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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직남 Dec 24. 2023

수면공작소

눈을 떴을 때, 이 악랄한 크리스마스가 저를 스쳐가게 해주세요  

 

수면공작소, 크리스마스 패키지

Sleep workshop, Christmas package


수면공작소

[Web발신]

잠을 만들어 드림(Dream), 수면공작소입니다.

OOO님, 12월 24일(일) 오후 10시 예약입니다.   


처음 이 문자가 도착했을 때, 여자는 아리송했다. 수면공작소? 처음 들어보는 상호명 같았다. 수면공작소라니... 수면을 제작한다는 건가. 그런데, 이 익숙한 기시감은 뭐지... 기억을 더듬고서야 그녀는 깨닫는다. 아, 맞다.  내가 예약해 놓았지. 


일 년 전, 이맘때 즘에.  


여자는 크리스마스가 싫었다. 어딜 가든 크리스마스 노래가 나오는 게 싫었고, 빨간 모자를 쓴 사람들이 싫었고, 예약이 가득 찬 숙실이 싫었고 무엇보다, 사람들이 의미를 부여하는 게 싫었다.  그녀가 수면공작소의 [크리스마스 패키지]를 예약한 것도 그랬다. 의미로 가득 찬 하루에서 자신은 소외되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녀가 외로워서 그런 걸까? 우리는 합리적 의심을 해 볼 수 있다. 하지만 그런 거 같지는 않다. 그녀에겐 만나는 남자가 있다. 그 남자와 한 달째 만나고 있고, 소중한 쉬는 날을 그에게 오픈하고, 그를 집으로 초대해 함께 시간을 보내고 잠도 잤다. 그럼에도 여자는 1년 전과 똑같은 감정을 느끼고 생각했던 것이다. 이거 좀, 과한데?라고. 


이 불운한 여자를 우리는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잠만, 그런데 우리에게 그녀를 '불운'하다고 말할 수 있는 자격이 있을까? 우리에게 그런 판단권이라는 게 존재하는 걸까. 우리는 판단을 보류해야 한다. 특히나, 자신이 이해할 수 없는 사람을 마주치게 된다면 더더욱.  

여자는 곧바로 남자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자의 이름이 남자의 아이폰 액정에 떠올랐을 때 남자의 심장은 쿵쾅거렸다. 곧 크리스마스고 그는 그녀와 함께 시간을 보내고 싶었다. 은연중에 비슷한 얘기를 꺼내보았지만 "12월에는 바빠. 상황 보고"라고 대답할 뿐이었다. 그는 수긍할 수밖에 없었다. 실제로 그녀에게는 꽤 많은 친구들이 존재했고 그를 위해서는 그 시간을 자잘하게 쪼개어야만 했다. 그리고, 남자는 그 쪼개진 파편이라도 손에 쥐어질 수 있다면 좋은 텐데. 하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렇다. 둘의 관계는 애매모호했고(남자가 그 단어를 고르기까지 적지 않은 시간이 필요했다. 사실, 깨진 유리가 가장 먼저 떠올랐다. 만약, 그가 조금만 더 다가갔다면, 그녀 입장에서 남자라는 날카로운 칼이기에 그만 찔려 와장창 깨져버리고 마는 것이다. 그게 남자가 한 달간 여자를 만나며 찾아낸 모종의 결론이었다. 그런 여자가 드디어 자신에게 마음을 여는 걸까? 남자는 기대할 수밖에 없었다. 오늘은 크리스마스이브니까.   



저기, 25일까지 연락이 안 될 거야.  


남자의 쿵쾅대던 심장은 순식간에 잠잠해졌다.  


왜? 


정적이 흘렀다. 왜? 자신이 무슨 권리로 왜?라고 물을 수 있단 말인가. 그는 정정해야 했다.  


아니, 무슨 일 있어?  


여자는 설명하기 귀찮았지만 애써,  


잠을 좀 자고 싶어서.  

잉? 크리스마스이브고, 다음날은 크리스마스잖아. 연휴기도 하고.  


그래서 그런 거야. 약속도 죄다 취소했고.  

그러지 말고 나랑 놀자. 내가 재밌게 해 줄게.  


아니. 여자가 단호히 거부했다. 여자는 볼 수 없겠지만 남자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주변은 순식간에 싸늘해졌다. 만약, 이 분위기의 온도를 잴 수 있다면 영화 5도쯤 되지 않았을까.   


갔다 와서 보자. 

갔다 와서 언제? 


여자는 슬슬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상황보고.  


그럼 나는 어떡해? 


이제 여자는 완전히 짜증이 나버렸다.   


왜 그걸 나한테 묻지? 

우리 만나는 사이 아니었어? 


만나는 사이지, 의미를 부여하는 사이는 아니야.  


남자도 짜증이 나는 건 마찬가지였다. 지금까지 자신의 감정을 세차게 뒤흔들어 놓고는 '난 그런 적 없어. 네가 착각한 거야.'라고 친절히 알려주는 격이었다.  


너, 나 가지고 논 거야? 


역시, 남자들이란... 잠을 자고, 같이 시간을 보내기만 하면 자신을 소유했다고 착각하는 동물. 목구멍까지 차오른 그 대사를 겨우 집어넣고는, 


아니, 그건 확실히 말할 수 있어. 너랑 노는 게 좋았고 진심이었어. 그리고 누굴 가지고 놀 정도로 나는 여유롭지 않아.  


그럼, 왜? 이제 만나지 말자는 거야? 

좀 들어라! 26일까지 연락이 안 된다고 했지 누가 계속 연락이 안 된다고 했냐? 


여자는 화가 났다. 방금 그가 한 말대로 이제 그를 만나지 않을 거 같았다. 지루해져 버릴 거 같아서.  


끊는다.  

잠깐.  


남자가 다급하게 말했다.  


이거 하나만 물을게. 그럼, 내가 다른 여자랑 놀거나 해도 상관없다는 거야? 

하...  여자의 한숨소리가 두툼한 광케이블을 타고 액정밖으로 솟아 나왔다.   


응. 너 하고 싶은 대로 해. 


둘의 관계는 그렇게 끝이 나고 말았다. 관계란 한 순간이다. 그 시작에 비해 무의미할 정도로 뜨거워. 끊겨버리고 만다. 둘이 함께 보낸 시간, 함께 먹은 음식, 마주친 입술, 껴안은 몸, 함께한 잠자리, 오갔던 수많은 목소리와 카톡. 그런 것들이 전혀 의미 없게 돼버린 것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건 잔인하고 폭력적이다.  그래서 사랑은 잔인하다.  


전화를 끊은 여자는 아무렇지 않은 듯 토트백을 꺼내 칫솔, 치약, 치실, 치간칫솔을 집어넣었다. 가방 지퍼를 잠그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고작 하루고 그곳에 모든 게 준비되어 있다. 최대한 몸을 가볍게 하고 가면 되는 것이다.  


복실, 언니 내일 어디 좀 갔다 올게. 없어도 잘 지낼 수 있지? 


지금, 여자가 집에서 키우고 있는 복실이라는 강아지한테 하는 행동은 확실히 눈에 보이는 사랑이다. 이유는 명확하다. 이 강아지는 그녀를 사랑하지 않기 때문이다. 사랑이라는 개념자체가 성립하지 않는다. 모성애라면 몰라도. 하지만 그녀는 절대 알 수 없다. 개는 말을 할 수 없기 때문에. 덕분에 이 완벽한 사랑은 남을 수 있었다. 


영원히.  


그녀의 말에 하얀 강아지는 익숙한 듯 얌전히 있었다. 그녀가 노견을 키우는 이유다. 큰 걱정을 할 필요가 없다. 이 강아지도 적지 않은 시간을 이 세계에서 보냈다는 건 좋든 싫든 어느 정도 손해를 봐야 한다는 걸 아는 것이다. 여자가 복실이에게 목줄을 채우고는 밖으로 나섰다. 본격적으로 매서워진 12월의 추위에 여자는 코트를 힘껏 여며야 했다.   



초인종을 누르자, 개 짖는 소리가 두툼한 철문 너머로 울러 퍼졌다. 딸깍. 문이 열리고 여자의 친구가 익숙한 듯 그녀를 맞아주었다. 안에는 몰티즈 한 마리가 연신 꼬리를 흔들며 그녀를, 정확히 말하면 복실이를 반겼다. 반면, 복실이는 귀찮은 듯 보였다. 강아지도 주인을 닮는 것이다. 친구는 따뜻한 커피를 건네주었다.  


또 거기 가냐? 


여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 만나고 있다는 남자에는? 


여자가 이번에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너도 참, 피곤하게 산다.  

더 피곤해질까 봐 멈춘 거야.  


친구는 아무렇지 않은 듯 커피를 홀짝였다.  


그건 네 사정이니까 됐고. 근데, 왜 크리스마스가 싫은 거야?  


그럴 만도 한 게 친구는 크리스마스에 진심이었다. 거금을 들여 구매한 크리스마스트리와 한 개당 강아지 간식 한 봉지는 구매할 수 있는 장식품으로 나무를 수놓았다. 남자친구와 보낼 특별한 크리스마스를 위해 새빨간 란제리를 구매하기도 했다.  


그냥 싫어.  

우리, 지저스가 태어난 날인데 너무한 거 아니야? 

그런 성스러운 날에 살가죽이 훤히 보이는 옷을 준비하냐? 

에이, 지저스도 좋아하실 거라고! 


여자는 어이가 없어 웃을 수밖에 없었다.  


넌, 너무 무거워.  

몰라. 가성비를 따지기엔 내 인생이 너무 복잡해.  

그래서 내가 너 좋아하잖아. 무거워서. 

나도 너 가벼워서 좋아하는 거야. 

사랑해.

나도, 자기야. 


둘은 키득거렸다. 여자가 시계를 확인했다. 이제 슬슬 이동해야 한다.   


복실! 언니 간다.  


복실이는 마중도 나오지 않은 채 그 자리에서 가볍게 꼬리만 흔들어 보였다.  


어떻게 개나 주인이나 똑같지? 

진짜 미안한데, 네가 할 말은 아니야  


옆에는 거의 나노 단위로 꼬리를 흔들고 있는 몰티즈 한 마리가 귀여운 고집을 부리며 복실이 옆을 20분째 맴돌고 있었다.  


간다.

그래, 갔다 와서 이슬이랑 한 잔 하자.

이슬이 좋지. 

이번에는 이슬이 몇 병 준비할까?

한 짝?  

오케이. 


밖으로 나오자 하얀 눈이 내리고 있었다. 결정체가 그녀의 손에 올라탔지만 순식간에 사라졌다. 그녀가 작게 한숨을 내쉬고는 차에 시동을 걸고 발송된 주소를 네비에 입력하고 액셀을 밟았다.   



어서 오세요, 수면공작소입니다.  


안내데스크에 있던 안내원이 친절히 그녀를 반겨주었다.  


소지품 모두 이쪽에 맡겨주세요. 


그녀가 차키, 휴대폰, 지갑을 꺼내 직원에게 건넸다. 그러자 직원은 번호 19가 적힌 금고에 해당 물품을 모두 집어넣고는 딸깍. 하고 열쇠로 잠그고는 키를 그녀에게 건네주었다. 그리고는,  


19호실로 가면 됩니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복도를 따라 끝에 있는 19호실을 향했다. 양 옆에는 다른 호실들이 다닥다닥 일정한 간격을 두고 붙어있었다. 이곳도 만실이다. 지금, 그녀가 느끼는 감정은 자신만 아웃사이더가 아니라는 사실에 대한 안도감일까?  


그녀가 문 앞에 도착해 키를 열고 안으로 들어가자 은은한 우드 향이 사방에 퍼졌다. 방을 쭈욱 둘러본다. 전부 최고급이다. 하물며 비누까지.  목욕을 하고 옷장에 가지런히 걸려있는 가운을 맨몸에 걸치고는 테라스로 향했다. 창밖에는 겨울 바다가 적막하게 놓여있었다. 푸른 바다는 밤이 되면 검은 바다로 변모한다. 파도소리는 더욱 웅장해지고 무엇이든 삼켜도 이상하지 않다. 그녀는 늘 검은 바다가 좋았다.  


띠링띠링. 전화가 울린다. 전화벨소리까지 최고급인 거 같다. 귀에 거슬리지 않는 음악과 데시벨이다. 전화를 받자,   


안녕하세요, OOO님. 곧, 11시입니다. 취침을 준비해 주세요.  


직원의 권고에 따라 그녀가 침대로 이동해 눕는다. 정말 폭신한 침대다. 이것 역시 최고급 침대다. 가지런히 몸을 뉘이고 요가 수련이 끝나고 마지막에 찾아오는 단비 같은 사바아사나 자세를 취한다. 손등은 아래로 발은 어깨너비로. 모든 준비를 마치자 살며시 눈을 감는다.  


곧, 출처모를 연기가 방 안을 가득 채우기 시작한다. 그녀의 코가 실룩인다. 향긋한 아로마 향이다. 근육이 이완되고 그녀의 동공은 서서히 풀려버린다. 적막하지만 초연한 잠의 심연으로 그녀가 입장한다.  


이제 이 최고급 방에는 바다가 만들어낸 거친 바닷소리와 이와는 너무나도 대조대는 고른 숨소리만이 덩그러니 남아있다. 우리는 그때서야 긴장이 풀린 삶의 무게를 벗어던진 한 평범한 여성을 마주하게 된다. 그녀는 너무 아름답다. 그대로 유리 상자를 덮고 박물관에 옮겨 전시하고 싶을 정도로. 하지만 우리는 그 아름다움에 도취돼 중요한 한 가지를 놓치고 만다.  


그 아름다운 눈 아래로 눈물이 흘러내렸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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