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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래힘 Feb 24. 2024

몇 백은 발로 번다는 그의 양육비는 60만 원

이혼소송 이야기 1

늘 그 사람은 어디로 튈지 몰랐고,

난 늘 어디로 튈지 모르는 그 사람을 피하려고

전전긍긍 애 태우며 살았다.

  

그 끝은 크게 튀어버린 무언가에 나는 얻어맞았고 팡 터져버린 뒤 덩그러니 예비 싱글맘이 되어있다.

 

불안하리 만큼 안정적이고 평화로운 가출생활에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행복했다.

가사 조사가 시작되기 전까지는.

아이들 면접 교섭이 시작되기 전까지는.


집을 나와 그의 빈자리도 못 느끼고

전혀 위태하지도 않은 조용한 일상에 남편존재 자체를 잊고 지냈다.


드디어 첫 기일.

큰돈 들여 변호사를 사고서 처음으로 무언가 진전을 기대해 보는 날. 5분이면 끝난 다는 그날엔 나도 그도 참석하지 않았다. 불안하기도 했고 기대가 되기도 하고 그랬다. 변호사에게 가사 조사 명령이 떨어졌다는 연락을 받았고 다행히 판사가 나의 증거들을 꼼꼼히 보셨는지 우리 측에 우호적이라고 했다.

그나저나 가사조사가 시작되면 적어도 몇 개월은 뚝딱 지나갈 거라는 말에 또 한 번 앞이 흐려졌지만 뭐라도 한걸음 나아간 것에 의의를 두기로 했다.


그리고 며칠 후 임시양육자는 당연 나로 지정 되었고 임시양육비도 함께 결정이 났다. 욕을 사발로 퍼부어도 모자랄 아침, 기가 막힌 결정문을 보게 된 건 오랜 경력단절 끝에 드디어 세상밖으로 나갈 채비를 마치고 첫 면접에 가는 길이었다.


면접이고 뭐고 십여 년 만의 면접이었지만 긴장을 한다던가 면접에 대비하는 초심조차 들고 가지 못했다. 그저 임시결정된 양육비에 대한 분노만 들끓을 뿐. 30분가량 운전하고 가는 내내 내가 면접을 가는 사람이란 걸 망각했다.


1인당 임시 양육비 60만 원. 몇백은 발로 번다고 자부하던 그에게 60은 콧방귀도 안 뀌는 우스운 숫자였다. 부당하다 생각되면 항고하라고 쓰여있길래 알아봤지만 임시양육비치곤 다들 많이 나온 거라 말했다. 사업 구조상 고물상은 누가 봐도 뒷주머니 차고 돈 없다고 말해도 숨겨둔 돈 몇억 쯤 은 당연히 있을 거란 건 공공연히 아는 진실인 듯했다. 사업장에서 뵌 적도 없는 시아버지와 공동명의를 해두고 아버지 사업장이라며 본인은 월급 2~3백을 받느라 우리가 청구한 양육비는 줄 수 없다고 주장한 신랑에게 판사는 "주변에 보니까 고물상 돈 많이 벌던데"라고 하셨단다. 그래서 그나마 임시치고는 많이 때린 걸 거라고.


그렇게 치고라도 높이 때린 게 60만 원이라니 싱글맘의 현실이 암담해졌다.  받아들이는데 시간이 걸렸지만 최종판결이 날 때 더 높은 양육비가 지정이 되면 지난 양육비는 소급해서 받을 수 있다고 하여 일단 잠자코 있기로 했다. 그래도 틈틈이 부아가 치미는 건 어쩔 수 없다. 그날 면접을 보고 온 직장에 다행히 입사하게 되었고 그 후 3개월째, 월급으로 그동안 구멍 난 돈을 메꿀 동안에는 종종 아쉬운 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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