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홋가이도립 근대미술관 특별전, Livre d’artiste
Livre d’artiste 예술가의 책
책을 좋아하는 당신에게!
삿포로의 겨울은 고요하고 아름다운 한 편의 시(詩) 같다. 사람들로 붐비는 도시의 한복판을 빠져나와 나카시마 공원을 지나니 아직도 눈에 잠긴 '홋가이도립 근대 미술관'이 보인다. 무채색의 미술관 외관이 흰 눈과 겹쳐져 마치 한 폭의 그림 같다. 삿포로에 도착하자마자 짐을 풀고, 첫 번째로 찾은 이곳!
삿포로는 아직도 겨울
포스터로 먼저 접한 Livre d'artiste, ‘예술가의 책’이라는 뜻의 프랑스어 제목이 무척 맘에 들었다. Livre d'artiste 이 전시는 단순한 책 전시가 아니다. 오히려 책이라는 매체가 어떻게 예술가들에게 실험 공간이자 감수성의 발현 수단이 되었는지를 보여주는 장이었다.
책이 된 그림, 그림이 된 시
책을 좋아하는 당신에게!
20세기 전반의 파리에서 활약한 화가
루오, 다비드, 마티스, 샤갈
그들은 아름답고 수려한 유화뿐 아니라 시나 소설 등 문학작품의 삽화를 많이 그렸다. 화상 앙브루아즈 볼라르가 발안한 예술가의 오리지널 판화를 붙인 한정판은 '리브르 달티스트'(Livred'artiste)로 불리며 미술 애호가와 애서가들에게 즐겨 수집되었다. 만국박람회에서도 '책'은 이 시대 예술가들의 새로운 표현 수단으로 널리 보급된다. 볼라르는 단순이 그림만을 판매한 것 이 아니라, 예술가와 작가, 시인들을 연결해 새로운 예술 형태로서의 책을 기획했다.
문학자와 출판자, 또 판화공방과의 네트워크 속에서 화가들은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텍스트와 이미지의 관계를 심사숙고하고 자신의 예술 표현을 탐구해 갔다.
홋가이도립 근대미술관의 이 특별전에서는 미술관 소장품 컬렉션과 더불어 1920~70년대에 제작된 '예술가의 책'과 그 오리지널 판화 등 150여 점을 소개하고 있다.
전시장 입구를 들어서면 바로 눈에 띄는 것은 마티스, 피카소, 샤갈 등 20세기 유럽을 풍미한 거장들의 책 작업이다. 그들이 종이 위에 남긴 선과 색은, 벽에 걸린 그림보다도 더 인상적으로 다가왔다.
마티스의 리투그래프는 활자의 리듬에 맞춰 춤을 추고, 샤갈의 판화는 시의 이미지 속을 유영했다. 이들은 책이라는 공간에서 더욱 자유롭고 실험적인 태도로 접근했고, 때론 활자에 그림이 머물고, 때론 그림이 활자를 이끈다. '책'이면서 동시에 '그림'이고 '시'인, 다층적인 예술 공간이 바로 이 Livre d'artiste였다.
나는 한 줄의 선으로
인물의 본질을 포착하고자 한다. 앙리 마티스
샤갈의 꿈같은 색채가 미술관 벽 전체에 꽃처럼 피어났다. 그가 그린 성서적 장면과 고향에 대한 향수는 어쩌면 삿포로의 이 계절과 맞닿아 있는지도 모른다. 익숙한 것을 떠나 낯선 도시에서, 예술은 더욱 선명해진다.
다프니스와 클로에 (Daphnis et Chloé), 1961년 출간,
롱구스(Longus), 삽화: 마르크 샤갈 작품은 고대 그리스 연애소설을 바탕으로 한 아름다운 이야기. 샤갈은 이 고전 서사에 몽환적이고 다채로운 색채를 덧입혀 한 폭의 판타지를 창조했다.
나는 예수의 얼굴에서,
그 누구보다도 인간의 얼굴을 보았다. 조르주 루오
책 한 권, 여행 한 페이지
Livre d'artiste는 단순히 예술작품의 묶음이 아닌, 예술가가 세상에 건네는 한 권의 인사였다. 그리고 삿포로로의 오후 한 때는, 우리 여행 속의 아름다운 모먼트가 되었다. 우리는 낯선 도시에서 예술을 만나고, 그 안에서 새로운 자신을 조우한다. 종이 위에 물든 잉크와, 눈 위에 남은 발자국이 겹쳐지는 이 계절. 나는 또다시 책장을 넘기듯, 천천히 다음 여행을 기다린다. 홋가이도 근대 미술관 2층에서 바라본 아름다운 통창에서 봄, 여름, 가을, 겨울을 오롯하게 느껴보고 싶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