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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 am as I am May 29. 2024

19 죽어야 비로소 삶은 시작되는 것이 아닐까?


저녁을 먹고 근처 조용한 카페에 가서 따스한 커피 한잔에 대화를 섞으며 저물어 가는 밤의 정적에 약간의 소음을 적당히 즐기고 있었다. 넓은 카페에 딱 한 테이블 차 있었다. 나이 지긋하신 아저씨 두 분이었다. 아저씨들의 대화는 정적과도 같았다. 서로 마주 보고 커피를 마시고 있지만 대화를 많이 나누지는 않았다. 그 넓은 카페에 소음을 만들어 내는 것은 우리들뿐이었다. 소음의 소용돌이 속에서 이겨내 야할 소음이 없으니 편안하고 좋았다. 침묵으로 둘러 쌓인 공간에서 아늑한 밤의 커피 향은 더욱 진하게 코끝으로 스며 들어왔다. 갑자기 카톡이 울렸다.


"카톡!"


카톡 이름이 닉네임으로 설정되어 있어서 알림 화면만 보고는 누구인지 정확하게 파악이 가지 않았다. 알 것도 같은데 알쏭달쏭했다. 순간 동일한 성씨를 가진 두세 명이 떠올랐다. 카톡 알림을 클릭하고 대화창을 들어갔다. 수많은 사람들이 단체 톡으로 초대되어 있었고 메시지는 '부고장' 이미지 하나였다. 부고인 이름에는 떠올랐던 이름 중에 한 명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아마도, 가족분이 단체 톡을 보내신 듯했다. 

매우 오래전에 지인을 통해 행사장에서 인사를 나눈 정도의 분이어서 '아? 이 분이... 돌아가셨네.' 하고 넘어갈 수 있었지만 부고인 이름 옆에 '41세'라는 숫자가 멈칫하게 만들었다. 


'죽음은 늘 이렇게 가까이에 있구나.' 


어떤 이유에 서든 충분히 죽을 수 있는 나이이구나. 죽음이 옆에서 1초 1초를 지켜보고 있다면, 나는 죽음 앞에서 무엇을 할 것인가? 어떠한 것도 생각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말하고 행할 것이다. 생각하기를 그칠 것이다. 나를 둘러싼 거치장스러운 것들을 헐벗고 순수한 의식의 투명한 상태에서 내가 만들어 온 무늬들을 지워버리듯 나는 나에게 잉크를 쏟을 것이다. 뭉침 없는 상태에서 유유히 씻겨져 흘러내려가는 것들을 바라볼 것이다. 어떠한 것도 남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으로. 텅 빈 상태로 죽음의 곁에 갈 수 있도록 빌 것이다. 


불교에서는 깨닫는다는 것이 무언가를 더 얻으려는 것이 아니라 덜어내는 것이라고 한다. 무아의 경지에 이르는 것이다. 스티브 잡스는 아이폰을 창조할 때 '더 덜어낼 것이 없나요?' 더 덜어내세요.'라고 했다고 한다. 덜어 낸다는 것은 얻으려는 것보다 창조에 가까운 행위 인지도 모른다. 얻어진 것들은 프레임을 만든다. 프레임 안에서 사는 것은 삶에 가깝고 프레임을 벗는 것은 죽음에 가깝지 않을까? 죽어야 비로소 삶은 시작되는 것이 아닐까? 살아가면서도 여러 번의 의식적인 죽음이 필요한지도 모르겠다. 자아의 죽음은 기존의 관념과 한계를 벗게 하고 '나는 이래서 안 될 것이다.'라는 부정적인 생각의 습관이나 '나는 올래 이런 사람이야.'라는 아집으로부터 해방을 하는 길인지도... 



"자아는 때로 우리를 속여 변화를 두려워하게 만든다. 자아를 고집하다 보면, 우리는 자신의 틀 안에 갇혀 새로운 가능성을 보지 못한다. 변화는 우리의 성장을 위해 필요하며, 이를 받아들일 때 우리는 진정한 자신을 발견할 수 있다."

_랄프 왈도 에머슨 <자기 신뢰>_


#나는나인데 #IamasIam #LightyourLight #자아 #해방 #관념 #한계 #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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