꾸준하게 독서를 하고 있다. 하루에 단 몇장이라고 책을 읽고 있다. 책을 읽는 순간이 좋다. 다른 그 무엇을 하는 것보다 좋다.
책을 읽으며 발견하는 문장들이 나를 심취하게 한다.
이종인의 '살면서 마주한 고전'을 읽고 있다.
"일상생황에서 벌어지는 사소한 실수나 오류에 대해서도, 그것을 카드 게임 중에 충분히 벌어질 수 있는 경우의 수라고 생각하면서, 고칠 것은 고치고 어떻게 할 수 없는 것은 그대로 두면서, 다가오는 새 날을 초발심의 마음으로, 새롭게 맞이하는 기분으로 살아가야 한다."
란 문장을 발견했다. 이 문장을 보고 위안을 받았다. 맞다. 우리가 원하지 않았지만 우리에게 펼쳐지는 수많은 실수와 실패가 있다. 그때마다 좌절하고 넘어져 있을 수 만은 없다. 놀이를 하듯이 일상 생활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실수나 오류에 대해서도 충분히 벌어질 수 있는 가능성이 있는 경우라고 생각하고 고칠 것은 고치고 어찌 해볼 수없는 것은 그대로 두고, 새로운 날을 맞이하면 그만이다.
"자신의 재미와 자신의 재미만 쫒으며 살아간다면 어떻게 다른 사람의 아픔이 마음에 들어오겠는가? 또한 장차 허무의 순간이 다가온다면 무엇으로 그것을 감당할 것인가? "
란 문장도 발견했다. 순간의 재미와 즐거움을 쫒은 사람들을 보면 나는 왜 그러지 못할까라는 자책 아닌 자책을 하는 경우가 있다. 맞다 내가 책을 읽으면 생각하고 생각하는 것은 불현듯 닥치는 허무의 순간마저 사랑하기 위해서다.
'앤드오브타임'을 읽으며 거기에서도 문장을 발견했다.
"죽음은....기쁨의 원천에 서식하는 벌레라고 했다. 일과 놀이, 갈망, 노력, 사랑 등 인생을 풍부하게 만드는 모든 요소들은 다양한 실로 짠 직물처럼 우리의 삶 속에 치밀하게 엮여 있다가 죽음과 함께 모두 사라져 버린다. "
"우리의 의식은 자신을 자연에서 가장 특별하고 고귀한 존재로 여기고 있지만 육체는 결국 땅 속에 묻혀 썩어 갈 운명이다."
우리의 삶은 유한하고 순간을 살 뿐이다. 하지만 그 순간을 영원처럼 생각하고 살고있다.
항상 죽음을 염두에 두고 사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죽음을 염두에 뒀을 때 놓아지는 것이 있다. 또 더욱 움켜쥐게 되는 게 있다. 그 둘을 생각하면 일상을 더 밀도있게 살게하고 그리고 중요한 것과 중요하지 않은 것과의 구분을 하게 된다.
내가 책을 읽는 이유는 내 안의 알 수 없는 심연을 건드리고, 심연을 드러내주기 때문이다. 그리고 심연을 이해하게 된다. 독서는 어두운 공간에서 빛을 발견하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