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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낭중지추 Sep 02. 2024

글쓰기의 힘, 내가 되는 시간


며칠전 우연히 이웃님의  블로그글을 읽다 검마사님이 챌린지를 모집한다는 글을 보았다. 아무런 계획도, 생각도 없이 주저없이 신청을 했다. 아마 일상에 찌들어 지쳐 있었던것 같다. 그래서 탈피하고 싶었던 것 같다. 



내가 생각하는 나이듦이란 물속에서 유유히 헤엄치는 물고기 같은 삶이었다. 물의 중력을 이겨내고 어떤 깊이의 물에서나 자유롭게 유영하는 그런 물고기의 삶같은거 말이다. 어떤 고난이 와도 척척 내면의 힘과 그동안 쌓아온 경륜으로 잘 정리하고 넘어갈 수 있을 거라고 믿어왔지만, 고난은 매번 새롭다. 사람에 대한 고민도 더이상 할 일이 없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현실은 다르다. 이전에 보지 못했던 새로운 초식의 사람을 접하게 된다. 기존의 틀로는 해석되거나 설명되지 않는 사람들이 계속 내 앞에 등장한다. 



젊은 시절에는 나이가 들면 삶에 대한 고민이나 인간관계에 대한 고민이 없을 줄 알았다. 젊어서 충분히 고민하고 경험하고 겪어내면 매에 단련되듯이 덜 아프고 덜 힘들 줄 알았다.  근데 나이를 한살 두살 더 먹어도 인간관계는 항상 어렵고, 삶은 여전히 나에게 숙제를 내준다. 젊어서 해야 할 사람의 도리나 역할이 있었다면 나이가 든 시니어들의 도리가 역할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구분이 스스로 명확하게 설정되지가 않는것 같다.  삶의 도리가 역할 또는 고민이라고 하는 것이 나이대에 따라 딱 구분되는게 아니라 스스로 어떠한 삶을 살지에 대한 고민과 많이 연결되기에 그럴 것이다. 마음 한 구석에서는 젊은이의 패기와 열정이 남아있고, 다른 한 구석에는 내려 놓음으로써 생기는 여유가 있고 또 다른 한 구석에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결하고 싶은 생에 대한 의문이 여전히 있다. 그런가하면 여전히 마음 저 구석에는 돌봐주어야할 내가 있기도 하다. 



아직도 누군가 던진 한 마디에 기분이 좌우되고, 누군가의 인상 찌뿌린 얼굴을 보면 한 나절동안 전전긍긍하게 되기도 한다. 그러는 한편으로는 여전히 남은 삶을 무엇으로 어떻게 채워야 하냐에 대한 고민은 평행선처럼 남아있다. 



유아기니 청소년기니 장년기, 노년기로 구분하는 것이 생물학적 구분이라면,  삶은 그 구분안으로 집어  넣기엔 매우 복잡해서 설명되지 않는게 더 많은 것 같다. 한 두개의 구간으로 설명되거나 이해되지 않는 면이 더 많기에 차라리 무슨 무슨 기로 일반화하려기 보다는 그냥 누구 누구의 어떤 삶으로 특징짓는게 더 맞는 것 같다. 




니체의 말이다. 






"자신을 제대로 사랑하지 못하면, 외로움은 괴로움이 된다.어울리려고 애쓰지 마라. 인생은 행복은 친구가 아니라 스스로에 대한 사랑과 만족에서 나온다"







나이가 기준이 되는 것이 아니라, 삶의 중심을 어디에 두는냐가 더 중요한 것 같다. 외부의 시선이나 평가에 기준을 둔다면 외롭고 괴로운 삶을 살게되지만, 나 자신을 사랑하는 것에 기준을 둔다면 스스로 사랑하고 만족하는 삶을 살 수 있을 거라는 말이다. 



100일간의 챌린지 동안 나의 목표는 하루에 2개의 글을 쓰는 것이다. 하나는 일상적인 글을 쓰려고 하고 또 하나는 책 리뷰를 할 생각이다. 나에게 글쓰기는 정말 내가 나로 돌아가는 시간이다. 잠시 흔들렸던 일상에서 탈피하고 자 자신에게로 무게 중심을 옮기기 위해 챌린지에 열심히 참여해볼 생각이다. 100일 후에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모습으로 어떤 지점에 가 있을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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