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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워커 Jul 24. 2023

회사 빌런(운전기사 파트1)

만들어진 빌런

전 회사는 임원에게 운전기사를 지원했다. 기사는 임원 직위를 유지할 동안 함께 일거수일투족을 함께 한다. 임원이 근무지가 바뀌면 기사도 바뀌지만, 발령지가 멀지 않다면 함께 이동하기도 한다.


임원이 운전기사를 직접 선발하기도 하는데 궁합(?)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영화 '기생충'에서 운전기사를 시운전으로 선정하는 장면이 있다. 영화에서는 운전 실력(코너링)을 중요하게 표현했고, 운전기사의 체취(냄새)를 상징적으로 싫어했다. 아마 현실은 운전기사의 운전 실력도 중요하지만, 운전 스타일과 성격도 중요한 것 같다. 운전기사는 도급인 경우가 많고, 도급 운전기사는 바로 바뀔 수 있기 때문이다.


내가 근무했던 곳의 한 임원은 운전기사 선발을 위해 몇 번 시승했다. 안락한 운전 스타일을 원할 것 같아 총무부에서 몇 명을 추천했는데 모두 탈락했다.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초초초 엘리트 코스를 밟아온 사장(직급)은 과속, 신호 위반한 기사를 선발했다. 그는 막히는 도로에서 갓길로 달리고, 좁은 골목으로 우회하며 운전했다고 한다. 그 임원은 성격이 급했고, 차가 멈춰 서 있는 것을 참지 못했다고 했다. 사람은 겉으로, 스팩으로 판단할 수 없다. 사람은 정말 겪어봐야 안다.




빌런이 된 운전기사 이야기


XX는 택시 운전기사였다. 그는 택시를 그만두고, 도급업체 운전기사로 채용되었고, 공용차를 담당하다가 새 임원이 부임하면서 임원 차를 몰았다. 내가 입사했을 때, 그는 이미 임원 기사였고, 밝게 인사하는 아저씨였다. 유난히 붙임성이 있는 성격으로 수다스러웠다. 임원이 참석하는 회식이나 행사가 있으면 그는 보이지 않게 식사하거나 한동안 사라졌다가 귀신같이 끝날 시간에 나타나는 눈치 빠른 사람이었다.


XX는 키가 작고 마르고 단단한 체구였다. 그는 탈모가 있었는데 알고 지낸 지 1~2년 후부터 가발을 쓰기 시작했다. 그는 나의 어깨를 두드리거나 팔을 감싸 쥐며 친분을 드러냈다. 실없는 농담을 던지기도 하고, 내 팔뚝을 아플 정도로 꾹~ 눌러 잡으며 말을 걸었다.


- 운동 좀 하네?

- 애인 있어?


그는 총무부장과 각별했다. 악어와 악어새같이 총무부장과의 관계였다. 총무부장은 매일 아침 임원 기분을 물었고, 운전기사는 임원의 일상을 총무부장에게 매일 보고 했다. 총무부장은 임원의 기분을 고려해 보고 시기를 정했다. 임원은 기분 좋을 때만 보고 들어오는 총무부장과 사이가 좋아졌다. 임원의 취향을 기가 막히게 아는 총무부장은 좋은 사람이 되었다. 하지만, 변칙이 있으면 변질하기 쉽다.


시간이 지날수록 악어였던 총무부장이 악어새가 되어 운전기사에게 '정보'를 구걸했고, 악어가 되어버린 기사는 거들먹거리며 '정보' 총무부장에게 던져주는 꼴이 되었다. 스태프 중에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이 된 기사는 자칭 임원 '비선'이 되었다.




주로 비서에게 나타는 증상(현상)이다.

즉, ‘지가 사장인 줄 알아 신드롬’인데… 운전기사에게도 그 병이 생겼다.


이 병은 주변 사람들이 증상을 키운다. 권력과 가까이 오래 있으면, 자기가 누구인지 잊기 쉽다. 권력에 관한 사소한 정보가 누군가에게는 소중하다. 특히, 권력의 시간을 정리하는 비서가 보고자를 흔들 수 있는 이유는 충분하다. 권력자 일정에 대해서 '권력자'와 '비서'만 알기 때문이다. 그 결정권이 자기 권력이 되어 어느 순간 비서는 '일'과 '결정권'을 혼동하게 된다. 즉, '지가 사장인 줄' 알게 된다. 자연스러운 현상이고 비서와 오래 일했던 사람들은 그 '혼동'을 이해하고 너그럽게 넘어간다. '사장'과 농담을 주고받는 비서가 점점 자신을 잊어버리게 되는 상황을, 속칭 '싸가지 없어'지는 변화를 안타깝게 바라볼 수밖에 없다.


아마 그때부터 운전기사 XX는 가발을 쓰기 시작했던 것 같다.


- 무엇이 잘못되었을까?


임원이 승진하여 권위가 높아지면서 운전기사의 병도 깊어졌다. 인사부장, 총무부장은 XX가 전해주는 임원의 의도를 받아 가며 의사결정 방향을 정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 XX씨, 오늘 보고해도 될까?

- 무슨 보고요?

- ㅇㅇ 투자 건인데…

- 아 그거 사장님이 지난번에 부정적으로 이야기하시는 걸 들었어요~

- 아 그래? 큰일 날 뻔 했네… 고마워, XX씨


- XX씨, 혹시 사장님이 oo 개발 건에 관해서 이야기한 거 들은 적 있어?

- 모르겠네요... 혹시 들리면 이야기할게요

- 아... 기다려야겠군.. 나중에 혹시 비슷한 이야기하면 알려줘


오랜 시간을 같이 보내면 누구와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이슈가 무엇이고, 어떤 생각을 하는지, 눈치 빠른 사람은 알 수가 있다. 운전기사 XX는 그 재미에 안타깝게도 헤어 나오지 못했다.  


운전기사 XX는 자기가 모시는 임원 직위의 명함을 자기 이름으로 만들었다.


소문은 순식간이다. 회사에서 아무도 모르는 일은 없다. 그는 임원이 쉬는 날 임원의 차를 타고, 대기업 임원 행세를 하면서 놀았다. 재미있었을까? 불안하지 않았을까?




회사 앞에 함바집과 같은 라면집 앞에서 난 그를 봤다. 퇴근 무렵 중년의 남녀가 몸 싸움을 벌이고 있었다. 남성이 여성을 뿌리치고 화난 걸음으로 도망가고 있었다. 싸움의 원인은 알 수 없었으나, 대화는 들렸다.


- 당신이 이럴 수가 있어?

- 나한테 왜 그래?

막장 드라마 클리쎄와 같은 대화인데, 내가 아는 사람이 '이 식상한 대화'를 하는 걸 목격했다는게 신기했다.


중년 남자가 운전기사 XX이다. 매몰차게 중년의 여성을 뿌리친 그는 회사로 들어갔다. 그녀는 그를 임원으로 알았다. 소문이 파다했는데, 진짜 임원이 몰랐을까?


임원은 XX를 가만히 두고 보았다고 한다.


- 왜?


가까이 두고 오래 사귀면 버리기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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