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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arah Kim Dec 03. 2023

브루클린 브리지 위에서

기억을 잇다. 마음을 잇다.

길이 끝나는 곳에 가면,
다시 새로운 길이 시작된다...


여행을 떠날 때, 가장 즐거운 일은 어쩌면 다시 돌아갈 곳이 있다는 안도감이 아닐까? 그 길 위에선 항상 새로운 소망 하나가 몽실몽실 떠다닌다. 이른 봄날에 피어나는 아지랑이처럼, 비 내리는 오후 차창밖으로 펼쳐진 희미한 풍경처럼 말이다.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인연의 끈이 소중하듯, 도시와 도시를 연결해 주는 다리 위에서는 여러 가지 상념에 빠지게 된다.

비오는 날, 맨해튼에서 브루클린 브리지를 건너가는 택시안에서


브루클린 브리지 위에서....

아직 10월이었지만 아침부터 추적추적 내리는 비 탓에 체온은 뚝 떨어져, 옷을 하나라도 더 끼어 입으려고 안간힘을 썼다. 오전 일찍 길을 나서 가장 먼저 들른 곳은 뉴욕 현대 미술관이었다. 날씨 때문인지 금요일 이벤트 때문인지 미술관은 이미 장사진을 이루어 발 디딜 틈조차 없었다. 그래도 내가 그토록 보고 싶었던 빈센트 반 고흐와 앙리 마티스, 샤갈 그리고 앤디 워홀의 그림을 MoMA에서 실물 영접하니 이역만리 떨어진 곳에 고생해서 온 보람이 있었다. 

뉴욕 현대미술관 MoMA에서

뉴욕의 상징인 엘로우 캡 안에서 들려오는 라디오 소리와 이국적인 냄새, 택시 운전기사가 툭툭 내뱉는 한 두 마디 말이 여행자의 감성을 자극했다. 맨해튼 미드타운 웨스트 타임스퀘어 광장 호텔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브루클린에 새로운 숙소를 향해 가는 길이었다. 누구나 처럼 시작은 맨해튼이었지만, New New York 뉴 뉴욕이라 불리는 브루클린에서 짧지만 강렬한 여행자의 일상을 누리기 위함이었다.

도시와 도시를 잇다. 마음을 잇다. 브루클린 브리지 위에서

맨해튼에서 출발해 브루클린으로 가는 ‘차 안에서의 풍경’과 브루클린에서 맨해튼을 향해 ‘걷는 느낌’은 사뭇 달랐다. 여행을 할 땐 차보다 걷는 것을 선호한다. 사람들의 다양한 표정들, 국적이 섞인 여러 언어들, 그리고 사방팔방 불어오는 바람과 다채로운 풍경들을 온몸으로 느끼는 게 좋아서다. 너무! 물론 예기치 않는 일들이 왕왕 생겨나 길을 잃을 때도 있다. 그 길 위에서 헤매고 당황하는 나 자신을 발견하는 것도 여행에서 누리는 색다른 경험이다. 길 위에는 항상 갖가지 위험들이 도사리고 있지만 또 마침맞게 행운의 순간들이 찾아오기도 하니까! 인생길도 마찬가지다. 떠나보지 않고서는 결코 어떠한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안온한 생활보다는 오히려 약간의 스릴을 즐기며 사는 편을 택하겠다.

브루클린에서 출발하여 맨해튼까지 걷는 이 다리 위에서의 풍경이 좋다.

브루클린 다리는 길이만 무려 1825m의 세계 최고 길이를 자랑하는 현수교다. 강철과 케이블로 만든 우아하고 매력적인 다리로 세계인들이 가장 걷고 싶은 다리 중에 하나다. 스틸 하프 Steel Harp라는 별칭답게 아치형으로 쭉 쭉 연결되는 케이블이 하나의 예술작품처럼 아름답다. 파리 에펠탑에서 처음 느꼈던 그 감정이 브루클린 브리지에서도 비슷하게 생겨났다. 이 다리를 건넜을 수 천, 수 만 명의 이름 모를 발걸음과 이 다리가 지어지기까지 희생을 감수해야 했던 수많은 사람들의 노고도 잊지 않았다. 브루클린 브리지의 완공 비화를 들은 적이 있는데, 우리가 지금 누리는 많은 것들의 배후엔 크고 작은 영웅들의 이야기가 늘 존재하는 법이니까.

페리 위에서 바라본 브루클린 브리지 전경과 맨해튼의 마천루

1870년을 시작으로 1883년 5월 이 다리가 완공되기까지는, 13년이라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 건축기간에는 스무 명이 넘는 노동자가 희생되었고, 다리 설계 건축 감독을 맡았던 가족들에게 들이닥친 슬픈 이야기는 유명하다. 최초의 공사감독을 맡은 건축가 존 A 로블링은 공사 도중에 파상풍으로 세상을 떠났고, 아버지의 뒤를 잇던 아들 역시 공사 중 기압차에 의한 전신 마비를 일으켰다. 남편을 이어 공사감독을 맡아야 했던 아내 에밀리가 그 힘들고 지지부진한 과정을 다 겪은 뒤 마침내 이 멋진 다리가 완공된 것이다. 로블링 가족의 뜨거운 근성과 열정이 '도시와 도시를 연결'해주는 가교 역할을 해준 것이라.... 다리 타워 교각 표지판에는 건설 도중에 사고로 숨진 설계자 존 로블링과 워싱턴 이외의 노동자들을 추모하고 있다.

브루클린 다리위에서

이 다리는 브루클린 -> 맨해튼 방향으로 걸을 때가 훨씬 운치 있다. 브루클린 다리는 2층 복층으로 구성된 다리인데, 2층에 보행로는 나무로 만들어져 나무 틈 사이로 자동차들이 지나다니는 것도 스릴 있게 보인다. 다리 중앙에 넓은 보행로는 최초 건축 설계자 존 로블링이 직접 만들었다고 들었다. 그는 뉴욕이라는 거대 상업도시에서 이 다리가 ‘사람을 위한’ 충분한 가치가 있을 것이라고 예언했다. 저 멀리 한국땅에서 입국심사를 어렵게 통과하고 걸어서일까! 그의 선견지명에 박수를 보내고 싶은 날이었다.

TVN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 어린 유진초이가 바라 본 뉴욕 브루클린 다리

드라마 미스터 선샤인에서 어린 유진 초이가 뉴욕에 도착해 브루클린 브리지 건설 장면을 바라보던 씬이 있었다. 또 성인이 된 유진 초이가 대한 제국으로 파견될 때 브루클린 브리지가 한성의 독립문으로 전환되는 장면과도 연결 지어 본다면, 이 다리를 걷는 그 시간이 훨씬 더 의미심장하게 다가올 것이다. 나는 한두 시간 남짓 느릿한 걸음으로 7세 조카와 함께 ‘ 그 길을’ 걸었다. 멋진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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