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태지와 아이들과 H.O.T를 지나 VIXX까지,
마지막으로 좋아했던 보이그룹이 꽤 오래된 내가
요즘 새삼스럽게 빠져든 보이그룹이 있다.
바로 XLOV.
아이돌 그룹 중에서는 처음으로 젠더리스 컨셉을 전면에 내세운 팀이다.
아이돌에 관심을 가질 시기는 이미 한참 지났다고 생각해왔는데,
어느새 유튜브를 뒤져가며 XLOV 멤버들의 데뷔 시절까지 찾아보고 있는 내 모습을 보면
“내가 왜 이러지?” 싶다가도,
오랜만에 현실을 살짝 벗어나 주는 희열과 몰입감 덕에
일상에 새로운 활력이 생기는 소소한 덕질을 이어가고 있다.
마치 남극여우 같기도, 신화 속 존재 같기도 한 비현실적인 메이크업과 의상,
그리고 우아하게 뻗어 나가는 춤선까지—
모든 게 너무 예쁘고 아름답다.
XLOV의 프로듀서이자 리더인 우무티는
어릴 때부터 “남자애 같지 않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고 한다.
한국에서 외국인으로 10년간 연습생 생활을 하며
기존 보이그룹의 틀과 자신이 맞지 않는다는 고민도 컸다고 한다.
결국 그는 자신의 색을 그대로 투영한 그룹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으로
멤버들을 직접 영입하고, 그룹의 컨셉을 스스로 설계했다.
타국에서 10년을 견디며 한국어를 완벽하게 익힌 데다
영어까지 유창하게 구사하는 모습은
미국에 살고 있는 나로서는 더 크게 와닿는다.
“외국에서 오래 산다고 누구나 그 나라 말을 완벽히 하진 않는다”는 걸 알기에
그가 했을 노력과 연습량이 얼마나 엄청났을지,
나이를 떠나 자연스럽게 존경심이 든다.
그가 젠더리스 컨셉을 선택한 이유도 명확했다.
“남자라서 하지 못하는 춤과 음악을 마음껏 하고 싶어서.”
그 말은 XLOV의 춤선을 보면 그대로 이해된다.
발레리노나 현대무용수처럼 아름답고 우아하다.
남자 아티스트라도 여성적인 안무와 컨셉을
더 자연스럽고 세련되게 소화할 수 있다는 걸 보여준다.
젠더리스는 성적 지향성이 아니라 순수하게 예술적 지향을 담은 컨셉이지만,
독특한 만큼 조롱과 비하 댓글도 많다.
하지만 그들이 이런 반응을 예상하지 못했을 리 없다.
그럼에도,
그들은 자신들이 원하는 모습을 그대로 표현하기로 선택했다.
최초의 젠더리스 그룹이라는 대담한 타이틀로
우아함과 과감함을 함께 품고,
악플을 조용히 무시한 채
날개 펼친 백조들처럼 무대를 가볍게 날아다닌다.
우리는 누구나 호르몬의 영향으로 여성성과 남성성을 동시에 가지고 있지만
다른 성의 특징이라 단정 짓고 숨기려 할 때가 많다.
예를 들어 남자가 눈물이 많으면 안 된다거나,
여자가 격투기를 좋아하면 안 된다거나 하는 식으로.
그런데 XLOV를 보며,
남의 시선보다 자신들이 추구하는 예술을 우선하는
자기존중의 태도가 느껴졌다.
그리고 그 컨셉에 딱 맞는 실력을 보여주는 멤버들을 보며
오히려 어떤 파워풀한 남성적 컨셉보다 더 단단한 자신감과 결단력이 느껴진다.
말 그대로 신비로운 그룹이다.
앞으로 이들이 K-POP에 어떤 변화를 가져올지
문득 기대가 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