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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당근 Nov 20. 2024

하나님의 창조에 대하여

6일간의 창조 관람회

Intro


사람들과 대화를 하다 보면, 신학을 무시하는 사람들이 종종 보인다. 이 사람들은 성경을 읽을 때 어떤 것을 문자적(정확히는 직설법)으로 읽어야 하고 어떤 것을 비유적으로 읽어야 하는지 자의적으로 해석하는 경우가 너무도 많다.


문제가 무엇인가 하면, 내가 읽는 방식만 옳고, 다른 사람들의 독법은 틀리다고 한다는 점이다. 쉽게 말해, 내 신념만 옳고 다른 사람의 신념은 틀렸다고 비난하게 된다. 이런 사람들은 성경이 말하듯이 항상 배우지만 진리의 지식에 이를 수 없다.


그 중에 하나가 바로 유신 진화론과 창조과학회(문자적 6일 창조론자)이다. 유신 진화론자는 문자적 6일 창조론자를 바보라고 무시하고, 문자적 6일 창조론자는 유신 진화론을 신앙을 버린 사람처럼 몰아간다. 그런데 내 해석, 내 신념만 맞다고 주장할 때 "내 해석"을 우상으로 숭배할 수 있게 된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명료하게 알려주시지 않은 부분에 대해서는 해석의 다양성을 열어 놓아야 한다. 물론, 하나님이 알려주신 부분에 대해서는 확고해야 한다. 그러나 하나님이 알려주시지 않은 부분에 대해서, 내 멋대로 "이게 하나님의 뜻이야"라고 해버린다면 그것은 우상숭배일 수 있다. 하나님의 뜻이 아닌 것을 하나님의 뜻처럼 말하는 것은 사이비 교주나 하는 짓이다.


참고로 오늘 포스팅하는 내용은 하나님의 창조에 대한 가설이다. 성경을 계속 읽다 보면 창조 기사에 대한 다양한 가설을 생각해보게 되는데, 나도 마찬가지이다. 즉, 창세기 1장과 2장을 읽으며 다양한 창조 가설을 세우게 되었는데, 그 중에 하나가 오늘 포스팅하는 내용이다.


이것은 가설에 불과할 뿐이며, 나와 비슷한 가설을 가진 사람들도 굉장히 많다. 내가 가진 다양한 가설들 또한 오늘 포스팅하는 가설과 전체 맥락은 비슷하다. 창의력을 가지고 창조 기사를 해석한 것이기 때문에, 창조 기사를 해석하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그냥 "이렇게도 생각해볼 수 있구나" 하고 생각해보는 것으로 충분하다.




일주일 간의 시청각 교육


창세기 1장을 보면, 인상적인 것이 있다. 바로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이는 ㅇㅇ째 날이니라"가 계속 반복된다는 것이다. 왜 굳이 저녁에 시작되는 것일까? 이것을 살펴보기 전에 출애굽기로 가보자.


출애굽기 19장을 보면, 이스라엘이 시내산에 들어가고 하나님과 언약 관계를 맺자는 이야기가 나온다. 20장부터 24장에 걸쳐서 이스라엘과 하나님 사이에 (결혼) 언약을 맺게 되는데, 이 언약의 성격을 알려주는 것이 바로 출애굽기 20장에 나오는 십계명이다. 그 이후 이 언약을 위한 다양한 조항들이 나온다.


그리고 출애굽기 24장에 시내 산에서 이스라엘과 하나님 사이에 (결혼) 언약을 맺게 된다. 결혼 언약의 연회는 24장 11절에 볼 수 있다.


그리고 40일동안 첫날밤(?)을 치르는데, 그것이 바로 24장 12절부터 18절까지의 이야기이다. 그 중에서도 15절부터의 내용을 보면, 이스라엘이 일주일 동안 여호와의 영광을 보았다는 내용이 있다. (일주일 간 이스라엘에게 여호와의 영광을 보여주시고, 그뒤 사십 일간 모세가 산 위에 머물렀다.)


12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산에 올라 내게로 와서 거기 있으라 네가 그들을 가르치도록 내가 율법과 계명을 친히 기록한 돌판을 네게 주리라 13 모세가 그의 부하 여호수아와 함께 일어나 모세가 하나님의 산으로 올라가며 14 장로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여기서 우리가 너희에게로 돌아오기까지 기다리라 아론과 훌이 너희와 함께 하리니 무릇 일이 있는 자는 그들에게로 나아갈지니라 하고 15 모세가 산에 오르매 구름이 산을 가리며 16 여호와의 영광이 시내 산 위에 머무르고 구름이 엿새 동안 산을 가리더니 일곱째 날에 여호와께서 구름 가운데서 모세를 부르시니라 17 산 위의 여호와의 영광이 이스라엘 자손의 눈에 맹렬한 불 같이 보였고 18 모세는 구름 속으로 들어가서 산 위에 올랐으며 모세가 사십 일 사십 야를 산에 있으니라 [출24:12-18]


엿새 동안 구름이 산을 가리고, 산 위의 여호와의 영광이 이스라엘 자손의 눈에 맹렬한 불 같이 보였다. 그러니까 엿새 동안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영광을 보았다는 것이다. 여기서 하나님의 영광을 보았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 하나님이 누구인지 알게 되는 시간이다. 즉, 일주일 동안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이 누구이신가에 대해 시청각 교육을 받았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사실 이것은 출애굽 할 때 있었던 열 가지 재앙과 홍해 사건을 통해 하나님이 하신 이야기와 연결할 수 있을 것이다. 열 가지 재앙과 홍해 사건을 통해 애굽이 아니라 하나님이 참 하나님이심을 보여주시고, 그것을 통해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영광을 보았다. 이제, 일주일 동안 여호와의 영광을 보는 것으로, 누가 참 하나님인지 이스라엘 백성들은 알아야 했다.


참고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천지창조의 시청각 교육을 일주일 동안 받았다고 한다면, 출애굽기 24장의 일주일 외에 다른 기회는 성경에 적혀져 있지 않다. (그리고 일주일 뒤의 사십 일은 모세가 모세오경의 일부를 기록할 수 있었던 기간이었다고 생각해볼 수 있다.)




6일의 창조 관람회


자, 그러면 생각해보자. 창세기 1장에 나오는 6일 간의 창조는 하나님이 6일 동안 창조하셨다는 것일까 아니면 6일 동안 창조를 보여주셨다는 것일까?


물론 우리는 알 수 없다. 하나님께서 6일 동안 창조하셨을 수도 있고, 아니면 창조 관람회가 6일이었을 뿐일 수 있다. 하지만 밤에 맹렬한 불이라는 빔으로 창조를 보여주셨을지도 모른다는 해석은 이상한 해석은 아니다.


6일 창조가 아니라 창조에 대한 6일 관람회였다고 생각해본다면, 창세기 1장에 나타난 창조의 순서와 모습은 이상하게 보이지 않는다. 이때 중요한 것은, 우주의 역사를 모르는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의 눈에 6일 간의 창조 관람회가 어떻게 보였을까 하는 점이다.


예를 들어, <우주가 탄생하여 별들이 생성되는 시간>과 <인간 역사의 모든 시간> 사이에는 커다란 차이가 있다. 인간의 역사가 상대적으로 훨씬 더 짧다. 하지만 역사서를 보면 인간은 우주의 탄생보다 인간의 역사를 훨씬 많이 다룬다.


즉, 6일 간의 창조 관람회가 맞다면, 우주의 창조에 하루를 사용하는 것과 생물의 창조에 하루를 사용하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을 받아들이는 모세 입장에서는, 첫째날을 우주 창조로, 셋째날부터 여섯째날까지 생물의 창조로 바라볼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사실을 염두에 두고 6일의 창조 관람회를 생각해보자.


첫째날

첫째날 창조를 보자. 하나님께서는 "빛이 있으라" 하시며 빛과 어둠을 나누신다. 빅뱅 이론이 맞다고 한다면, 하나님께서는 첫째날에 빅뱅으로 인한 온 우주의 창조를 보여주셨을 수 있다. 즉, 우주의 항성들과 태양계의 창조를 하나님께서 보여주신 것이다.


여기서 첫째날 밤에 우주의 창조를 보여주시고, 아침이 되니 관람이 끝났다. 만약에 그렇게 본다면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첫째 날이니라"라는 말이 이해가 간다. 여기서 말하는 첫째날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하루인 저녁+아침+점심+오후가 아니다. 여기서 말하는 첫째날은 하나님이 우주의 창조를 보여주신 첫번째 저녁이고, 아침이 되니 끝난 것이다.


둘째날

둘째날 창조를 보자. "물 가운데 궁창이 있어 물과 물로 나뉘라"고 명령하신다. 궁창을 하늘이라고 부르셨으니, 결국 하늘 위의 물과 하늘 아래의 물로 나누신다. 여기서 우리는 지구에 물이 생기고, 이것이 구름과 바다로 나뉘는 것을 상상해볼 수 있다.


그러니까, 우주의 탄생에서 이제 지구의 기후 변화로 시선을 돌린 것이다. 이제 지구는 생명체가 살 수 없는 별에서 생명체가 살 수 있는 곳으로 변해가기 시작했다.


셋째날

셋째날의 창조를 보면, 물로 가득했던 지구에 이제 땅이 드러나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 땅 위로 식물이 자라기 시작한다.


넷째날

넷째날, 이제 지구에 아침과 밤이 생긴다. 좀더 쉽게 말하자면, 이 질문에 답을 해보자. 왜 (달과) 별은 낮에만 보이는가? 이것을 이해한다면 아래의 내용을 읽어보자. 지구에 대기가 없거나 지금보다 훨씬 얇았다면 별을 보는 방식과 가시성에는 다음과 같은 변화가 있을 것이다.


- 별빛이 더 선명해진다. 대기가 없으면 별빛이 산란되거나 흩어지지 않으므로 별들이 더 선명하고 밝게 보인다. 현재 지구의 대기는 별빛을 약간 왜곡하거나 흐리게 만들기 때문에, 대기가 없는 상태에서는 이러한 간섭 없이 맑은 별빛을 관찰할 수 있다.


- 별이 더 많이 보인다. 대기 산란이나 빛 흡수가 없으므로 훨씬 더 어두운 별들까지 볼 수 있다. 지금의 밤하늘에서는 맨눈으로 약 2,500개의 별을 볼 수 있지만, 대기가 없다면 수십만 개의 별을 볼 가능성이 높다.


- 별이 반짝이지 않는다. 별이 반짝이는 현상(천문학적으로 '시상'이라고 함)은 대기의 난류와 층밀도 변화로 인해 빛의 경로가 굴절되면서 발생한다. 대기가 없다면 별빛은 곧게 도달하므로 반짝이는 현상이 사라지고, 별이 고요하고 안정적으로 보일 것이다.


천체 관측에 큰 향상이 있을 것이다. 대기 왜곡(특히 대기의 "난류")이 없어지므로, 대기가 없는 환경에서는 망원경으로 별과 행성의 표면 디테일을 더 정확하게 관찰할 수 있다. 지상 망원경이 우주 망원경처럼 높은 해상도를 제공할 수 있을 것이다.


- 태양광과 우주 방사선 노출이 있을 것이다. 대기가 없으면 밤하늘 관측에는 유리하겠지만, 낮에는 태양빛이 직접적으로 들어와 하늘이 검게 보이더라도 태양이 매우 눈부실 것이다. 동시에 대기가 차단하던 자외선(UV) 및 우주 방사선도 그대로 노출되기 때문에 인간의 생존은 불가능하다.


하늘의 색깔이 다를 것이다. 대기가 없다면, 낮에도 하늘은 파란색이 아닌 검은색으로 보일 것이다. 태양빛을 산란시키는 대기가 없으므로 밤하늘처럼 우주와 별이 보이게 된다.      


즉, 우리는 지구의 대기가 점점 두꺼워져서, 낮에는 하늘이 푸르게 바뀌고 우주와 별이 보이지 않게 바뀌는 것을 볼 수 있다. 다시 말해, 셋째날 대기가 생기기 시작하고, 넷째날에는 대기가 두꺼워지면서 지구의 하루가 가시적으로 드라마틱하게 변한다. 관람자에 불과한 모세에게는 대기가 생기기 시작한 것보다 낮과 밤이 나뉘는 것이 더 극적으로 보일 수도 있다.


다섯째날

다섯째날에는 새와 물고기가 보이기 시작한다. 나는 다섯째날과 여섯째날의 창조를 보면 BBC의 다큐멘터리 Life on Earth가 생각난다. 우리는 Life on Earth를 보면서 <왜 창조의 순서대로 다큐멘터리를 만들지 않았느냐>고 따지지 않는다. 다만, "이 세상에 정말로 다양한 생물이 존재하는구나"를 깨닫는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영광을 보여주시기 위해 온 우주와 지구를 창조하신 것을 보여주셨다고 가정해보자. 그리고 유신진화론이 맞다고 가정해보자. 기린의 목이 점점 길어지는 모습을 보여주는 게 효과적일까, 아니면 기린과 코끼리, 고래 등과 같은 다양한 생물체를 보여주는 게 효과적일까?


하나님께서는 먼저 생물의 창조를 보여주시고, 이제 물 속에 있는 다양한 물고기들, 그리고 하늘을 나는 다양한 날짐승들을 보여주셨으리라 생각한다. (그리고 이것 또한 나 혼자만의 생각이지만, 날개 달린 곤충들도 하늘을 나는 생물 안에 포함되지 않았을까 한다.)


여섯째날

그리고 여섯째날, 하나님께서는 땅의 생물들과 인간이 기르는 가축들을 보여주신다. 그 다음에야 인간의 탄생을 보여주시고, 인간이 온 땅에 충만하게 되는 것을 보여주신다.


일곱째날

마지막으로 일곱째날, 하나님께서는 안식하신다.

1 천지와 만물이 다 이루어지니라 2 하나님이 그가 하시던 일을 일곱째 날에 마치시니 그가 하시던 모든 일을 그치고 일곱째 날에 안식하시니라 3 하나님이 그 일곱째 날을 복되게 하사 거룩하게 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그 창조하시며 만드시던 모든 일을 마치시고 그 날에 안식하셨음이니라 [창2:1-3]


그렇다면 여기서 안식하신 게 무엇인가? 아마도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에게 보여주셨던 시청각 교육을 그치시고 쉬신 것 같다. 출애굽기 24장을 보면, 하나님께서는 6일동안 (빔프로젝트의 스크린이 되는) 구름으로 산을 가리시더니, 일곱째날에 모세를 부르신다.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일곱째날을 안식일로 지키게 된다.


16 여호와의 영광이 시내 산 위에 머무르고 구름이 엿새 동안 산을 가리더니 일곱째 날에 여호와께서 구름 가운데서 모세를 부르시니라 17 산 위의 여호와의 영광이 이스라엘 자손의 눈에 맹렬한 불 같이 보였고 18 모세는 구름 속으로 들어가서 산 위에 올랐으며 모세가 사십 일 사십 야를 산에 있으니라 [출24:16-18]




정리하며


항상 하는 이야기이지만, 창조에 대한 이런 이야기들은 하나님께서 명료하게 알려주시지 않는 이상 가설이자 상상에 불과하다. 우리는 이러한 것들에 대해 확실하게 알 수 없다. 다만, (하나님의 창조와 같이) 확실하게 알 수 있는 것들이 일정 부분 존재할 뿐이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이러한 자기의 상상과 가설을 유일한 해석으로 생각할 때가 있다. 어떤 사람들은 시대적인 학설을 유일한 가설로 생각하기도 한다. 하지만 가끔 이러한 가설이 뒤집어질 때가 있다. 유일한 가설이라고 생각했던 가설이 뒤집어지고, 너무 기독교적이어서 배타되었던 가설이 살아남는 것을 보게 될 때도 있다. 그럴 때면, 가설에 불과한 것을 유일한 해답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후대에는 우스꽝스럽게 보일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예를 들어, 한때는 너무 혁신적이고 기독교적이었던 빅뱅 이론이 "너무 기독교적이라는 이유로" 거부당했다.


벨기에의 대학 도시, 루벤에서는 1931년, 잘 알려지지 않은 벨기에의 가톨릭 사제 조르주 르메트르(Georges Lemaître)가 우주의 시작에 대한 혁신적인 가설을 발표했다.

다시 말해, 루벤(Leuven)은 빅뱅 이론(Big Bang Theory)이 처음으로 구상된 곳이다. 르메트르는 이 개념을 “어제가 없는 날(The Day Without Yesterday)”이라고 불렀다. 하지만 “빅뱅의 아버지(Father of the Big Bang)”로서 그의 영향력은 최근에서야 널리 인정받기 시작했다.

1930년대 르메트르의 이론은 너무 혁신적이어서 많은 동시대 과학자들, 심지어 아인슈타인조차 그의 우주 팽창 이론을 거부했다. 당시 아인슈타인은 르메트르에게 “수학은 맞지만, 물리학은 엉망이다”라고 말했다고 전해진다.

조르주 르메트르는 1894년 벨기에 샤를루아에서 태어나 처음에는 토목 공학을 공부했지만, 이후 루벤 가톨릭 대학교(현재 KU Leuven)에서 수학을 전공하며 교수가 되었다. 그는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과 우주의 초기 팽창 사이의 연결점을 발견하고 발전시키는 동시에, 사제 서품을 준비하며 가톨릭 신앙을 지켰다. 그의 연구는 과학과 영성의 경계에서 깊은 긴장을 탐구했다.

KU Leuven의 저명한 우주학자인 토마스 헤르토그(Thomas Hertog)는 르메트르를 “국내외에서 모두 잊혀진 위대한 과학자 중 한 명”이라고 평가한다. 헤르토그는 스티븐 호킹과 20년 동안 빅뱅 이론을 발전시키는 연구를 함께 했다.

출처
https://www.nationalgeographic.com/travel/article/the-belgian-city-where-the-big-bang-theory-was-born


확실하게 알 수 없는 것을 "왜 확실하게 받아들이지 못하느냐"라고 주장하는 것만큼 우스꽝스러운 게 없다. 우리는 확실하게 알 수 없는 것을 하나님께 맡기고 다른 사람들을 포용하는 것이 필요하다. 마찬가지로 여기서 소개한 <6일의 창조 관람회 이론> 또한 하나의 이론이자 가설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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