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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란 Apr 01. 2024

미처 몰랐는데, 봄이 오고 있었다

며칠 전부터 차 시동을 거면 알람이 떴다. 자동차 정기 검사를 할 시기라고 한다. 주황색 느낌표와 함께 뜬 경고창은 그 색상과 모양만으로 덜컥 겁을 주기는 하지만, 그리 겁나진 않는다. 다만 신경 쓰이는 건 지금 내 차가 너무 꼬질꼬질하다는 것. 겨우내 눈을 맞고, 날이 풀리면서는 흩뿌리는 비를 맞으면서 차는 안과 밖으로 지저분해졌다. 차를 타면 재채기가 나오는 건, 꽃가루도 미세먼지도 아닌 차 안에 쌓인 먼지 때문일 거다. 그래서 정기 검사 전에 세차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오랜만에 하는 세차니, 혹시 금방 비가 와서 더러워지면 억울하니, 일기예보를 꼼꼼히 봤다. 이번주 내가 움직일 동선을 생각하며 그 지역 일기예보와 예상 강수량도 꼼꼼히 찾아봤다. 그리고 오늘 세차를 맡겼다. 집 5분 거리에 인상 좋은 젊은 사장님이 운영하는 세차업체가 있다. 워낙 꼼꼼하고 가끔은 서비스로 이것저것 봐주시다 보니 커피 기프티콘도 선물드렸었다. 늘 이곳을 찾게 된다. 

"5개월 만에 오셨어요."

"아, 그래요? 제가 좀 바빴어요." 

5개월 만에 올 정도로 바빴던 건 아니다. 내 몸이 아니니, 찝찝하고 근질근질하고 뭐 그래서 목욕탕을 가게 되는 것도 아니었다. 차는 그냥 안전하게 잘 굴러가면 된다 생각하다 보니 청결이나 외관은 그리 신경 쓰지 않았다. 그래서 해야 할 일 순위에서 늘 뒤에 밀려났었다. 그래도 한 3개월 만인가 생각했는데, 5개월이라니. 한국은 차를 좀 애지중지하는 편이라, 이럴 때는 게으른 사람이나 무심한 사람이 되어버리는 것 같다. 작년 말 스페인에서 본 차들은 이보다 훨씬 지저분했었는데. 흙먼지에 뒤덮여있거나, 어딘가 찌그러지거나 긁혀있었었다. 

"가장 최근에 세차는 언제 하셨어요?"

"안 했어요."

놀라는 눈치다. 본인 가게에는 안 왔지만 다른 곳에서 세차는 했겠지 싶었을 텐데. 난 예상을 훌쩍 뛰어넘었다. 올 때마다, 차 좀 신경 쓰라고 사장님한테 한소리 아닌 한소리를 들었다. 그리고 이번에는 아예 포기했거나 아니면 너무 놀란 듯하다. 겨울이 지났으니 하부세차를 추가하기로 하고 근처 카페로 향했다.


카페에서 보려고 한 유튜브 라이브가 있었는데, 가방을 아무리 뒤져도 에어팟이 없다. 큰 화면에 제대로 집중하고 보려고 노트북에 충전기에 메모지와 필통까지 모두 다 챙겨 왔는데, 에어팟이 없다. 카페에서 소리를 켤 수도 없고. 나는 왜 이렇게 칠칠치 못할까 라며 달달한 딸기라테를 입에 물고 한참을 자책했다. 아깝게 시간을 버리게 되었다며 한숨을 푹푹 쉬다가 핸드폰으로 주변에 다이소가 어디에 있는지를 찾아보기도 했다. 그러다 통유리 너머 밖을 보니, 햇빛이 뜨겁다. 아직 패딩과 코트를 정리하지도 못했는데, 오늘 낮기온은 18도에 초여름 같다. 공기 중에서, 카페 앞을 지나는 사람들의 머리 위에서, 아스팔트 도로 위에서 햇빛이 나뒹군다. 카페에서 흘러나오는 약간 철 지난 인기 가요와 팝송을 들으며 창밖을 멍하니 보고 있으려니, 숨이 느껴졌다. 들이쉬고 내쉬는 숨이 조금씩 느려졌다. 햇빛에 하얗게 반사된 카페 입구 나무 데크를 보았다. 옅게 나뭇결이 보였다. 그게 아니라면 나무인지 모를 정도로 나무는 거울처럼 햇빛을 내뿜고 있었다. 한참을 그러다 눈이 시려 카페 내부로 고개를 돌리니, 나무가 뿜어낸 햇빛이 그림자가 되어 공중에 둥둥 떠다닌다. 햇빛은 나무에서 튀어나와 내 눈에 박혔다. 


유튜브를 보는 것을 포기하고 나도 모르는 새에 숨이 느려지자, 글이 쓰고 싶어졌다. 카페에는 내가 좋아하던 노래들이 나왔고, 딸기 라테는 적당히 달달하고 맛있었고, 창밖 햇빛은 여유로웠고, 방금 지나간 까만색 차 열린 창문으로 하얀 진돗개가 머리를 내밀고 이곳을 보고 있었다. 옆옆 테이블에 앉은 아기엄마들의 수다들은 즐거웠다. 첫째를 기다리며 둘째 아가를 품에 앉고 나누는 소담스러운 이야기는 느려진 내 숨처럼 편안했다. 키오스크의 벨소리와 스팀우유를 만드는 쉭쉭 거리는 소리가 경쾌하다. 테이크아웃 고객까지 사라지자 음악소리를 배경으로 지나가는 버스와 차소리만 간간이 들린다.


에어팟을 안 가져온 덕분에 겨울이 가고 봄이 오는 것을 보았다. 깨끗해질 내 차처럼 오랜만에 미용실에도 가봐야겠다. 덥수룩해진 머리를 깔끔히 정리하고 옷장의 겨울 코트와 니트들을 정리해 봐야겠다. 내가 좋아하는 계절이 돌아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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