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 오클랜드 근교 여행
정신 차려보니 2월이 다 지나갔다.
개강을 앞두고 꾸역꾸역 보고서 작성을 끝냈고, 몇몇 가까운 사람들이랑 만나 근황을 물었다. 한국에서 보내고 온 한 달이 더욱 꿈처럼 느껴진다.
지난주에는 남편 쉬는 날에 맞춰 와이헤케 섬에 다녀왔다. 몇 해 전 사전답사로 뉴질랜드에 왔을 때 여행했던, 오클랜드에 있는 와인이 유명한 섬이다. 오클랜드 시내에서 페리를 타고 45분이면 도착한다. 꽤 큰 섬이라 걸어서 구경은 힘들고 투어버스를 타거나 시내버스를 타야 한다. 투어버스는 금액도 상당하니 시내버스를 타서 좀 더 걷고 그 비용으로 맛있는 와인을 한 병 사 마시기로 했다.
맑을 거라던 일기예보와는 달리 페리를 타러 가는 길에는 비가 잔뜩 쏟아졌는데, 다행히 섬으로 들어가는 동안 날씨가 개었다. 페리에는 한껏 차려입은 사람들과 관광객들 사이에서 일상의 편한 복장을 한 우리가 적당히 뒤섞였다.
와이헤케 섬에 도착하자마자 풍경과 와인맛이 좋다고 추천받은 와이너리에 가기로 했다. 시내버스를 타고 한참을 가서 40분을 걸어야 하는 곳이다.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경치에 반했는데 그걸 보기 위해 한참을 올라야 했다. 오전이라 그림자 아래 적당히 숨어서 도착한 와이너리. 테이스팅을 하려다 보니 허기가 올라와 레스토랑에 가기로 했다.
레스토랑에서는 테이스팅이 안된다니 직원의 추천을 받아 음식과 샤도네이를 주문했다. 열기를 식히고 보니 한눈에 들어오는 풍경, 고생한 게 싹 씻겨 내려갔다. 와이너리 몇 군데를 다니며 테이스팅을 할 계획은 뒤로한 채 여유를 즐기기로 마음을 바꿨다.
와이너리에서 다시 한참을 내려와 버스를 타고 해변가로 갔다. 돗자리를 깔고 여유를 부리려는 찰나에 내리는 빗방울. 아쉬운 대로 짐을 챙겨 오네로아 번화가로 갔다. 남편이 봐두었던 아이스크림 가게에서 젤라또 아이스크림을 먹고, 와인판매점에서 직원 추천을 받아 와인 한 병을 샀다. 다른 와이너리에 걸어갈 힘이 없어 집에 가서 씻고 편히 마시기로 했다.
페리터미널로 걸어가 한참을 기다려 페리를 타고 오클랜드 시내로 돌아왔다. 여행을 다닐 때면 늘 바쁘게 다니곤 했는데 가까운 섬이니 다음에 가면 되겠지 싶어 여유롭게 다녔다.
한국은 이제 봄이 온다는데 여기는 가을이 다가온다. 아침저녁으로는 서늘한 바람이 불고 해가 짧아지니 괜히 아쉽다. 겨울이 오면 또 한참을 축축하고 우중충할 텐데. 여름이 천천히 지나가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