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지금 단돈 700원 때문에 개고생을 하는 중이다. 8월 한여름의 대구는 강렬하고, 햇볕은 뜨겁다 못해 따갑다. 처음 갔던 마트에서 그냥 사고 끝낼걸, 괜히 다른 마트의 계란이 더 저렴하지 않을까 호기롭게 생각한 내 잘못이었다. 딱 700원 차이가 왜 그렇게 눈에 밟히는 건지. 가파른 언덕을 다시 오르며 한숨이 절로 나온다. <오늘의 가격 비교! -00동의 모든 마트> 시스템을 상상했지만, 바람 빠진 웃음소리와 격한 숨소리를 더할 뿐 고단함을 식히기엔 턱없이 부족했다.
‘이순신 장군의 얼굴을 이렇게 반가워하게 될 줄이야.’
나에겐 이순신 장군이 새겨진, 그저 그런 100원이 아니었다. 매일 만 보를 걸어야만 받을 수 있고, 설문 조사나 영수증 이벤트를 하며 손품을 팔아야 얻을 수 있는, 귀한 동그라미였다. 나는 이 은빛 한 자락을 갖기 위해 때론 집에서 제자리걸음을 하며 모자란 걸음 수를 채웠고, 강의 쉬는 시간에 앱으로 설문 조사를 하기도 했다. 그렇게 열심히 손을 놀리며 번 10원, 50원, 100원의 무게가 가벼울 리가. 이런 나에게 700원에 지갑 속 비상벨이 울리는 건 자연스러운 현상이었을 것이다.
‘내가 어떻게 해서 100원을 모았는데…’
귀찮음과 수고로움을 돈으로 바꾸다 보면, 그 작은 티끌들이 점점 소중해진다. 땅 파서 돈이 나오는 게 아니니, 나는 그 땅을 걷기로 한다. 마트에 도착한 순간, 흐릿해진 눈에 생기가 도는 게 느껴진다. 한증막 사우나에서 얼음물에 적신 수건을 코에 얹는다면 이런 기분일까. 건조한 냉기를 마음껏 들이키며 능숙하게 마트를 가로지른다. 넓은 내부에서 헤매지 않고 한 번에 계란 판매대에 진입해, 마치 고민을 한 적 없는 듯 단번에 목표물을 획득하는 모습이 왜 이리도 비장해 보이는지… 값싸게 획득한 전투식량은 조심스레 가방에 넣으니, 마음이 든든하다.
청량하고 신나는 음악을 귀에 흘려보내며 집으로 다시 향한다. 밖은 여전히 더웠지만, 오르막길은 없다. 티셔츠는 땀에 푹 절여있고 온몸은 끈적거리지만, 기분은 나쁘지 않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선풍기 앞에 자리 잡아 강풍으로 설정하고, 눈을 감는다. 약간의 기계음과 함께 불어오는 거센 바람. 오늘 하루 동안의 헛발질과 미련함을 시원하게 날려주는 기분이 든다. 질끈 묶은 머리 사이로 삐져나온 잔머리들도 흩날리며 춤을 추는데, 그게 너무 간지러워서 절로 눈이 떠졌다. 그 순간, 내 시선을 사로잡는 메모지 한 장.
‘2022년 : 1,000만 원 모으기.’
100원에 울고 웃는 사람의 미련함이 애달프기도, 안쓰럽기도, 그리고 대견하기도 한 것 같아서, 슬그머니 미소를 짓는다.
작가의 말 : 진짜 서막이네요. 어떻게든 짧고 굵게 뽑아서 들고오겠습니다!!!
(2년동안 이어진, 한 대학생의 짠테크는 진짜 짠내나서 눈물없이 들을 수 있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