했었나.
주변 모든 것들이 천천히 움직이는 것처럼 느껴진다.
어쩔 땐 시야를 가로지르는 날파리의 날갯짓 하나하나가 선명하게 보인 적도 있었다.
대체 이 느낌은 뭐지?
스트레스로부터 자아를 보호하기 위해 뇌가 마약성 호르몬을 분비하는 건가?
아니면 단순히 잠이 부족한 것일까.
“···어디서 너 따위가 감히 우리 과에 들어와 가지고 이딴 식으로···”
그러게.
나는 왜 정형외과를 택했을까?
애초에 나는 왜 의대를 지원했을까?
사실 표면적인 이유는 이미 알고 있다.
“···너 같이 겉멋 든 놈들이 정형외과를 먹칠하는···”
하지만 그게 정말 내가 원하는 것이었나?
내가 아닌 누군가의 바람 아니었을까?
부모님? 선생님? 사회?
아니다.
누구 말을 귀담아 들었든 분명 내가 선택했었던 결정이다.
그런데 왜 나는 내가 스스로 결정한 길이라는 느낌이 들지 않을까?
“···너네 부모가 대체 어떻게···”
내가 정말 원하는 것은 무엇일까?
내가 원하는 게 존재하긴 할까?
내 생각, 마음이 정말 나 자신의 것이긴 한 것일까?
내게 의지란 게 있는 것일까?
나만 이런가?
알고 보면 대부분의 인간들이 알 수 없는 무언가에 조종당하고 사는 건 아닐까?
무의식에 쌓인 분노를 제자들에게 투사하고 있는 저 교수처럼.
“박인수!”
순간 나는 화들짝 놀라 고개를 들었고 덕분에 그와 눈이 마주치고 말았다.
아, 싫다.
저 분노로 가득한 눈동자.
정신적 미숙함이 다 드러나 보이는 저 눈빛.
아무리 책임과 의무로 포장하려 하지만 사적인 감정이 담겨있는 표정.
혐오스럽다.
아니, 잠시만.
정말로 그런가?
내가 그를 증오해서 생기는 착각이 아닐까?
내게 그를 비난할 자격이나 있는 걸까?
실수라는 시발점을 제공한 건 난데?
“박인수!”
아마 난 영원히 내 이름을 잊지 못할 것이다.
죽어서 시체가 되어서도.
그 은혜에 화답해야겠지.
마음을 가다듬은 뒤 숨을 크게 들이 쉬었다.
허파에 최대한 많은 것들,
온갖 증오와 고뇌와 후회와 죄책감과 어리석음 등을 담은 뒤 누구보다 큰 목소리로 대답했다.
"죄송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