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빌런일까?
리더는 외롭다.
그와 일하는 사람들은 그를 어려워하고, 그를 만나는 사람들은 '원하는 게' 있다. 게다가 임원이 해외 연수, 주재원을 다녀오면서 '기러기'가 되거나 아이를 국제학교 등 기숙학교에 보내 일상에는 일만 남는다. 문득 후회가 밀려와도 사심 없이 이야기할 '친구'가 없다. 임원도 사람이다.
상상해 보자!
외로운 임원에게 운전기사 XX는 제안했다.
- 재미난 데 있어요. 가보실래요?
임원과 운전기사가 얼큰한 곳에 가면 서로 뭐라고 부를까?
- 형, 동생?
약간 격이 떨어진다.
- 부사장, 전무?
그렇게 서로를 부르며 익명성을 즐겼을 것이다.
예전에 난 학교 앞에서 카페 아르바이트를 한 적이 있다. 중년의 단체 손님이 왔었는데 서로 교수라 불렀다. 한참 왁자지껄했는데, 대화의 내용은 사춘기 학생들 이야기였다. 가만히 듣다 보니 중학교 선생님같았다.
서로 교수라 부르며 놀았던 것이다. 그냥 재미다.
운전기사 XX는 그 재미로 대기업 임원 명함을 만들어 놀았다고 추측해 본다.
유난히 추웠던 초겨울 난 XX가 임원과 함께 즐거운 밤을 보냈다는 소문이 들었다. XX의 입에서 흘러나온 이야기였다. 회사원이 유흥을 즐겼다면 두 가지를 조심해야 한다. ‘영수증'과 같이 간 사람의 '입'이다. 운전기사 XX는 임원과 함께한 유흥 시간을 자랑하고 싶었나 보다. 아마 임원과 친분을 과시하고 싶었고 실제 그는 자칭 '비선'의 지휘가 확고할 때였다. 회사에서 아무도 '그를 조심하라.', '그를 자제시켜야 한다.'라며 말하지 못했다.
그해 연말 운전기사 XX가 모시던 임원A가 지방 발령 났다. 서울 사무실이 있었지만 주근무지는 지방으로 변경되었고 임원 A가 맡은 포지션은 경쟁자 임원B가 맡았다.
임원B는 A를 싫어하는 사내 경쟁자로 유명했다. B는 사석에서 상사이자 동료인 임원 A를 자주 비판했었는데 연말 발령에 따라 조직 변화가 있었다. 보직자가 대량 교체되었고 정책이 바뀌었다.
술을 좋아하지 않던 임원A와 달리 임원B의 음주량이 엄청났다. 직원 간담회와 사내 행사가 많아졌고 인사담당자의 법인카드 사용량도 늘었다. 코 팽팽 푸는 차장이 책임자가 되어 간담회 업무를 착실히 수행했다. 난 회식하면 끝까지 남아 결제하는 미덕을 실천해야 했다. 예전엔 법인카드로 개인 마일리지를 적립할 수 있었는데, 짧은 기간 미국 항공권이 생길 정도였다. (아~ 간담회... 이건 또 다른 글로 녹여야겠다.)
의외로 임원B의 운전기사도 XX가 맡았다. 임원이 바뀌면 비서와 운전기사는 바뀐다. '새 술은 새 부대'와 같은 표현을 인용하지 않더라도 당시엔 비서/기사 교체는 당연한 결정이었다. 하지만 비서가 바뀌었고 운전기사는 바뀌지 않았다.
- 왜?
악어새 총무부장이 강력히 추천했나? 운전기사 XX가 임원A로부터 임원B에게 투항했나?
운전기사 XX가 바뀌지 않은 신기한 일에 모두가 의구심을 품었다. 이 결정은 임원B의 실수가 되었다.
운전기사 XX '입'은 여러 소문의 출처였다. 술자리 잦은 임원B에 관한 추문이 소문으로 번졌다. 어느 날 임원B가 필름이 끊어질 정도로 술 마셨고, XX가 운전하는 차를 타고 귀가했다. 임원B는 그날을 기억하지 못했고 운전기사는 똑똑히 기억했다.
- oo동으로 가야지! 왜 집에 왔냐?
만취한 임원을 집으로 모셨는데 집에 왔다고 화를 냈다.
임원B가 가끔 직접 운전한 차에서 발견된 부적절한 물건도 소문에 더해졌다. 임원B 사생활이 운전기사 XX에 의해 까발려졌다. 경쟁자 임원A와 B가 사생활이 사내에 소문났다는 사실을 알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상대방의 사생활을 이용하지 않은 듯했다.
극도의 스트레스를 받는 임원 세계에 암묵적인 합의가 있는 것일까? 사생활 보호에 관한 예의일까? 임원 사생활 이야기가 크게 비화되지 않았다. 당시 임원A와 임원B의 상사였던 본부장이 아주 높은 곳까지 승진했었는데 사생활 추문이 있었다. 그가 실적 부진으로 최고경영진에서 물러났지만 추문이 퇴진에 영향을 끼쳤을 것이라고 사람들은 추측했었다.
누가?
빌런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