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주말에도 집에 가만히 있지 못하는 유형의 사람이었다. 월요일이 되면 "주말에 뭐 했어?"라는 대화를 줄곧 나눈다. 사람들의 대답은 이러했다. 집에서 쉬었어요. 하루종일 누워있었어요. 넷플릭스 보고 먹고 자고 먹고 자고 한 것 같아요. 나는 "집에서 쉬었어요."라는 그들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집이라는 공간에서 쉰다는 느낌은 무엇일까? 이해할 수 없었다. 평일 동안 고되게 사람과 일에 치여 스트레스도 받고 했으니, 주말만큼은 에너지를 덜 쓰면서 집에서 축 늘어진 채 뒹굴거려도 괜찮을 텐데... 아무것도 안 하고 TV 라도 멍하니 보고 있다 보면 나 자신이 한심하게 느껴지고, 어딘지 모르게 이렇게 시간을 보낸다는 것에 죄책감 또는 불안감이 스몰스몰 내 안으로 들어와 '움직여야 한다! 생산적인 무엇인가를 해야 한다!'라는 강박을 느꼈다.
20대부터 30대까지 20년을 통 틀어서 주말에 '집에서 쉬었어요.'라고 할만한 날들은 손으로 셀 수 있을 정도였다. 주말이 되면 토요일, 일요일 매번 바깥으로 나갔다. 물론 늦잠은 잤다. 10시 정도에 일어나서 아점을 먹고 오후 12시경에는 집을 나왔다. 친구들과 약속이 있는 것도 아니었고, 딱히 갈 만한 목적지가 정해져 있지 않아도 그냥 나왔다. 20대에는 주로 광화문역에 있는 교보문고나 그 근처 카페를 들락날락 했다. 하루 종일 책 한 권을 들고 카페에 앉아서 고개를 책에 묻어 버린 채 카페 직원들이 종종 자리로 와서 테이블 정리를 하며 눈치를 주는데도 불구하고 그냥 6시간이고 어느 때는 문을 닫는 시간까지 커피 한잔과 책 한 권을 읽었다. 그래서, 나는 나중에 혼자 가는 카페를 만들어야겠다 다짐했다. 나 같은 사람이 눈치 보지 않고 편하게 왔다 가는 카페가 만들고 싶었다. 이를 두고 친구들은 "너는 장사를 하겠다는 거냐? 그렇게 해서 돈은 어떻게 벌려고?"라고 되물었다. 맞다. 장사를 하려면 요즘 흔히 말하는 혼공족들은 카페 입장에서 썩 좋은 손님은 아닌 것이다. 커피 한잔 시켜놓고 도서관처럼 이용하는 꼴이니 카페 사장님 입장에서는 불청객일 수밖에 없다. 나는 20대에 카페 사장님들의 불청객이었다. 그 당시에는 요즘처럼 혼공족이 많다거나, 혼자서 카페에 오는 경우도 그리 많지는 않았었기 때문에 나는 늘 튈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집에서 쉰다.'라는 선택지보다는 오히려 나에게는 '카페에서 쉰다.' 쪽이 좀 더 편한 선택지였나 보다. 카페에서 눈치 보면서 책을 읽는 것이 불편해질 때즈음에는 국립 도서관을 애용했다. 도서관은 어차피 책을 읽는 공간이 목적이니 눈치 볼 이유도 없었고 조용하니 책을 읽기에 최적화된 환경이었다. 읽고 싶은 책들을 책장에서 찾아가며, 다른 책들과의 우연한 만남을 가지는 것도 꽤나 즐거운 여정이고 말이다. 그렇게 나는 거의 20년을 주말을 집에서가 아니라 바깥에서 쉬었다.
그러던, 어느 날 이전과 별반 다르지 않은 주말이었는데 새벽 시간에 눈이 떠져서 반쯤 깨어 있는 의식 상태에서 다시 잠에 들려고 하던 참에 살금살금 엄마의 발자국 소리가 들리고 부엌에서 냉장고 여는 소리와 도마 위에 칼질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창 밖에는 완전한 어둠도 아니, 완전한 빛도 아닌, 아주 묘한 푸른빛이 감도는 어둠이 곧 아침이 올 것이라는 예고를 하고 있었다. 낯의 생경한 움직임들이 조금씩 꿈틀거리며 준비 운동을 하듯 푸른빛 사이로 나무 가지들의 움직임도 미세하게 느껴졌고, 밤을 잠을 잤는지 어쨌는지 모를 새들도 작은 소리로 짹짹거리기 시작했다. 고요한 정적 속에서 살아있음이 눈과 귀와 코로, 오감각을 통해서 체험되었다. 그 와중에 집이라는 텅 빈 공간을 가득 채우고 있는 부엌에서 들리는 엄마의 달그락달그락 소리를 들으니 그 소리가 참 감사하기도 하고 어렸을 때부터 귀에 익히 들어온 동요처럼 편안하고 따듯하게 느껴졌다. '집에서 쉰다.'라는 이런 것일까? 싶었다. 평소에는 듣고 보고 느끼지 못했던 집이라는 공간의 따스한 기운을 느끼며 창 밖에서 불어오는 바람에 흔들리는 베란다의 화분들의 작은 숨소리를 느끼고, 익숙한 소리들에 나의 감각을 깨우고 낯선 어떤 것들에 긴장하지 않은 채, 툭! 하니 나의 오감각을 맡겨 버린 채로 엄마의 달그락 거리는 부산함마저도 동요처럼 따스하게 와닿게 되는 것. 뒤늦게서야 나는 '집에서 쉰다.'라는 말이 내포하고 있는 의미들을 발견해 가고 있다. 엄마의 달그락 소리를 자장가 삼아 다시 깊은 잠에 빠져 들었다. 주말의 늦잠은 꿀맛이기에.
""얼마 지나지 않아, 진정한 가족의 화목과 편안함이 베넷 가의 거실에 가득 찼다. 집 안은 따뜻한 난로의 불빛과 어머니가 부엌에서 요리하는 달그락 소리로 가득 차 있었다. 아버지는 신문을 읽고, 여동생들은 자수를 놓고, 어머니는 저녁 식사를 준비하며 부엌에서 들려오는 소리는 집안의 평화를 한층 더해주었다. 엘리자베스는 이 모든 소리가 주는 익숙하고도 편안한 느낌을 마음껏 즐기며, 가족과 함께 있는 이 순간의 소중함을 깊이 느꼈다."
_제인 오스틴 <오만과 편견>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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