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아빠 결혼기념일은 언제야?
우리에겐 처음부터 없었던 결혼기념일
"엄마 아빠 결혼기념일은 언제야?"
열 살이 된 큰아이가 어느 날 물었다.
엄마 아빠의 결혼기념일 같은 건 듣도 보도 못했던 아이라 몰랐던 '신종기념일'을 어디서 듣고 알게 된 모양이었다.
"어?"
"엄마 아빠는 결혼기념일 없어?"
"결혼기념일?"
누가 봐도 알아들었는데 되묻는 사이 몇 초를 벌어보겠다고 못 알아듣는 척 다시 묻기를 반복했다.
재빠르게 머리를 굴려보지만 딱히 생각나는 답은 없었다.
우리는 결혼을 약속하고 준비부터 삐걱대는 불길한 징조에 기약도 없이 결혼을 미루고 있던 중 내 뱃속에 첫 아이가 생겼다. 임신을 알게 된 딱 5주부터 눈물 없이 들을 수없는 지독하고 혹독한 입덧이 시작되었고, 아이가 똑바로 서서 돌지 않는 바람에 역아로 제왕절개 수술을 하게 되었다. 수술도중 마취가 덜 돼 배를 뒤틀고 쥐어짜고 흔드는 고통에 "아직 멀었나요? 언제 끝나요? 너무 아파요!"라고 소리쳤고, 아가가 나오는 걸 보고 수면 마취 후 후처치를 하고 나서 잠에서 깨어났던 때 반수면 상태로 살려달라고 발버둥 치던 그 당시 그 고통도 잊을 수 없음에도 임신 7개월까지 사라지지 않는 입덧은 세상
그 어떤 것도 비할 것이 못됐다.
티브이 소리도 못 들을 만큼 이 세상 모든 소리, 냄새, 움직임에도 속이 울렁거리고 머리가 흔들렸다. 물 한 모금도 넘기지 못하고 피를 토하며 응급실에 실려 다니던 때에도 나는 그에게 따뜻한 말 한마디 들어본 적이 없다.
사업이 바빠 새벽에나 들어오는 당신을 해가져도 불을 끄러 일어날 수도 없어 새벽까지 어둠 속에서 울면서 기다렸다. 온종일 화장실 앞에 누어서도 손에는 비닐봉지를 끌어안고 있었다. 당신은 새 생명을 품고 있던 나의 그런 모습이 귀한 줄 몰랐고 내 울음소리에 미친 사람처럼 날뛰기 시작했다.
"재수 없게 울어퍼대지 마라! 네가 애기냐! 말 못 하는 애기들이나 우는 거다!"
아이를 낳아 길러보니 당신은 어른울음이 아닌 아이울음소리도 듣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지금이야 내가 당신을 향한 눈물도 말라버렸지만 정말 함께 살게 된 후 5년은 울다가 내 눈물에 내가 잠겨 죽는구나 싶었다.
다른 여자를 만나는 것도 질리게 하는 내 탓이었고.
"내가 죽었으면 죽었지 너 같은 거랑 결혼은 안 한다 "라는 말을 시도 때도 없이 했다. '애 낳고도 도망갈년'이라며 그렇게 출산까지 혼인신고를 미루고 해주지 않았다.
밥먹듯이 하는 외박도 여자가 오죽 못하면 남자가 밖으로 나도냐 라는 말을 들어가며 나는 점점 더 독해져 갔다. 그 정도로는 나르시시스트를 상대하기엔 택도 없었지만.
그렇게 오롯이 나 혼자 품고 아파 낳은 첫 아이에게 마음 같아선,
'결혼기념일이 있었어도 때려 엎고 싶은 날일 텐데
없어서 다행이지'라고 외치고 싶었다.
10년을 거슬러 올라가 첫 단추부터 잘못 끼워진 우리는,
나부터가 '너랑은 억만금을 줘도 식은 못 올리겠다' 마음먹은 때가 첫아이를 임신한 직후였으니 당신이 그토록 "내가 미쳤냐 너랑 결혼식을 올리게"라고 입이 닳도록 했던 그 말이 딱히 상처가 되지 않았다.
처음부터 끝을 예상하고 있었으니 뻔한 결과에 무모한 낭비는 하고 싶지 않았다. 그런 한결같은 마음으로 10년이 흘렀다.
그래서 한 번도 결혼식을 못해 한이 맺혔다던가 웨딩드레스 입어보는 게 소원이라던가 비련의 여주인공 같은 궁상맞은 생각은 안 해봤다. 단지 나도 이 사람이 아닌 좋은 사람을 만났더라면 남들처럼 남 들다 하는 정도는 해보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 정도. 딱 거기까지였다.
그렇게 난 '결혼식 따위 못한 게 아니라 안 한 거다!'라고 당당하고 싶은데,
그래도 너희들은 엄마가 결혼식도 올리지 못했다는 전혀 슬프지 않은 이 사실이 혹여나 남들과 다른 우리의 모양새를 불행하게 여기진 않을까 엄마아빠의 사랑을 태초부터 의심하진 않을까 조바심에 일단은 둘러대야 했다.
어려서는 몰랐을, 정상적인 가정상 또는 정상적인 부부상을 그 언젠가 궁금할 날이 오겠거니 했지만 구체적인 대답을 준비해 본 적은 없다.
큰 아이가 초1쯤 되었을 때 갑자기 "엄마아빠결혼식 사진은 없어?"라고 물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그때도 똑같이 당황했지만 그렇다고 깊게 생각하고 준비된 답을 내놓기엔 나는 그렇게 철저한 사람은 못됐다.
한 때는 엄마도 행복한 신부였고 사랑받던 여자였다고 말해주고 싶었다. 하지만 선의의 거짓말도 정도껏이지라는 결론에, 결혼식은 엄청나게 많은 준비를 해야 하는데 그 당시에 아빠도, 엄마도 너무 바빴다고. 그래서 생략하기로 결정했다고 말했다.
"결혼식은 안 해도 되는 거야? 안 하는 사람도 있어?"
"응. 대부분 하는 거지만 필수는 아니야. 하고 싶은 사람만 하는 거지."
라며 애써 덤덤하게 마무리 지었다.
내 부모의 결혼식은 우리가 가 볼 일이 없다는 건 참 다행스러운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