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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은 Oct 03. 2023

[짧은 소설] 베일


 정말 작은 학원이었다. 아마도 근처 아파트에 사는 아이들만 다닐 것 같은, 누구라도 부러 찾아올 일은 없을 것 같은 곳이었다. 마찬가지로 작고 오래되어 보이는 정형외과와 입구를 같이 쓰는 지라 건물을 찾는 사람 중에 학생들보다 노인들이 더 많아 보였다. 허리가 다 꼬부라진 할머니 세 명과 나보다 체구가 작은 할아버지 한 명이 먼저 타 있는 엘리베이터에 올라탔다. 5명이면 꽉 차는 직사각형의 공간에는 원인을 알 수 없는 쿰쿰한 냄새가 났다. 2층의 정형외과에서 노인들은 모두 내렸다. 학원은 3층이었다.

 이곳이라면 내가 머무르기에 마땅해 보였다. 원장은 내가 출력해 온 이력서를 펄럭거리며 읽었다. 아마도 지금 처음 읽어보는 듯했다. 학원 원장이라기엔 다소 허름한 행색에 까무잡잡한 얼굴을 한 사내에게서는 멀리 앉아있는 데도 담배 냄새가 풍겨왔다. 원장은 내 이력서를 보며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이런 명문대를 나오셔서 왜, 저희 학원을요? 경력도, 흠, 꽤 있으신데요.”


 엄마는 내가 어릴 때부터 난 체, 하는 것을 좋아했다고 지겨운 듯이 말했다. 뭐든 남보다 더 좋은 것을 가져야 하는 아이였다고. 흥미가 있었던 국문학 대신 경영학을 선택한 것도 허영심에서 비롯된 일이었다. 나는 책을 손에 쥐면 쉽게 놓는 법이 없었다. 20평이 채 되지 않는 작은 빌라에 네 식구가 옹기종기 모여사는 우리 집 형편이나, 형편보다도 더 초라하게 보이는 부모, 공부에도 영 취미가 없으면서 허약하기까지 한 남동생은 내 허영심이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들이었다. 그 모든 것들의 도피처는 책이었다. 나에게 어울리는 화려한 삶을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나는 언젠가 이 작은 빌라에서 탈출하는 날을 꿈꾸었다. 다만 어린 나는 국문학을 전공해서는 많은 돈을 벌기가 어렵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해서 내가 택한 것이 경영학이었다. 잠이 올 때면 입술을 피가 나도록 깨물어가면서, 그래도 안되면 뺨을 때려가면서 밤을 새웠다. 다행히 그 해 수능에서 나는 내가 본 시험 중 최고의 성적을 받았다.

 내 이름이 고등학교 교문 앞에 걸리고, 기숙사 배정을 받을 때까지만 해도 나는 꿈에 부풀어 올랐다. 그 꿈이 깨지기까지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를 이 사람에게 설명할 필요는 없으리라. 나는 그저 씩 웃으며 원장이 쉽게 받아들일만한 대답을 했다.


“결혼했거든요, 남편 직장이 이 쪽이라.


내 말이 끝나자마자 원장은 화색이 되더니, 내가 온 이후로 죽 노상 의자에 기대고 있던 몸을 일으켰다.


“아이고, 그렇죠. 집에서 쉬엄쉬엄 다니시기는 좋지. 우리 학원이. 나도 결혼하셨다니까 아주 마음이 놓이네. 젊은 아가씨들은 툭하면 그만둔다 말이 많아서…….”

“네에, 그렇죠.”

“그래, 그러면 언제부터 나올 수 있어요?”


 일사천리로 출근이 결정되고 강의실을 좀 둘러봐도 되겠느냐고 묻자 원장은 시설이 좋진 않을 것이라며 민망한 웃음을 지었다. 수업이 없는 강의실에는 냉기가 감돌았다. 벽에는 오래전부터 쌓여온 듯한 낙서가 가득 차있었다. S.E.X. 혹은 섹스. 저 나이 때 아이들은 왜 저렇게 저 단어를 좋아하는 걸까? 저 단어를 뱉는 것 만으로 금기를 깨는 기분이 들어서일까? 벽에 낙서를 한 적은 없지만 나도 처음으로 관계를 가지기 전에는 종종 상상해보곤 했었다. 동기언니가 은밀한 목소리로 천국에 미리 가보는 기분이라고 묘사했었던 것을 떠올리면서.

 기대에 비하면 처음 사귀었던 남자와의 잠자리는 형편없었다. 동기가 묘사했던, 그 정도의 감동은 커녕 헬스장에서 러닝머신을 뛰고 난 뒤의 개운함만큼도 없었다. 그는 관계 후 선혈이 비치지 않자 너, 처음 맞아? 하고 멍청한 소리를 해서 안 그래도 차갑게 식은 내 몸을 한 번 더 식게 만들었다. 첫 관계라는 것에 크게 의의를 두지는 않았지만 기왕이면 다른 사람이었다면 좋았을 것이다.

 몇 명의 남자를 더 만나고, 동기언니가 말한 천국에 대해 잊어갈 때쯤 남편을 만났다. 바로 그 동기언니의 소개였다. 동기언니는 남편을 K대를 나와 S기업에 다니는 엘리트라고 소개했다. 그런 이가 나를 왜 만나겠는가 하고 묻자, 언니는 머쓱한 얼굴로 그가 홀어머니를 부양하느라 모은 돈이 거의 없다는 설명을 덧붙였다. 이어서 그 홀어머니는 작년에 돌아가셨고, 그는 S기업에 다니고 있으니 몇 년만 있으면 자리를 잡지 않겠느냐고 말하며 눈을 찡긋거렸다. 언니의 말 속에 홀어머니가 돌아가셨으니 얼마나 다행이냐는 속뜻이 들리는 듯하여 잠시 거북했지만, 내가 생각해도 다행이기는 다행이었다.

 남편의 외향은 내 취향과 거리가 멀었으나 그 외의 것들은 내가 바라 마지않던 것들 뿐이었다. 남편은 똑똑했고, 조금은 교활하기도 했다. 자신이 가지지 못한 것을 세련되게 포장하고 자신이 가진 것을 티 나지 않게 부풀리며 말할 줄 았았다. 아무 날이 아니어도 가끔씩 분위기 좋은 식당을 예약했고, 소소한 선물을 하는 센스도 있었다. 남편과의 관계는 천국까지는 아니더라도 제법 몸을 데우기는 했다.

 우리는 만난 지 반년이 되지 않았을 때 결혼식을 올렸다. 남편 쪽 가족이 없었고 우리 가족들에게는 내가 결혼식에 참석하는 것 외에 아무런 관여를 하지 말라고 못을 박았기에 준비과정이 복잡하지는 않았다. 대부분 내가 가진 돈으로 신혼부부들이 많이 산다는 깔끔한 빌라에 전세를 얻었다. 남편은 빚을 좀 더 져서라도 아파트로 가야 하지 않겠냐고 했지만 나는 빚지는 것이 무서웠다. 신용카드를 쓰지 않는 것도 그 때문이었다. 다섯 개의 신용카드를 돌려 막아가며 생활하던 엄마의 모습이 자꾸 떠올랐다. 그럴 때마다 더 악착같이 수업에 매달렸다.

학원강사의 길로 뛰어든 것은 이전에 동아리를 같이 했던 친구의 제의 때문이었다. 그 친구는 잘만하면 직장인들보다 훨씬 더 번다는 말로 나를 유혹했다. 마침 자신이 있는 학원에 국어 과목 강사자리가 났다고 했다. 내가 나는 국어 전공자도 아닌데 괜찮냐고 묻자 친구는 이 동네 엄마들은 전공보다는 학교를 본다는 말로 대답했다. 그때 나는 몇 십 개의 이력서를 작성하고 또 몇 번의 면접을 봤지만 결과가 좋지 않아 몹시 초조했었던 터라 그의 말이 너무나 솔깃하게 들렸다.

 작은 학원 풍경을 보자 잠시 옛날 생각이 나기도 했지만 시시한 감상에 사로잡힐 이유가 없었다. 어찌 됐든 이제 이곳이 나의 일터였다. 이제 잘 곳이 필요했다. 혹시 몰라 학원에서 가능한 멀리 위치한 곳의 숙박업소를 선택했다. 행복모텔, 이름과는 달리 전혀 행복해 보이지 않는 중년의 여성이 카운터에 앉아있었다. 화장으로도 가려지지 않는 기미와 진한 립스틱 색조에도 숨겨지지 않는 입술의 각질이 눈에 띄었다. 그녀는 직업적 습관인지 고개도 들지 않고 물어왔다.


“혼자예요?”

“네, 좀 오래 묵으려고 하는데요.”

“얼마 나요?”


 오래라는 말에 여자가 고개를 들었다. 한 달 이상 있을 거라는 말에 여자는 반가운 기색이었다.


“출장 나오셨나 보죠? 그럼 방 구경 좀 시켜드릴게."

“네, 아무 데나 괜찮아요."


 모텔 방 안은 허름한 외관보다 더 허름했다. 수많은 사람들이 거쳐갔을 침대시트는 얼룩덜룩했고, 담배냄새가 코를 찔렀다. 여자는 내 표정을 의식한 듯 변명했다.


“으응, 금연인데 꼭 말을 안 듣는 사람들이 있다니까. 창문 열어놓으면 냄새 빠질 거예요. 수건이나 물 같은 건 더 필요하면 나한테 말하고, 청소는 낮에 해줄 거예요.”


 더 나은 잠자리를 찾을 수도 있었지만 부러 그러지 않았다. 모텔방에 대충 짐을 풀어놓고 침대에 앉자 속이 아려올 정도로 배가 고팠다. 더 이상 굶는다면 제 기능을 하지 않겠다고 온몸이 항의하고 있었다. 커피라도 마시려 찾아간 카페에는 가족단위의 손님들이 가득했다. 달갑지는 않았지만 최대한 구석진 자리를 찾아 앉았다. 자리에 앉아 벨이 울리기를 기다리는데 옆자리에 앉은 대여섯 살 돼 보이는 아이와 엄마의 대화가 귀에 들려왔다.


“당근케이크 안 먹는 거 보니까 너 여섯 살 아니구나.”

“맞아요, 저 여섯 살 아니에요.”

“너 그럼 다섯 살이네?”

“아니에요, 저 다섯 살 아니에요.”


 여섯 살이 아니면 다섯 살이라는 것을 몰랐는지, 아이는 서럽게 울었다. 아이엄마는 다시 아이를 달래면서 그래, 그럼 너 일곱 살 해, 하고는 깔깔 웃었다. 언제 그랬냐는 듯 금세 케이크를 우물우물 씹고 있는 아이의 모습을 보자 순간 내가 갖지 못한 것에 대한 상실의 감정으로 나는 또 속이 메슥거렸다. 가진 적이 없으니 상실이라는 표현은 옳지 않을 텐데, 아이만 보면 왜 가진 것을 빼앗긴 듯한 기분에 빠지는지 모를 일이었다.

 결혼한 지 1년이 다 되어갔을 때였다. 이제 충분히 신혼을 즐겼으니 아이를 가져야겠다고 생각했고, 남편과 그 시기를 논의하려던 날이었다. 그날 남편이 나보다 먼저 입을 열었다. 남편은 저녁식사가 끝나고 불쑥 통장 하나를 내밀었다. 월급에서 생활비를 각출하고, 용돈을 조금 쓰고, 남는 돈을 모아둔 통장이라고 했다.


“두 달 생활비는 될 거야. 두 달 뒤에 돌아올게.”


 남편은 직장에 휴직계를 냈다고 했다. 나에게 한 마디 상의도 없이. 나는 배신감에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결혼 후 처음으로 악을 쓰며 싸운 날이었다. 나를 아내로 생각하기는 했느냐, 이렇게 책임감이 없는 사람이었느냐, 묻기도 하고 아주 미친 여자처럼 쌍욕을 하며 나가면 죽어버리겠다고 협박을 해보기도 했다. 그러나 나의 말은 독백일 뿐이었다. 남편은 내가 출근한 새 짐을 싸서 나가버렸다. 평일 중에 수업이 가장 많은 수요일 저녁이었다. 밤늦게 집에 들어온 나는 어쩐지 서늘한 집 안의 공기에 남편이 나갔음을 알아차렸다.

 남편은 정확히 두 달 뒤에 돌아왔다. 돌아온 남편은 언제 그런 일이 있었냐는 듯 태연했다. 직장에도 다음 주부터 복귀할 것이라고 했다. 처음으로 남편이 무서웠다.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내게 말을 거는 저 남자가 내 남편이 아니라 내 남편의 가죽을 뒤집어쓴 괴물인 것 같았다. 내 진짜 남편은 어디선가 살해당하고, 괴물들이 번갈아가며 내 남편 행세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남편이 돌아오기 전 매일 분노하던 때가 오히려 나았다. 나는 남편에게 더 이상 묻기를 그만두었다.

 남편의 이상행동은 계속되었다. 화장실에 들어가 삼사십 분씩 안 나온다던가 하는 일이야, 없던 변비가 생긴 모양이라고 애써 생각할 수 있었다. 하지만 자다 일어나 침대 아래에 웅크리고 있는다던가, 어떤 날은 자다가 뭔가 이상한 기분에 눈을 뜨자 남편이 선 채로 나를 지켜보는 일은 별다른 핑계를 찾아주기가 어려웠다. 내가 소스라치게 놀라며 소리를 지르자 남편은 또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누워서 잠들었다. 이대로라면 나까지 미치는 것도 곧 일터였다. 문제는 이 일에 대해서 상의할 사람이 없다는 것이었다.

 남편은 마지막으로 남은 가족이었던 홀어머니를 나와 결혼하기도 전에 잃었기 때문에 가족이 없었다. 남편에게는 친구가 많았지만 다 허울뿐인 관계였다. 진탕 술을 마시고 속이야기를 나눌 만한 친구는 없었다. 그러고 보면 남편은 한 번도 술에 취하거나, 말없이 늦게 귀가하거나, 하다 못해  양말을 뒤집어 놓는 것 같이, 내가 잔소리할 만한 일을 하는 법이 없었다. 그것은 이상한 행동을 반복하는 동안에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이 남자에 대해 반은 모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반이 아니라 십의 일이라도 알고 있을까? 의문이 들었으나 이제 와서 남편의 베일을 걷을 자신이 없었다. 풀 수 없는 문제는 빠르게 포기하고 풀 수 있는 문제에 집중한다. 학생 때부터 들여온 습관이었다.

 그래서 나는 남편의 증상을 외면했다. 아이를 가질 수 없다는 점만 제외하면 크게 문제는 없었다. 남편과 방을 따로 쓰기 시작했고 그때부터 자주는 아니어도 정기적으로 가지던 부부관계는 아예 사라졌다. 내 몸은 이전처럼 차가워졌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남편의 옷을 세탁하고, 남편이 먹을 반찬을 만들었다. 남편은 남편대로 자신 몫의 일을 했고, 생활비도 입금했다. 괜찮은 룸메이트였다. 이대로 사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고 나를 위안했다.

 그렇게 부부로서의 생활보다 룸메이트로서의 생활에 적응할 때쯤 남편이 평화를 깨트렸다. 나와 남편 회사의 부부동반모임에 가던 길이었다. 식당 건물에 자리가 없어 조금 멀리 주차를 하고 걷던 중이었다. 우리는 신호를 기다리고 있었다. 차이점이 있다면 나는 횡단보도에 초록불이 들어오기를 기다렸지만 남편은 반대편 차량신호에 초록불이 들어오기를 기다렸다는 점이다. 신호가 바뀌자마자 남편은 말릴 새도 없이 앞으로 튀어나갔다. 사람이라기보단 용수철이 튕겨나가는 것 같았다.

 과감한 시도에도 불구하고, 남편의 목숨은 질겼다. 남편과 사고가 난 차량의 운전자는 어린 학생이었다. 남편이 죽지 않은 것은 그녀가 면허를 딴 지 얼마 되지 않아 빠른 속도로 달리지 않은 덕분이었다. 병원에 입원한 남편은 며칠이 지나도 의식이 돌아오지 않았다. 의사는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남편을 병원에 두고 돌아온, 남편이 없는 집에서 나는 지독한 악몽에 시달렸다. 꿈속에서 남편은 몇 번이고 달리는 차에 뛰어들었고 그때마다 죽지 않았다. 살아난 남편은 또다시 차에 뛰어들고, 또 뛰어들었다. 나는 늘 그 옆에 있었다. 단 한 번도 남편을 잡지 못한 채로.

 운전을 했던 어린 학생은 남편의 병원에 매일같이 찾아왔다. 이미 보험처리는 완료된 상태였는데도 그랬다. 그 학생은 제 때 서지 못했다는 죄책감과 함께, 왜 하필 내 차에 뛰어들었냐는 원망을 모두 담은 얼굴로 남편을 면회했다. 이 주가 지났을 때, 나는 그녀에게 더 이상 면회하지 않기를 부탁했다. 그녀는 알겠다고 고개를 끄덕였으나, 간호사의 말로는 내가 오는 시간을 피해서 남편을 꼭 찾아온다고 했다.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한 탓에 낮의 시간도 무너져갔다. 수업은 엉망이 되어갔고, 몇 번인가 학부모들의 원성을 진정시키던 원장은 결국 나에게 해고통보를 했다. '내가 겪은 일'은 유감이지만, 더 이상은 어렵겠다며 좀 쉬고 오는 것이 어떻겠냐고 했다. 나는 어디라도 도망칠 곳을 찾아서 떠나기로 했다.

 그래서 찾은 곳이 이 도시였다. 남편과 연관된 것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이전의 삶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 이 도시. 나는 카페를 나서 다시 모텔방으로 돌아왔다. 뜨거운 물에 몸을 씻어내자 잠이 밀려왔다. 삐걱거리는 싸구려침대에 누운 순간, 옆방의 소음을 의식하기도 전에 잠에 빠져들었다. 오랜만의 단잠이었다. 남편의 사고 후 처음으로 꿈을 꾸지 않았다.

    

**     


 남편의 사고 후에 같은 팀원들도 몇 번 병문안을 왔다. 대부분이 의례적인 위로의 인사를 건네고 돌아갔으나, 아마도 막내일 듯한 어린 여직원 한 명이 다른 이들이 모두 병실을 나선 뒤 나에게 말을 걸어왔다. 남편의 직속상사이자, 여직원이 속한 부서의 부장에 대한 이야기였다.


“처음에는 그저 성격이 조금 까칠한 사람이겠거니, 했죠. 나중에는 잘못 걸렸구나, 알았어요. 하나만 말씀해 드리자면 저는 화장실 가는 횟수, 시간까지 카운트당했어요. 뭐, 남편분한테도 더하면 더했지 덜 하진 않았겠죠.”


그 말을 하는 여직원의 눈 주변 피부색이 유난히 짙었다. 그녀를 통해 알게 된 사실이지만, 남편이 있는 부서는 회사 내에서 업무강도가 높기로 악명이 자자하다고 했다. 돈을 주는 만큼 사람을 부린다는 기업에서 가장 많은 돈을 받는 부서였으니 당연할 일일지도 몰랐다.


“그런데, 왜...”

“왜 그만두지 않았느냐고요? 그만둘 법하면, 그 자식이 프로젝트를 하나 따와요. 우리는 덩달아 성과급을 받죠. 또 못 버티겠다, 싶을 쯤이면 엄마가 네가 그 회사 다녀서 엄마가 얼마나 자랑스러운지 모른다, 전화가 와요.”


 남편은 회사일을 자세히 이야기하는 법이 없었다. 그래도 예전에는 종종 무슨 프로젝트를 맡았고, 프레젠테이션이 있어서 바쁘다, 정도는 말해줬었는데 언제부턴가 남편은 회사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남편은 대신 나의 이야기를 물었다. 요즘 말 안 듣는 애들은 없느냐, 원장은 이제 속 안 썩이느냐, 하고. 그것도 남편이 이상한 행동을 시작하기 전의 일이었지만 말이다. 나는 여보, 여기 학원에는 나쁜 애들은 없는 것 같아, 속으로 중얼거렸다.

 학원의 작은 교실에는 학생이 앉은자리보다 빈자리가 더 많았고, 몇몇을 제외하면 앉아있는 대부분 학생들의 눈에도 열의가 없었다. 이 정도 학원에 보내는 부모라면 아마 아이의 교육에 큰 관심은 없을 것이 분명했다. 시간제 강사를 쓰는 작은 학원, 배우기보다는 하교 후 붕 뜬 시간을 보내는 곳이었다. 중학생 때는 잠시 이런 학원에 다닌 적도 있었다. 학원에 다니고 싶다는 내 말에 엄마가 가장 원비가 싼 곳을 알아봐 등록해 줬다. 앳된 얼굴의 강사는 교사용 교재에 적힌 내용을 그대로 읊었고, 누가 질문이라도 하면 당황한 표정이 그대로 드러났다. 나는 한 달이 되기 전에 엄마에게 학원을 그만두겠다고 말했지만 그 학원에 오래 다니는 아이들도 많았다.

 종종 빈자리에 남편이 앉아있는 모습을 보고는 했다. 안개로 만들어진 듯 흐릿한 형체였다. 처음에는 당황했지만 곧 피곤해 보이는 남편의 얼굴을 보며 수업을 하는 일에도 적응했다. 남편이 보이는 날에는 도리어 남편이 나오는 악몽을 꾸지 않았기 때문에 어느 순간부터 남편이 교실에 등장하기를 기다리기도 했다.

가끔 학생들이 문제를 풀고 있을 때면 나는 남편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며 부장의 얼굴을 상상해보곤 했다. 어린 여직원에게 화장실 갔다 오는 횟수를 보고하게 하는 사람의 얼굴은 어떻게 생겼을까? 어떤 눈으로, 어떤 표정으로 나의 남편을 바라보았을까, 아무리 그려보려 해도 사람의 형태로 얼굴을 그릴 수 없었다.

 아무리 창문을 열어도 빠지지 않는 모텔방의 담배냄새와 학원 엘리베이터의 냄새가 익숙해질 때쯤, 학교의 방학이 찾아왔다. 방학식 날 수업에는 대부분의 학생들이 나오지 않았다. 원장은 원래 방학식날은 결석이 많다고 귀띔해주었다. 수업에 나온 것은 첫날부터 눈이 가던 여학생 한 명을 포함해 세 명뿐이었다. 남편을 포함하면 넷이었다. 그날은 남편이 교실에 있었는데도 악몽을 꾸었다. 평소와 다른 꿈이었다.

 남편과 나는 안개가 가득한 숲 속에 와 있다. 바로 앞의 사물도 분간하기 어려울 정도로 가득한 안갯속에서 나는 먼발치에 있는 남편을 향해 계속 달려간다. 아무리 달려도 남편은 가까워지지 않고, 남편 주변의 안개는 점점 더 짙어져 간다. 나는 나뭇가지에 몸이 긁히고,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지만 피 한 방울 나오지 않는다. 내 몸에는 피가 나지 않는데 사방에는 비릿한 피냄새가 난다. 나는 그 냄새가 남편의 것인가 하여 달리는 것을 멈출 수가 없다. 나는 계속 달린다. 그래도 남편은 잡히지 않는다.

 안갯속에서 나를 꺼낸 것은 병원에서 온 전화 벨소리였다. 이미 부재중이 여러 통 찍혀있었다. 급히 병원으로 와달라는 연락이었다. 나는 정신없이 남편에게로 달려갔다. 어쩌면 꿈에서 깨지 않은 것도 같았다. 안개 대신 수많은 신호등이 나의 발걸음을 붙잡았다. 그래도 나는 계속 갔다. 남편에게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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