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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래힘 Aug 27. 2023

"엄마 아빠 결혼기념일은 언제야?

우리에겐 처음부터 없었던 결혼기념일

"엄마 아빠 결혼기념일은 언제야?"


열 살이 된 큰아이가 어느 날 물었다.

엄마 아빠의 결혼기념일 같은 건 듣도 보도 못했던 아이라 몰랐던 '신종기념일'을 어디서 듣고 알게 된 모양이었다.


"어?"


"엄마 아빠는 결혼기념일 없어?"


"결혼기념일?"


누가 봐도 알아들었는데 되묻는 사이 몇 초를 벌어보겠다고 못 알아듣는 척 다시 묻기를 반복했다.

재빠르게 머리를 굴려보지만 딱히 생각나는 답은 없었다.


우리는 결혼을 약속하고 준비부터 삐걱대는 불길한 징조에 기약도 없이 결혼을 미루고 있던 중 내 뱃속에 첫 아이가 생겼다. 임신을 알게 된 딱 5주부터 눈물 없이 들을 수없는 지독하고 혹독한 입덧이 시작되었고, 아이가 똑바로 서서 돌지 않는 바람에 역아로 제왕절개 수술을 하게 되었다. 수술도중 마취가 덜 돼 배를 뒤틀고 쥐어짜고 흔드는 고통에 "아직 멀었나요? 언제 끝나요? 너무 아파요!"라고 소리쳤고, 아가가 나오는 걸 보고 수면 마취 후 후처치를 하고 나서 잠에서 깨어났던 때 반수면 상태로 살려달라고 발버둥 치던 그 당시 그 고통도 잊을 수 없음에도 임신 7개월까지 사라지지 않는 입덧은 세상

그 어떤 것도 비할 것이 못됐다.


티브이 소리도 못 들을 만큼 이 세상 모든 소리, 냄새, 움직임에도 속이 울렁거리고 머리가 흔들렸다. 물 한 모금도 넘기지 못하고 피를 토하며 응급실에 실려 다니던 때에도 나는 그에게 따뜻한 말 한마디 들어본 적이 없다.


사업이 바빠 새벽에나 들어오는 당신을 해가져도 불을 끄러 일어날 수도 없어 새벽까지 어둠 속에서 울면서 기다렸다. 온종일 화장실 앞에 누어서도 손에는 비닐봉지를 끌어안고 있었다. 당신은 새 생명을 품고 있던 나의 그런 모습이 귀한 줄 몰랐고 내 울음소리에 미친 사람처럼 날뛰기 시작했다.


"재수 없게 울어퍼대지 마라! 네가 애기냐! 말 못 하는 애기들이나 우는 거다!"


아이를 낳아 길러보니 당신은 어른울음이 아닌 아이울음소리도 듣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지금이야 내가 당신을 향한 눈물도 말라버렸지만 정말 함께 살게 된 후 5년은 울다가 내 눈물에 내가 잠겨 죽는구나 싶었다.


다른 여자를 만나는 것도 질리게 하는 내 탓이었고.

"내가 죽었으면 죽었지 너 같은 거랑 결혼은 안 한 "라는 말을 시도 때도 없이 했다. '애 낳고도 도망갈년'이라며 그렇게 출산까지 혼인신고를 미루고 해주지 않았다.


밥먹듯이 하는 외박도 여자가 오죽 못하면 남자가 밖으로 나도냐 라는 말을 들어가며 나는 점점 더 독해져 갔다. 그 정도로는 나르시시스트를 상대하기엔 택도 없었지만.


그렇게 오롯이 나 혼자 품고 아파 낳은 첫 아이에게 마음 같아선,

'결혼기념일이 있었어도 때려 엎고 싶은 날일 텐데

없어서 다행이지'라고 외치고 싶었다.


10년을 거슬러 올라가 첫 단추부터 잘못 끼워진 우리는,

나부터가 '너랑은 억만금을 줘도 식은 못 올리겠다' 마음먹은 때가 첫아이를 임신한 직후였으니 당신이 그토록 "내가 미쳤냐 너랑 결혼식을 올리게"라고 입이 닳도록 했던 그 말이 딱히 상처가 되지 않았다.

처음부터 끝을 예상하고 있었으니 뻔한 결과에 무모한 낭비는 하고 싶지 않았다. 그런 한결같은 마음으로 10년이 흘렀다.


그래서 한 번도 결혼식을 못해 한이 맺혔다던가 웨딩드레스 입어보는 게 소원이라던가 비련의 여주인공 같은 궁상맞은 생각은 안 해봤다. 단지 나도 이 사람이 아닌 좋은 사람을 만났더라면 남들처럼 남 들다 하는 정도는 해보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 정도. 딱 거기까지였다.


그렇게 난 '결혼식 따위 못한 게 아니라 안 한 거다!'라고 당당하고 싶은데,


그래도 너희들은 엄마가 결혼식도 올리지 못했다는 전혀 슬프지 않은 사실이 혹여나 남들과 다른 우리의 모양새를 불행하게 여기 않을까 엄마아빠의 사랑을 태초부터 의심하진 않을까 조바심에 일단은 둘러대야 했다. 


어려서는 몰랐을, 정상적인 가정상 또는 정상적인 부부상을  언젠가 궁금할 날이 오겠거니 했지만 구체적인 대답준비해  적은 없다.


 아이가 초1쯤 되었을 때 갑자기 "엄마아빠결혼식 사진은 없어?"라고 물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그때도 똑같이 당황했지만 그렇다고 깊게 생각하고 준비된 답을 내놓기엔 나는 그렇게 철저한 사람은 못됐다.


한 때는 엄마도 행복한 신부였고 사랑받던 여자였다고 말해주고 싶었다. 하지만 선의의 거짓말도 정도껏이지라는 결론에, 결혼식은 엄청나게 많은 준비를 해야 하는데 그 당시에 아빠도, 엄마도 너무 바빴다고. 그래서 생략하기로 결정했다고 말했다.


"결혼식은 안 해도 되는 거야? 안 하는 사람도 있어?"


"응. 대부분 하는 거지만 필수는 아니야. 하고 싶은 사람만 하는 거지."

라며 애써 덤덤하게 마무리 지었다. 


내 부모의 결혼식은 우리가 가 볼 일이 없다는 건 참 다행스러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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