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우리의 희망이야. 꼭 살아줘

화초에게 보내는 메시지

by 이민정

빛도 소리도 사라진 2079년의 지구


온난화는 가속화되었고, 지구는 파괴되기 시작했다. 현 인류 모두가 기후위기를 직감했으나 편리하고 익숙해진 삶을 바꾸지 않았다. 전기는 폭발적으로 그 사용량이 늘어나 원자력 에너지는 더 필요했고, 온실가스가 지구를 덮어갔다. 일회용품 쓰레기는 넘쳐났고, 산불은 지속적으로 발생해 지구의 숲을 잠식해 나갔다. 사막화는 가속화되고, 해수면 상승으로 사라져 버린 나라도 이미 많다. 그리고 화산활동이 수없이 반복되면서 분출된 화산재는 지구의 대기를 잿빛으로 만들었다. 햇빛은 가려지고 식물들은 자라지 못했다. 더 이상 작물의 재배도 쉽지 않았다. 옥수수와 밀, 벼와 같은 곡식들이 말라서 죽어갔다. 인간들은 먹을 것을 찾기가 쉽지 않았다. 마실 물을 구하는 것도 점점 힘들어졌다. 곳곳에서 전쟁이 일어났고 살아남기 위해 서로를 죽였다. 연일 뉴스에서는 인간의 죽음을 보도했다. 예견된 미래였다.


80억의 지구인들이 빠른 시간에 소멸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아직 생명은 꺼지지 않았다. 살아남은 소수의 사람들은 지하 벙커를 사수하며 그 안에서 생존을 이어갔다. 이곳은 지진대를 벗어난, 판의 경계에서 조금 빗겨있는 땅이다. 이곳을 만든 사람들은 오래전부터 아이디어를 모았다. 물을 만들어 낼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해야 했고, 태양이 지구를 비추었던 것처럼 빛이 이들을 비추도록 설계해야 했다. 지하벙커에 있는 그들은 인류의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애썼다. 일회용품을 사용하지 않았고, 최소한으로 먹고, 입고, 자제하는 삶을 살았다. 생존을 위한 자연스러운 시스템이었다.
여기에 모인 이들은 직업, 나이, 성별, 국적이 모두 다 다르다. 하지만 이들의 유일한 공통점은 식물을 사랑하는 사람들이라는 것이었다. 지구에서 살기가 점점 어려워지는 시기에도 끝까지 자신들과 함께한 화초나 작물들을 버리지 않았던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생존을 위한 도피에도 식물을 버리지 않은 이들이었다. 자신의 목숨만큼 소중히 아꼈던 것이다. 식물이 없이는 미래도 없다고 여긴 이들이다. 이곳에 모인 식물은 사람들만큼 다 달랐다. 밀, 옥수수 같은 작물도 있고, 레몬, 올리브, 사과나무 같은 과실나무도 있었다. 또 흑모단초 같은 난, 선인장, 몬스테라, 마리모, 스칸디아모스 등 정말 다양한 식물들이 이곳에 모였다. 하지만 아무리 아끼고 사랑해 주어도 환경이 달라진 탓인지, 몬스테라와 난 같은 화초들이 가장 먼저 시들해 갔다. 그다음은 작물, 그다음은 과실나무들이 차례로 죽어갔다.
인간들은 식물들이 죽어가는 걸 보면서 점점 더 살아갈 희망을 잃었다.
버티고 버텨내는 시간들이 지나갔다.
이제 남은 것은 마리모와 스칸디아모스 같은 이끼류의 식물들뿐이었다.


사람들은 이제 이들의 생존을 위해 모든 것을 걸었다. 그 사이 식물학자들은 이끼류의 식물이 식량이 되어줄 것이라는 사실을 발표했기고 남은 인간들은 이것마저 잃으면 안 되는 상황이 되어버렸다. 온도와 습도, 조도를 최적화했다. 그리고 벙커에서는 이즈음부터 특이한 의식 같은 것이 행해졌다. 바로 살아남은 사람들이 하루에 한 번씩, 한 명씩 모두 이 식물들을 보고 인사를 나누고 가는 일이었다.


각자의 언어로, 각자의 표현대로 마음을 전했다.
일본인인 요코 할머니는 스칸디아모스를 쓰다듬으며 말씀하신다.

君は生きなければならない。 君が僕たちの未来だよ。 必ず生きてくれ。

(너는 살아야 한단다. 네가 우리의 미래야. 꼭 살아줘.)
프랑스를 국적으로 하고 있는 프레데릭 아저씨는 이렇게 말해준다.

Plus tu regardes, plus tu es belle et attirante. Reste à nos côtés pendant longtemps.

(넌 보면 볼수록 예쁘고 매력적이야. 오랫동안 우리 곁에 있어 주렴.)
베트남이 국적인 미스 아잉은 다정한 인사말을 건넨다.

Xin chào? Hôm nay mình cũng đến để chào các bạn. Ngày mai chúng ta cũng hãy gặp nhau thật khỏe mạnh nhé.

(안녕? 오늘도 인사하러 왔어. 우리 내일도 건강하게 만나자.)
영어를 쓰는 메이 아줌마는 오래도록 바라보며 간절하게 말한다.

You are our hope. Please live.


마리모를 데리고 온 인간은 바로 8살 아이인 한국인 율이었다. 율은 자신이 키우던 식물이 끝까지 살아남아주어 자랑스럽고 뿌듯했다. 다른 식물들이 죽을 때마다 얼마나 마음을 졸였던가…
어린 율의 눈에 비쳤던 파괴되어 가는 지구의 모습은 매일매일이 참혹했었다. 이를 위로해 줬던 단 하나의 존재였기에 소중한 마리모를 데리고 이곳 지하벙커를 찾은 것이었다.
율은 매일 이렇게 말해주었다.

사랑하는 마리모야. 끝까지 내 곁에 있어줘. 너로 인해 내가 살아남은 것 같아. 너 없이는 나도 없어. 우리 오래오래 함께 하자!
생존한 인류가 정성으로 식물을 지킨 덕에 생명의 기운은 꺼지지 않았다.


지하 벙커에서 지상으로 나갈 수 있는 날을 기다려온 인간들은 수십 년이 흐르고 나서야 땅을 밟을 수 있었다. 그동안 율은 마리모와 다른 이끼식물들을 연구하고 기르며 어느새 이끼박사님이 되어 있었고, 인류의 식량문제를 해결하는 데 온 힘을 다했다. 벙커에서의 시간은 인간의 모든 것을 다 바꿔 놓았다. 먹고, 자고, 입고, 생각하고 행동하는 모든 것이 변화했다. 그렇게 인간은 다시 지구에서 새로운 시작을 하게 되었다.



#글쓰기훈련중

#화초가죽어가고있다

#화초에게살아가는이유를설명하라

#단편소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