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쾅!!!"
느닷없는 큰 소리에 고요히 숨을 죽인다. 문 닫는 소리를 잇는 소리가 없다. 발소리는커녕 바람 소리도 들리지 않은 건 기분 탓일까. 고요한 적막 속 울려 퍼지는 건, 내 숨소리 뿐이다. '에타에서 한 번씩 사과대 5층엔 귀신 있다고 그러던데…' 침을 꼴깍 삼키며 마른 입술에 침을 한번 덧칠하고, 포커페이스를 한 채 시계를 흘끗 본다. 새벽 2시. 내가 무서워하는 건 귀신 따위가 아니다. 난 학점이 더 무서워.
누가 귀신 소리를 내었나. 다크서클이 내려앉아 피곤이 찌든 몰골을 보니, 귀신이 따로 없다. 엘리베이터에 비친 내 눈가에 손을 가져다 대본다. 눈에 잠이 덕지덕지 붙어있구나. 아, 이 문을 열리자마자 내 방이 펼쳐지면 얼마나 좋을까.
띵동- "1층입니다."
익숙한 목소리다. 어두운 복도를 가득 메우는 여자의 음성에 몸이 저절로 흠칫한다. 이렇게나 공허하고 크게 울렸었나…. 고학번 4학년 특유의 무존재감이 여기서도 잘 발휘되길 바라며, 사뿐사뿐 정문을 나선다.
'오늘도 해냈어.'
이 학교 고인물에겐 학교 시설을 200% 활용할 수 있는 스킬과 철판 마스크가 있다. 나는 온 캠퍼스를 동에 번쩍 서에 번쩍 날아다닌다. 주요 활동무대는 도서관 신관/구관, 과방, 단과대 학습실. 그리고 시험 기간에만 개방하는 강의실 501호. 시간대마다 주로 머무는 곳은 정해져 있지만, 컨디션에 따라 달라지니, 신출귀몰이라 해도 좋을법하다. 야무지게 돌아다니는 날다람쥐의 행보에, 감탄을 하신 어머니께서 별명을 하나 선사해 주셨다. '학교 지박령'.
날다람쥐는 어떤 상황과 장소든 장점을 쏙 뽑아내서, 나에게 좋은 방향으로 만드는 게 특기다. 일명, 본전 뽑기. 등록금으로 선지급한 대형 스터디카페엔 건물이 여러 개였고, 리모델링 스타일도 다양하다. 그 날의 입맛에 따라 골라먹는 재미가 꽤 쏠쏠한 지박령이었다. 심지어 공과금 한푼이 아까운 자취생에겐 에어컨, 난방, 전자기기 충전, 전등을 얼마든지 이용할 수 있는 환경은 천국이나 다름없지. 엄마는 대학 등록금을 알차게 사용하는 나의 모습에 흡족하신 것 같았다.
침대로 다이빙하니, 새벽 2시 반. 4시간밖에 못 자지만 괜찮다. 이건 나를 위한 일이니까. '알바를 할 시간에 공부해'라는 말을 까마득히 어린 시절부터 들어왔던 나는, 증명해야만 했다. 오밀조밀 돈을 모으며 애쓰면서도, 공부를 놓치지 않고 잘할 수 있다는 것을. 나만의 길을 당당하게 가기 위한 나의 날갯짓. 내 목소리를 내가 지키기 위해, 난 오늘도 열심히 나를 굴렸다. 꽤 힘들지만, 괜찮다. 이건 끝이 있으니까.
작가의 말
: 이제 날이 점점 시원해지는 것 같아요. 오전 6시 30분의 바람은 꽤나 쌀쌀하답니다. 일교차가 꽤 크니, 감기 조심하셔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