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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 더 중요할까

역지사지(易地思之)

 육아휴직을 내고 아이와 함께 한국을 떠나 뉴질랜드로 온 지도 1년 하고도 반이 지나고 있다. 중간에 우리 가족은 계획이 바뀌고 수정하는 과정을 거치다가 최종적으로는 2년, 나의 육아휴직이 종료되는 시점에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려는 계획이다.


 처음에는 이곳이 너무 좋고 아이에게 너무나도 좋은 환경들로 1년 계획으로 왔지만 나의 육아휴직이 종료되면 아내가 휴직을 신청해 1년을 더 채워 2년을 하려고 했었다. 그러다 회사에서 육아휴직이 1년 더 갑자기 연장되는 행운(?)을 얻게 되어 내가 2년을 하고 아내가 바톤을 이어받아 1년, 그래서 총 3년을 지내고 한국에서는 국제학교를 보내 조금 더 넓은 세상으로 아이를 키워보고 싶었다. 하지만 1년이 지나고 가족이 떨어져 있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아내의 공허함 그리고 앞으로 미래의 아이의 부재를 생각한 아내는 아이를 한국에서 키우길 원했다. 자식이 한 명이라 언제가 떠날 아이지만 곧 떠날 것만 같은 아이의 미래를 우리가 만들어주고 싶지는 않았다. 그래서 어찌 되었던 뉴질랜드의 삶도 잘 마무리를 해야 할 시간이 돌아오고 있다.


 왜, 많은 나라 중에 뉴질랜드 그리고 이 시골로 왔냐고 묻는다면 단 하나의 이유를 말할 것이다. 이곳은 한 학급에 한 명의 유학생만 받는다는 정책을 가지고 있다. 언어를 습득하는데 가장 좋은 것이 친구를 사귀는 것이고 언어에 익숙하지 않은 유학생은 처음에 많이 힘들겠지만 그것이 언어를 가장 빨리 습득할 수 있는 방법임에는 틀림없다. 우리 가족 외에도 이곳을 선택하는 다른 한국 가정의 이유도 모두 이런 지역 정책 때문일 것이다.


 학교나 해당 교육청의 입장에서는 많은 유학생들이 유입되어 지역 산업발전에도 도움이 되고 외화를 많이 벌 수 있는 기회인데 왜 한 명만 고집할까?라고 다시 생각해 보자면 아무래도 다른 지역과의 변별력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국제공항인 오클랜드까지도 2시간이 넘는 거리에 있고, 생활하는데 필요한 편의시설등이 없을 건 없고(?) 있을 건 다 있지만 그래도 부족한다고 느낄 수 있는 이곳은 뉴질랜드 시골이다. 그러나 이 모든 걸 리쿱할 수 있는 것이 이 교육정책(한 학급에 한 명의 유학생)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요즘 이곳은 인기학교는 자리가 없어서 못 들어가는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


 이 정책은 실제로 맞았다. 우리 딸도 초반에 영어가 두렵고 어색하니 한국 친구들하고 어울리는 것을 좋아했는데 초반에 나의 레이더에 자주 걸려서 혼도 많이 나고 하면서 점점 한국 친구들하고 어울리기보다는 키위(뉴질랜드) 친구들과 어울리는 것이 자연스러워졌다. 그 결과 영어유치원도 안 다녀보고 파닉스를 겨우 떼고 온 아이가 6개월 만에 현지 키위 수준으로 영어를 구사하게 되었다. 같은 반에 한국 친구가 있었더라면 둘은 평생 가는 베스트 프렌드가 되었을 것이다. 이 지역에서 내세운 정책의 효과를 톡톡히 본 것이다.


관련 에피소드가 하나 있다.


연말에 유학원에서 연락이 왔다.


"누구누구 아시죠? 그 가정이 겨울방학 이용해서 이곳에 또 오려고 하는데 반에 유학생들이 꽉 차서요. 조금 양해해 주시면 한 달 정도 같은 반에 있어도 될까요?"


나는 반갑게 알겠다고 했는데 딸에게 한 번 물어보고 확답을 해주겠다고 했다.


딸아이에게 밥을 먹으면서 상황을 설명했다. 잠시 생각을 한 아이는


"싫어"


라고 대답하였다. 왜라고 물어보니 자초지경은 이러하였다.


 유학 초기에 같은 학교에 입학했던 연년생 자매가 있었는데 한 명은 우리 딸과 동갑 한 명은 한 살 어린 동생이었다. 그 세명은 서로에게 의지하고 학교에서도 방과 후에도 잘 어울렸다. 그러다 서로의 부모가 그러면 안 될 거 같다며 계획하에 떨어뜨려 놓았다. 우리 딸과 자매의 동생은 잘 적응했는데 딸과 동갑인 친구는 조금 적응하는데 어려움을 겪은 거 같았다. (내 생각) 아니나 다를까 우리 딸과 제일 친한 친구, 지금까지도 같은 반을 하는 친구에게 플레이데이트를 신청했었다. 다른 반인데 우리 딸과 잘 놀고 하니까 몇 번 같이 놀았던 모양이다. 그 친구들이 플레이데이트를 하는 다음날이 딸의 생일파티였는데 그 키위친구는 감기몸살로 파티에 오지 못했다. 딸은 당연히 속상해했고,, 딸의 가장 친한 친구에게 플레이데이트를 신청한 그 친구, 그리고 그것을 허락해 준 어머니가 원망도스러웠다. 친구를 소유할 수는 없지만 나라면 하지 않았을 행동인데.. 상대방에 대한 배려가 조금 부족하다고 느꼈다. 그래도 이해는 한다. 뉴질랜드까지 왔는데 잘 적응하지 못하는 자녀를 보면 뭐라도 해주고 싶은 게 부모 마음이니까..


우리 딸의 마음도 헤아려야 한다. 아이의 엄마도 화상 통화를 하며 설득해 보지만 아이의 마음은 확고하다. 유학원에도 어렵게 이 이야기를 했더니 딸의 마음을 존중해 주고 이해해 주었다. 이렇게 고객을 잘 이해를 해주고 상식이 통하는 커뮤니케이션을 해주는 유학원을 만난 것도 우리에겐 행운이었다.



다시 본론으로,


 그리고 아빠가 혼자 와서 지내는 경우는 거의 없다 보니 짧은 기간에 아이의 영어 실력이 더 좋아진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든다. 왜냐하면 방과 후에도 다른 유학온 가정과 어울리지 않다 보니,,

(보통의 유학온 어머니들은 다른 어머니들과의 친목으로 아이까지 함께 어울리게 되니까..)


 여하튼 우리 가족은 뉴질랜드에 와서 지내면서 아이는 영어도 잘하게 되고 운동을 하며 땀 흘리는 기쁨을 알게 되었고, 나도 한국에서 지긋하게 달고 살았던 두통을 잊은 채, 몸무게도 10kg 이상 감량하며 건강하게 몸을 회복하는 시간을 가졌다. 기회가 있다면 내가 있는 이곳으로 좋은 사람들이 많이 왔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특히 아빠들.


사실 내가 하고 싶었는 이야기는 지금부터이다.


지난 12월,

 학년을 마무리하면서 이곳에서는 성적표(1년에 두 번)와 내년에 같은 반이 될 친구들을 알려주는 시기가 있다. 미리 같은 반을 하고 싶던 친구들의 리스트를 알려주면 학교에서 반편성에 참고해서 해준다. 우리 딸은 3학년 때(한국 2학년)부터 같은 반이었던 버디들과 5학년(현재)까지도 같은 반이 되었다. 서로를 너무나도 좋아하기에 어떤 친구랑 같은 반이 될지 나는 어느 정도 예상을 하고 있었다.


반편성이 공유되는 날


 학교 인터내셔널 담당 선생님께 카톡이 온다.

(뉴질랜드사람이지만 한국유학생들을 위해 카톡으로 연락을 해준다)


"헤니는 함께 하고 싶은 친구들과 같은 반이 되었어!~ 그런데 너네 반에 한 한국 여학생이 함께 있을 거야. 그 친구는 부모가 워크비자를 통해 인터내셔널에서 도메스틱으로 전환이 되었어"


 그 친구가 누군가 보니, 우리 딸보다 늦게 유학을 시작을 한 같은 학년의 여자아이였다 우리 주변에 교민분들도 계신데 그분들의 자녀들도 도메스틱으로 한국의 유학생과 같은 반으로 지내기 때문에 크게 문제가 될 만한 사항은 아니었다. 다만 아쉽긴 했다. 5학년이 5개 반인데 4개의 반에는 남자 유학생, 그리고 우리 딸이 지내는 반이 있는데 굳이 왜 우리 딸 반으로 넣어줬을까? 이 나이 때 아이들은 성별로 따로 놀기 때문에 남학생 반이었다면 서로 데면데면하기 때문에 괜찮았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을 해보았다. 그래도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나중에 유학원과 인터내셔널 담당 선생님께도 반편성에 대해서 문의를 해보았지만, 서로의 친구가 원했기 때문에 같은 반이 되었다고만 이야기를 해줬다. 어차피 그 친구는 도메스틱으로 전환이 되어서 누군가의 반에 들어가야 했고 그게 우리 딸의 반이 되었을 뿐 그 이상 이하도 아니었다.


  아이들에게 반편성을 공유해 준 하교 후에 아이는 같은 반에 제일 친한 친구들과 같은 반이 되었다는 기쁨과 자신의 반에 한국인 친구가 있다며 놀라며 말을 해주었다.


 "응 이야기 들었어. 부모님이 여기서 직장을 구하셨데~ 잘 지내. 일부러 피하거나 말 안 하고 그럴 필요 없어! 이제 우리 딸 영어 잘하잖아. 사이좋게 잘 지내"


말은 이렇게 하지만 아쉬움은 사라지지 않는다.

억지로 삼킬 뿐.. 내가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으니까.

그리고 정말 어쩔 수 없는 일이니까..


 연말에 친한 교민 가정과 티타임을 하면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이 이야기가 나왔다. 그 교민들은 실제로 나의 상황을 겪어본 상대방의 입장인 분들이었다. 애초에 워크비자를 통해 아이가 도메스틱으로 분류되어 학교에 나가게 되었는데 영어도 잘 못하니 다른 유학생 가정에 너무 미안한 마음이었다고..

 우리 딸과 같은 반이 된 가정도 한 학급에 한 명의 유학생만 들어올 수 있는 이곳의 교육정책 때문에 이곳에 오셨을 텐데 좋은 기회로 취직을 하셨고 그로 인해서 다른 한국인(우리 딸)과 같은 반이 된 상황이 된 것이니 고민이 많으시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내가 먼저 연락을 해서 잘 지내자고 말을 해볼까도 했는데 그러진 못했고, 교민 지인분들도 그분들을 잘 아시기 때문에 좋은 분이라고 생각 있으면 먼저 연락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고 너무 고마워할 것 같다고 이야기해 주셨다.


 근데 따지고 보면 그 가정은 어쨌든 도메스틱으로 일반 뉴질랜드 인과 동일하게 학비도 내지 않고 어떤 한국인과 같은 반이 되더라도 이상한 상황은 아니다. 반대로 우린 우리보다 유학도 늦게 한 학생이 갑자기 같은 반에 도메스틱이라도 들어오게 된 경우라 아쉬워도 우리가 더 아쉬운 상황. 가슴으로는 따뜻하게 먼저 연락을 할까 했지만 머릿속은 차갑게 이성적이다.


그렇게 긴 여름방학(12월~2월)이 지나고 새 학년의 시작이 되었다.


 나의 걱정은 머지않아 실제로 발생했다. 같은 테이블 같은 작업 그룹으로 다른 한국학생과 수업을 듣고

함께 놀았다. 아이는 이미 영어를 잘하기 때문에 함께 놀고 워크그룹을 하는 게 전혀 문제가 되진 않았다. 그러다 어느 날 우리 딸은 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말을 해주다가 그 한국인 친구가 자기 스타일이라고 했다. 다른 친구와 함께 플레이데이트를 하기로 했다며,,


 이 도시의 정책이 맞았다. 한 학급에 한 명의 유학생만 받는다는 정책. 비록 그 학생은 도메스틱이라 정책에는 어긋나진 않지만 같은 동성친구가 함께 있다 보니 동포애를 느꼈는지 서로에게 끌리는지.. 둘은 가까워지고 있음에 확실했다. 그날 바로 담임 선생님께 메일을 보냈다.


나는 이런저런 상황들을 다 이해하고 있어.

하지만 이 것은 내가 원하는 건 아니다.

두 소녀를 그룹핑하지 말아 달라.

부탁해.


 선생님의 답장은 없었지만 다음날 테이블의 위치는 바뀌었다. 하지만 내가 이곳에 온 가장 큰 이유 중에 하나인 한 학급에 한 명의 유학생의 혜택이 나에겐 없다는 생각이 점점 들기 시작했다.


그렇게 한 달이 지나고 있었다.


 어느 날 학교 인터내셔널 학생 페이지에 유학생 소식이 올라왔다. 딸아이의 사진을 찾아보다가 같은 반에 있는 친구의 사진을 보았다. 왜 아직도 이곳에 소식이 올라오지???

 상황을 체크해 보니 부모의 워크비자와 별개로 아이의 학생비자는 따로 필요한 듯 보였다. 근데 그 학생비자가 안 나왔다는 것. 결론은 인터내셔널 학생으로 한 텀을 더 등록했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지금 한 반에 두 명의 유학생이 있는 거라고? 그동안의 스트레스가 삭히고 삭인 응어리가 한 번에 머리끝까지 전해졌다. 어쩔 수 없이 삼키고 있던 것과 지금의 상황은 전혀 다르다. 처음에는 유학원에 화가 났다.


"왜 저에게 먼저 이야기를 안 해주셨죠? 이럴 수가 있는 건가요?"


 알고 보니 그 가정에서 유학원 통하지 않고 다른 루트로 워크 비자 신청을 한 모양이다. 그래서 유학원에서는 F/U을 하기 쉽지 않았던 듯하다. 맞다. 연말에 유학원에서 나에게 다른 학생을 단기로 함께 해도 되는지 먼저 물어보고 하셨기 때문에 유학원에서는 일부러 나에게 말을 안 할 이유가 없었다. 모두 문제가 없을 거라고 생각했고 학기가 시작했지만 1,2주 차에도 비자가 나오지 않아 그 가정에서도 어쩔 수 없이 인터내셔널 학생 학비를 낸 듯하다. 그 가정은 법무사와 이민성을 원망하고 있겠지만 난 그 가정이 원망스러워지기 시작했다. 도메스틱으로 전환이 된다고 해서 아쉬워도 어쩔 수 없는 부분이니 그러려니 했고, 오히려 상대가 부담 스러 하실까 먼저 연락을 하려고 했던 나였는데. 그런 상황이면 그 가정이든 유학원이든 먼저 우리에게 자초지경을 설명하고 허락을 받아야 하는 게 순리 아닌가? 나만 바보가 된 느낌?


제가 그동안 별 말 안 했잖아요.

어쩔 수 없으니까요.

그런데 이건 아닌 거 같아요.

당장 분리 시켜놓으세요.


 사실 아이의 의중은 전혀 없다. 아이는 너무나 행복하게 학교에서 생활하고 있다. 전혀 문제 될 부분이 없고 이건 오로지 나의 의지와 생각이었다. 유학원과 학교에서도 강경한 나의 입장에 적잖이 당황을 한 모양이다. 전혀 설득이 되지 않을 거 같은 나의 모습에 모두가 당황스러운 상황에서도 해당 가정에서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궁금했다. 아마도 내지 않아도 되는 학비를 낸 것이 아깝고 일처리가 늦어지는 이민성만 원망을 할 것 같았다. 왜냐하면 누구를 통해서도 그 가정에 대한 이야기를 듣지 못했기 때문에.

 애초에 도메스틱으로 전환이 될 건데 학생비자가 안 나와서 조금 기다려야 한다고 미리 말해줬더라면 이러진 않았을 텐데 나만 몰랐다는 사실에 너무나도 화가 났다. 그 가정은 집을 이사했기 때문에 도메스틱으로 전환이 되면 다른 학교로 전학을 가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 해결되는 거 아니냐고 몇몇이 물었지만 나는 그렇지 않았다.


 반편성부터 지난 몇 개월간 내가 썼던 마음의 가치는 아무도 이해해 줄 수 없다. 내가 저런 사람들을 위해서 마음을 쓰려고 했더니.. 나는 남들보다 가지고 있는 마음의 가치가 적기 때문에 내가 그 정도로 쓰려고 했다면 나에겐 꽤나 감정의 소모가 심한 것이었다.


 당장 분리하라는 나의 메시지에 학교에서는 교장선생님께서 나를 만나고 싶다고 하셨다. 나는 만나서 이야기할 것도 없고 날 설득 시킬 생각도 하지 말고 나의 생각은 유학원에게 다 전달해 놨으니 유학원 하고 이야기하고 나에겐 결정상황만 알려달라고 했다.


내가 원하는 건 한 학급에 한 명의 유학생이야.

이게 너네 룰이잖아.

그렇게 해줘.

다른 건 필요 없어.

자꾸 설득하려고 하면  한 달여 동안 컨펌 없이 한 학급에 두 명의 유학생을 넣은 것에 대한 보상책도 물을 거야.


 그래도 교장선생님이 한 번만 만나자고 사정사정, 결국 학교에 가서 대화를 했고 예상은 했지만 나에게 의미는 없었다. 학교에서는 나에게 유감을 표시했지만 더 이상 나에게 뭘 해줄 수 있는 건 없어 보였다.


나는 마지막으로 부탁을 하고 나왔다.


 사실 우리 아이는 유학생이 두 명이어서 문제 될 게 없어. 너무나 좋은 학교와 선생님, 친구들과 행복하게 학교생활을 하고 있어. 지금 문제는 나에게 있어. 나는 이걸 받아들이기가 힘들어. 왜냐하면 내가 이곳을 선택한 이유가 너의 정책 때문 이거 든. 근데 지금 그 정책이 나에게만 적용이 안되고 있어. 도메스틱으로 전환이 되는 경우에는 그 가정에 축복을 해줄 일이야. 전혀 문제가 없어. 하지만 나는 유쾌하지는 않은 상황이긴 하지. 그래도 내가 어떻게 할 수가 없어. 그게 룰이잖아. 그동안 내가 아무 말도 안 했잖아. 근데 다른 학생이 이런저런 이유로 유학생 신분이 되었고 우리 딸과 같은 반이 되었다면 너희는 나에게 먼저 물어봤어야 했어. 너희는 그걸 놓쳤어. 그리고 난 한 달 동안 몰랐고, 그마저도 내가 먼저 질문해서 이 사실을 알아냈어. 내가 말 안 했다면? 그냥 넘어갔을 거야. 나는 이 과정에 대해 매우 불쾌해. 이게 다야. 나는 우리 딸이 행복해야 하는 것처럼 다른 한국아이도 행복했으면 좋겠어. 더 이상 둘을 위해 뭘 하려고 하지 마. 그냥 둬. 대신 앞으로 이런 일이 또 생긴다면 지금처럼 하지 않기를 바라.


그리고 몇 가지 제안을 하였다.

- 유학생이 도메스틱으로 등록한다는 말만 듣고 하지 말고 정확하게 비자를 받고 행정처리를 해

- 어쩔 수 없이 같은 반에 들어가야 한다고 하면 동성친구반보다는 이성친구반으로 배정을 해줘

- 그리고 같은 반에 배치하더라도 먼저 온 유학생 반에는 넣지 마(부모끼리는 불편한 관계가 될 거야)


그리고 너희의 정책이 옳았어.

한 학급에 한 명의 유학생을 넣는 건 정말 최고의 정책이야.


 교장선생님은 이번일로 본인들이 배운 점이 많다고 했다. 본인이 직접 비자 상황에 대해 이민성에 체크를 할 것이라고 했고, 이사회를 열어서 위에 말한 부분을 룰로 정해보겠다고 했다. 그렇게 대화를 마치고 나는 스스로 더 이상 관련해서 이야기를 안 하기로 했다.


 생각해 보니 좋게 좋게 넘어갈 수도 있는 문제일 수도 있었는데 그 과정들에 내가 소모한 감정들을 생각하면 또 같은 상황이 생겨도 똑같이 했을듯하다. 그 도메스틱으로 전환된 가정에서 먼저 나에게 설명해 주고 배려를 원했더라면? 직접 말하기 부담스러웠다면 유학원 혹은 학교를 통해서 할 수도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그리고 나도 생각만 하지 말고 내가 먼저 연락을 했었더라면 더 멋진 사람이 되었을 수도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근데 무엇이 더 중요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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