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눈앞에 나타난 것
노모랑 같이 살고 있다.
올해 84세이니 '노모'라고 표현을 하면 엄마가 싫어하겠지만 어쩔 수 없이 그렇게 표현해도 되는 나이에 들어갔다.
엄마는 아직까지 결혼을 못한 나를 걱정하겠지만, 나는 엄마가 걱정돼서 애 저녁에 따로 살기를 포기한 상태다.
엄마는 이제 혼자서 지내고 싶겠지만, 나는 나이 든 엄마가 혼자 있으면 걱정이 돼서 나도 혼자 지내고 싶지만 그렇게 하질 못한다.
같은 집에서 산다고 해서 딱히 내가 뭘 엄청나게 하고 그런 건 아닌데 그래도 최소한 하루에 한 번은 볼 수 있으니 어디가 불편한지, 필요한 게 뭔지 알 수 있다.
엄마는 평생 나한테 어디가 아프다, 뭐가 필요하다고 말한 적이 없다. 그래서 이건 마치 퀴즈와도 같아서 매일매일 퀴즈를 풀어야 한다.
언젠가는 퀴즈를 풀지 않아도 바로 정답을 알 수 있는 날이 올 것 같은데, 난 계속해서 퀴즈를 풀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사실 혼자 지냈다면 퀴즈도 안 풀고 벌써 결혼도 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아마도 그냥 여러 가지가 나의 욕심인 것 같다.
나는 엄마를 모시고 산다고 생각하고 있지만, 엄마는 그 나이가 되도록 아직까지 아들을 키우고 있는 중이다.
필요하면서도 필요치 않은 그런 존재인 것 같단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이런 인생을 일부러 계획을 한 건 아니다.
어쩌다 보니 이렇게 된 거고 어떤 상태던 최선을 다해 살아낼 뿐이다.
저녁에 출출해서 뭔가를 먹어야 할 것 같은데 뭘 먹을까 고민하다가 며칠 전에 먹었던 투움바 파스타 소스가 냉장고 속에 한 2인분 정도 남아 있다는 생각이 났다.
이틀 전에 링귀네로 한번 해 먹었는데 엄마가 맛있다고 얘길 해서 그걸 다시 해볼까 싶었다.
그런데 파스타면이 없어서 어떻게 하지 생각하던 중에 오래전에 사놓은 푸실리가 생각이 났다.
그래서 찾아보니 새것 그대로 있는 걸 발견했다.
다행이었다. 파스타 소스가 남아 있으면 금방 곰팡이 같은 게 생겨서 신경 쓰였는데 파스타면이 없어서 하루만 더 지나면 리소토나 한번 해봐야겠다 싶었는데 말이다.
그렇게 푸실리를 2인분 덜어서 물을 끓이고 푹푹 삶아내고 있었다.
푸실리 포장이 부실해 보여서 클립 같은 걸로 입구를 봉해놓으려고 했는데 너무 비닐이 얇아 보여 그냥 통에 담아 보관해야겠다 싶어 얇은 비닐봉지를 벗겨내고 통에 담았다.
통에 담아 놓은 푸실리는 앞으로 얼마 지나지 않아 또 해 먹을 것 같은 느낌도 들고 뭔가 든든한 기분이 들게 하면서 싱크대 위에 당당하게 놓였다.
푸실리가 잘 삶아지고 있는 상태를 확인하고 남은 비닐을 재활용 통에 넣으려고 발코니로 갔다. 완연한 저녁이 아니라 해는 떨어지긴 했지만 불을 켜지 않아도 보이긴 해서 평소 같았다면 그냥 가서 넣었겠지만 나도 왜 그랬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발코니 불을 켜고 넣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불을 켰다.
세상에 어떤 게 가장 싫으냐고 나에게 물어보면 몇 가지는 생각도 하지 않고 바로 말할 수 있는데 바로 말할 수 있는 것 중에서 하나가 불을 켜는 순간 내 눈앞에 펼쳐졌다. 그것도 무려 슬로비디오처럼 펼쳐졌지만 슬로비디오는 아니었고 슬로로 움직이고 있었다.
그 친구는 눈이 안 좋은 건지 불을 켜도 인지를 못하고 계속 천천히 움직이고 있었다. 난 그걸 보고 한 십 초 정도 얼어붙어 있었다. 그냥 너무 싫어서였다. 그렇게 잠깐 어떻게 할까 생각하다가 기절만 시켜야겠다고 생각했는데 발코니 바로 앞에 골프 드라이버랑 우드를 왜 거기다 내가 세워놨는지는 모르겠지만 그게 있어서 그걸 들고 제지하려 했지만 그때 알아챈 그놈은 동작이 그전보다는 천 배쯤 빨라진 형태로 순식간에 사라져 버렸다.
최근에 발코니 정리를 한 게 얼마나 다행이던지 아무리 빨리 움직여도 어디에 숨었는지 금방 알 수 있었다. 이 녀석을 어떻게 할까 또 잠깐 생각하게 됐고, 눈에 보이는 건 슬리퍼였다. 골프 드라이버는 둥그런 형태라 그 친구를 누르려면 그 면적이 한정적이지만 슬리퍼는 바닥이 다 평평하니 아주 제격이었다.
내가 마시고 버린 두유 팩들 밑으로 그 녀석이 들어간 걸 확인했고 난 오른손에 슬리퍼를 들고 두유 팩을 들어 올리면 그 녀석이 움직일 동선을 확인한 후 하나, 둘, 셋을 세고 난 후 두유 팩 뭉치를 들어 올렸다. 그 녀석은 내가 예상한 동선으로 갔고 난 오른손에 들고 있던 슬리퍼로 아주 세밀한 힘 조절을 통한 내리침, 어깨부터 내려오는 힘이 일정하지 않은 바닥에 거의 닿았을 때는 그 힘이 정말 풀어져 지그시 누를 수 있는 정도의 힘을 계산해서 그 녀석을 치듯 눌렀다. 딱 움직이지 못할 정도로 말이다. 그렇게 해서 잡을 수 있었다. 당연히 살아 있는 상태라서 슬리퍼의 무게로 움직이지만 못할 정도로 딱 만들어 놨다.
슬리퍼 밑에 힘을 잃고 깔려있는 그 녀석을 뒤로하고 다시 주방으로 왔다. 키친타월을 손에 감각이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뜯어서 다시 그 녀석이 있는 곳으로 갔다. 슬리퍼는 아주 약간 경사가 진 상태로 있는 걸 봐서는 아직까지 잘 깔려있었다.
그 녀석의 크기가 너무 커서 키친타월 뭉치로 잡아 올리긴 해야 할 텐데 엄두가 나질 않았다. 그냥 몸서리쳐질 정도로 싫은 기분이 온몸으로 전달되는 것 같았다. 이젠 어떻게 해야 하나.
바퀴벌레가 그토록 싫어진 건 누나 때문이다. 내가 바퀴벌레를 잡지 못할 정도로 특이하거나 그런 사람은 아니다. 동물들도 곤충들도 전혀 징그러워하는 종류 없이 다 좋아한다. 물론 바퀴벌레, 모기, 파리, 지네는 여전히 싫지만.
나중에 다시 얘기할 때가 있겠지만, 내가 사회초년생 때 집이 쫄딱 망했다. 어느 날 집에 쉬고 있었는데 누가 문을 두드리더니 법원에서 왔다면서 온 집기에 빨간딱지를 붙였다. 그 사람들은 상당히 친절하게 TV는 볼 수 있게 옆에다 붙여주는 아량을 베풀었다. 인생을 살면서 내 의지가 아닌 겪지 않아도 될 일들 중에 한 사건이었다. 빨간딱지 붙이는 아저씨는 원래 이렇게 붙이고 나면 대부분이 일이 잘 해결되니 너무 걱정하지 말고 잘 있으라는 말을 하고 갔다. 그 말을 믿었던 건지 그냥 천진난만하게 시간을 보냈었다.
그 일이 있은 후 한참이 지났고 빨간딱지는 전혀 신경 쓰이지가 않는 상태가 되었다. 그래서 출근하려고 옷을 입고 있었는데 사람들이 들이닥쳤다.
엄마와 누나 그리고 나 이렇게 세 명이 있었는데 난 누나한테 걱정하지 말고 회사를 가라고 내가 오늘 회사를 쉬겠다고 얘기를 했다. 누나는 회사를 갔고 그 사람들은 하고자 했던 일들을 진행했는데 그게 완료된 시간은 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집안에 모든 집기들이 포대에 쌓여 밖으로 나갔다. 어떻게 하면 이렇게 빨리 되나, 저 사람들은 얼마나 많이 이런 일을 해서 그럴까.
기억하기 싫지만 수십 년이 지난 지금도 그날의 일이 생생하게 기억된다. 특히 그토록 강한 사람인 엄마의 눈동자가 잠깐 흔들리는 걸 그때 처음 봤었다. 그래도 무너지지 않는 모습도 동시에 보게 됐었다.
아무튼, 그날 당장 지하실 방을 얻어서 이사를 갔고 밖에 나와 있는 짐들은 동네사람들이 좋은 건 가지고 다 가지고 가버렸다. 내 오디오, 스피커 같은 건 순식간에 없어졌다. 어차피 이사가 야할 지하실 방에 들어가지도 못할 테니 아쉽지도 않았다. 그 순간 나한테 중요한 게 뭐가 있었을까.
회사를 못 간다고 전화하는 걸 깜빡해서 회사에 전화를 했었다. 집에 좀 사정이 생겨서 오늘 하루만 못 나간다고 하니 엄청나게 화를 내며 소리를 질렀다. 회사 들어간 지 한 달 정도 됐었을 때니 당시에는 오죽했을까 자세한 사정을 창피해서 얘긴 못하고 연신 죄송하다고만 했다.
지하실 방으로 이사를 했는데, 방은 두 개였고 화장실은 턱이 상당히 높았다. 영화 <기생충>에서 나오는 집보다 조금 덜 좋았다.
그때는 토요일도 회사를 나가야 되던 때라서 퇴근해서 집에 왔는데 누나가 낮잠을 자고 있었다. 뭐가 그리 피곤했는지 엎드려 자고 있었는데 TV가 있는 방에서 자고 있어 그 옆에 앉아 TV를 켰다. 그렇게 한참 TV를 보고 있었는데 누나는 흰색 티셔츠를 입고 자고 있었는데 등에 검은 손가락 만한 게 내 눈에 보였다. 큰 바퀴벌레가 누나 등을 이리저리 다니고 있었다. 그걸 본 순간 잡아야겠다는 생각보다 얼마나 화가 치밀어 오르던지 너무 속이 뒤집어질 것 같아서 구역질이 나오는 것 같았다.
정신 차리고 바퀴벌레를 잡아서 밖으로 던진 다음에 밖에서 죽였다. 그리고 그때 다짐을 했었다. 이런 곳에서 하루라도 빨리 벗어나야겠다고.
그 이후로 난 바퀴벌레를 보면 잡기 싫다 뭐 이런 게 아니라 그 시절 그날의 일들이 순식간에 내 안으로 들어와 사고를 마비시키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 바퀴벌레를 보면 절망감이 든다. 그래서 그랬다.
발코니 슬리퍼 밑에 깔려있는 바퀴벌레를 이제는 처리를 해야겠다 싶어서 다가갔는데 현관 비밀번호 누르는 소리가 들렸다. 마침 엄마가 온 것이었다.
얼마나 반가웠던지 뛸 듯이 기쁘다는 표현이 딱 이 상황이었다.
"엄마! 엄마! 엄마!"
"왜 그래 갑자기 무슨 일 있어?"
"나 바퀴벌레 좀 잡아줘!"
"어디 있는데?"
"내가 저기 발코니에 잡아 놨으니까 엄마가 처리 좀 해줘"
잔뜩 뜯어놓은 키친타월을 엄마한테 건네면서 잡아달라고 얘기했다.
"아니 무슨 키친타월을 이렇게나 많이 뜯었어 아깝게, 여기 휴지 조금 뜯어서 하면 될걸"
엄마는 키친타월은 놔두고 대신 휴지를 뜯었다.
"저 슬리퍼 들면 바퀴벌레 확 도망가고 그러는 거 아니야?"
"아니야, 내가 반쯤 기절시켜놔서 슬리퍼 치워도 그냥 가만히 있을 거야"
그렇게 엄마가 바퀴벌레를 처리했고 난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다 삶아진 푸실 리를 따로 놓고 올리브유를 팬에 둘러 소스를 볶고 있었는데 엄마가 다가왔다.
"엄마 죽으면 바퀴벌레 어떻게 잡을래?"
이런 얘기는 내가 아주 어렸을 때 엄마한테 몇 번 들은 것 같다. 그때 엄마는 나를 협박하기 위한 멘트였다. 그때는 엄마가 없으면 안 되는 존재여서 그런 협박이 먹힌다는 걸 엄마는, 아니 엄마들은 알고 있었다. '엄마 없으면 어떻게 할래' 같은 말들이 다 그런 말이다
"나도 그냥 따라 죽지 뭐"
엄마의 물음에 이렇게 대답했다.
엄마는 내가 크고 난 뒤 어떤 표현이라도 내가 걱정이 된다거나 하는 표현을 하지는 않았다. 그런데 정말 아주 어렸을 때 빼고는 들어볼 수 없었던 말을 이렇게 들으니 상당히 기분이 묘했다.
정말이지 엄마가 없으면 바퀴벌레는 어떻게 잡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