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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ey Feb 22. 2024

가질 수 없는 것들

나이키 운동

음식이나 장난감, 운동화 같은 것들이 욕심이 나기 시작한 건 언제부터였을까. 


먹는 것에 대한 욕심은 아주 어렸을 때는 있었을 것 같았으나 이건 가정교육 탓에 애초에 없어져 버린 듯하다. 명절에 외갓집에 갔었는데 식사 시간 때 거하게 한 상 차려졌고 평소에는 보지도 못할 반찬에 소불고기 같은 게 눈앞에 보이니까 언젠가 맛본 기억이 떠올라 자동으로 젓가락은 그쪽으로 향했고 반찬을 집어 올리기도 전에 엄마의 나직한 목소리가 들렸다.

“어른들 먼저 드시고 난 다음에 먹어야지” 

이 말을 듣고 슬그머니 젓가락을 후퇴시켰다. 초등학교도 가기 전 어린 마음에 얼마나 먹고 싶었을지는 지금도 어렸던 나의 마음이 이해가 될 정도다. 그날 다 같이 저녁을 먹고 집에 와서 엄마한테 정말 엄청 혼났다.

“어디 가서 밥 먹을 때 어른들이 먼저 드시면 그다음에 먹는 거야.”

“맛있는 반찬이 있어도 바로 앞에 없으면 참아.”

다음에 외갓집 갔었을 때 또 거하게 한상이 차려졌는데 내 앞에는 시금치와 도라지무침이 있었다. 혼나기 싫으니까 당연히 시금치와 도라지무침만으로 밥을 먹었다. 삼촌들이 제발 내 앞으로 불고기를 당겨주길 기다렸는데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러니 밥은 빨리 먹게 됐고 슬그머니 일어났다. 친척들이 다 모였으니 사람도 많았고 차려진 상도 많았는데 식사를 다 하고 남은 반찬을 보니 불고기가 제법 남아 있었다. 나와 비슷한 또래의 사촌들은 먹고 싶은 반찬 마음껏 먹고 그러는데 나는 왜 그렇게 하면 안 되는 걸까에 대한 고민을 하다가 그래도 엄마한테 혼나는 것보다 낫다고 생각하고 꾹 참았다. 누나한테 불고기 먹었냐고 물어보니까 누나는 너무 많이 먹어서 배가 부르다고 했다. 먹는 모습을 보질 못했지만 운 좋게도 불고기가 누나 앞에 있었구나 생각했다.


평소에 엄마는 맛있는 걸 하면 누나를 먼저 챙겨줬다. 누나가 없을 때 맛있는 걸 하면 누나가 집에 와서 먹고 난 다음이 내 차례였다. 그때는 가끔 억울하고 화도 나고 그랬는데 항상 그랬으니 나중에는 이상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아들 하나인 친구들 얘기를 들어보면 상황이 좀 많이 달라서 또 의구심이 솟구치곤 했는데 그냥 생각만 하고 말았다. 이렇게 음식에 대한 욕심은 애초에 없어졌다.


남자아이라면 대부분 장난감을 좋아할 수밖에 없다. 난 특히 프라모델을 좋아했다. 만들어져 있는 장난감도 좋긴 했지만, 뭔가 내 손으로 하나 하나 맞춰나가면서 완성되는 게 더 좋게 느껴졌다. 많은 조각들이 모여서 상자의 그림처럼 완성이 되면 어떤 큰 과업을 이룬 것처럼 기뻤다. 그리고 완성품들을 봤을 때는 겉모습보다는 그 속이 너무 궁금했다. 라디오나 TV는 더없이 신기했다. 어떻게 말이 나오고 영상이 나오는지 아마도 이건 나만 했던 생각이 아니라 전 세계의 아이들이 공통적으로 했었던 생각이라 믿는다. 집에 있는 몇 안 되는 전자제품을 모조리 열어놓고 고장내서 엄마한테 얼마나 혼났는지 모른다. 그래도 그 일을 멈출 수가 없어서 나중에는 아주 살짝 열어서 보기만 하고 그대로 다시 조립해 놓고 그러다가 나사가 너덜너덜 해져서 가만히 있던 라디오가 스스로 분리되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동네 문방구에 가면 프라모델이 잘 보이게끔 진열되어 있었는데 볼 때마다 갖고 싶었다. 아빠는 가끔 사줬고, 엄마는 가뭄에 콩 나듯이 사줬는데 당연히 이 정도로는 성에 차지 않았다. 조립하고 다시 분해하고 조립하고를 몇 번 반복하다 보면 또 다른 게 갖고 싶고 친구들은 정말 멋진 것들이 있는데 나는 항상 가장 저렴하고 작은 것들만 있으니 배고픈 것보다 프라모델을 갖고 싶은 마음이 더 참기 힘들었다.


문방구 옆에는 큰 계단이 있었는데 거기에 아이들이 모여 앉아 장난감을 조립하곤 했었다. 하루 중 많은 시간을 거기에 매달려 조립하는 모습을 구경하다가 잘 못하면 내가 해주곤 하면서 아쉬움을 달랬다. 그렇게 매일 거기에 있으니 문방구 아저씨가 나를 부르더니 먼지가 쌓인 박스들을 먼지를 털어내고 잘 진열하면 프라모델 하나를 줄 테니 하라고 해서 알았다고 하고 열심히 했다. 한 서너 시간 걸린 것 같았다. 그렇게 해서 얻는 프라모델은 가장 저렴하고 별로 갖고 싶지도 않는 것이었다. 이후에 문방구 아저씨가 똑같은 제안을 했을 때 나는 당차게 거절했다. 차라리 그 시간에 애들이 만드는 걸 구경하는 편이 훨씬 더 낫겠다는 생각을 했다.


초등학교를 졸업할 때가 되었다. 졸업 선물이자 입학선물로 이모들이 선물을 사준다고 했는데 뭐가 갖고 싶냐고 물어봤다. 나와는 동갑인 사촌이 두 명 더 있었는데 그 사촌들은 카세트플레이어를 사달라고 했다. 그때 카세트플레이어는 정말 신문물이었다. 가격도 엄청났고 말이다. 내 두 사촌들은 당시에도 엄청 세련됐고 똑똑하고 공부도 잘하고 해서 많은 사랑을 받고 있었고 난, 원래 공부는 못하고 매일 엉뚱한 짓만 하고 다녀서 칭찬보다는 혼나는 일이 훨씬 더 많았던 시기였다. 사촌들이 갖고 싶다던 카세트플레이어를 얘길 했을 때 친척들의 반응은 상당히 좋았다. 왜 좋았는지 당시에는 알 수 없었지만 뭐랄까 지금 생각해 보면 격에 맞는 생각과 행동들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지 않나 하는 그런 느낌이었다. 나한테 어떤 선물을 받고 싶냐고 물었을 때 난 주저 없이 ‘과학상자’를 얘기했다. 과학상자는 내가 꿈에 그리던 그런 물건이었다. 얼마든지 내가 만들고 싶은 걸 만들 수 있었고 모터나 이런 것들도 들어 있어서 작동도 시킬 수 있는 딱 내가 원하던 것이었다. 친척들의 반응은 싸늘했다. 그냥 싸늘한 정도가 아닌 공개적으로 망신이었다. 중학교 들어가면 공부 더 열심히 할 생각 해야지 아직도 그러고 있냐면서 말이다. 그래서 내 초등학교 졸업선물이자 중학교 입학 선물은 말없이 사라져 버렸다. 당시에 너무 이해가 안 됐던 건, 나와 동갑인 사촌은 이미 집에 과학상자 가장 큰 게 있었고, 영플레이모빌도 세트로 있고, 아카데미에서 나온 모터가 들어간 탱크 같은 게 집에 많았다. 왜 사촌은 되고 나는 안되는지 이해를 할 수 없었지만 말은 못 했다. 그리고 그게 너무 갖고 싶었다. 이후로 과학 상자는 친구네 집에 가서 갖고 노는 정도로만 만족했었다. 어른이 되면 사고 싶은 거 다 사야지 했는데, 막상 어른이 되니 당연히 그 느낌이 아니라 큰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


가질 수 없고 욕심을 부려서는 안 되는 것들이 있는데 그걸 어떻게 가져보겠다고 기회가 왔을 때 얘길 했는데 비난으로 돌아와서 좌절감을 느꼈다. 한동안 그런 감정에 쌓여서 아무것도 흥미롭지 않았던 시기가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오래 지나지 않아 금세 그런 사실은 잊어버리고 내 상황에 맞춰 잘 놀았다.

“하고 싶은 거 다 하고 어떻게 살아.”

어렸을 때 들었을 때와 어른이 되어 들었을 때와 느낌이 같은 말이다.


매일 나가서 뛰어놀고 하니 운동화가 빨리 닳았다. 아이들의 옷과 신발은 어떤 브랜드인지 알턱이 없다. 부모님이 사주신 옷이나 운동화를 그냥 입고 신을 뿐이지, 선택권은 오로지 부모에게만 있었다. 좋은 옷을 입지 않아도 되는 건 욕심이 없었다기보다 아무런 생각이 없었다. 하지만 운동화는 달랐다. 옷은 아무리 새 옷을 입어도, 빨아서 입으면 또 금세 새 옷이 되기 때문에 크게 감흥을 주지 못했는데 운동화는 빨아서 신었을 때와 아주 새것을 신었을 때 완전히 다른 느낌이었다. 그리고 그때 당시 TV에도 나오고 신문에도 나왔다. 그렇게 화면에서도 보고 지면에서도 보게 되니 자연스럽게 새 운동화를 신고 나온 친구를 보면 어떤 브랜드인지 알게 되었다. 그때 욕심이 생겼다. 내 눈에 들어온 건 까발로, 타이거였는데 물론 다른 브랜드들 도 있지만 내 눈에는 타이거가 가장 멋졌고 갖고 싶었다. 운동화 끈을 끼우는 고리가 발 뒤꿈치 쪽에 하나 더 있었는데 무슨 효과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너무 멋있어 보였다. 그리고 쿠션에 구멍이 뚫려있었는데 그게 뛸 때 완충 작용을 해서 왠지 더 빠른 달리기가 가능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마침 운동화가 다 닳아서 엄마랑 시장에 운동화를 사러 갔었다. 운동화가게는 시장 안에 있었는데 천정까지 빽빽하게 운동화만 들어차있었고 새 운동화에서 나는 고무, 스펀지, 본드냄새가 났다. 그리고 까발로와 타이거는 가장 중앙에 뛰어나와 있었다. 당연히 내가 타이거를 사달라고 하면 혼날게 뻔하니까 아무 말도 안 하고 신어보라는 거 신어보고 마음에 안 든다고 몇 번 반복했다. 그렇게 얘길 하면 나한테 어떤 게 갖고 싶냐고 물어볼 줄 알았는데 이건 순전히 내 생각일 뿐이지 엄마는 정확하게 “이거 사”라고 간결하게 말했다. 그때 그 신발은 운동화가게 아저씨가 권해 준 페가수스였었는데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친구들 페가수스와 로고가 좀 차이가 난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래도 그 운동화는 내게 최선의 운동화였기 때문에 큰 불만은 없었다. 하지만 내 달리기가 또래에 비해 그렇게 빠른 편이 아니었는데 그건 운동화 때문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한동안은 내 달리기 실력이 상위 수준으로 알고 있었다. 그러다 어느 날 맨발 달리기 시합을 했었는데 내가 여전히 느려 달리기 실력은 운동화 때문이 아니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사실 정말 갖고 싶은 운동화는 나이키였다. 하지만 그냥 속으로만 생각할 수밖에 없었던 건 나이키를 신고 온 친구에게 얼마냐고 물었을 때 그 가격을 듣고 이 정도는 사달라고 해도 씨도 안 먹히겠구나 싶어서 포기했다. 대신 누구나 한 번쯤 해봤을 만한 실내화에다가 나이키 로고 그리기로 만족하려 했는데 그걸 그려 넣으면 실내와 빨았을 때 번질 테니 그것마저 생각만 하고 말았다. 그렇게 나이키 운동화는 내게 과학상자와 함께 마음속에 묻어놓고 살게 되었다.


어른이 되어 얼마든지 나이키 운동화를 살 수 있었을 때 난 항상 나이키를 외면했다. 오레오쿠키를 먹을 때 더 많은 크림을 느끼고 싶어 크림 안 발려있는 부분 먼저 먹는 느낌이랄까. 매년 나이키는 아직 살 때가 아니야 하며 미루고 미뤘다. 이게 무슨 심리인지는 잘 모르겠다. 너무 갖고 싶었던 걸 쉽게 얻어 즐기는 게 마치 어떤 걸 함부로 대하는 느낌이 들었달까. 그렇게 나이키를 외면하고 살고 있었을 때 여자친구가 나이키 농구화를 선물해줬다. 어떤 선물인지도 모르고 있다가 박스를 보는 순간 이제야 때가 된 건가 싶었고 너무나도 흥분됐다. 나이키의 특정모델이 갖고 싶은 게 아닌 그냥 나이키 로고가 새겨진 운동화를 갖고 싶은 거였는데 선물을 받은 건 빨간색 레트로한 농구화여서 너무 이뻐 더욱더 마음에 들었다. 하지만 아직 때가 아니었던 건가. 신어보는 순간 너무 컸다. 세일을 해서 구입한 거라 남은 사이즈가 없어 교환이 가능하지도 않았다. 인생 처음으로 나이키를 신어보나 싶었지만, 좀 커도 신어보고 싶었지만 너무 커서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한차례 들떴던 마음은 가라앉게 되었다. 이게 십 년 전 일이다.


내가 가지고 있는 운동화, 러닝화 브랜드는 브룩스, 리복, 미즈노 제품이다. 여전히 나이키를 배제한 구성이다. 운동삼아 걷기도 많이 걷고 뛰기도 많이 뛰어서 그나마 러닝 할 때 괜찮게 신을 수 있는 러닝화는 한 켤레 남아있다. 그래서 하나 더 구입하고 싶었는데, 굳이 또 구입할 필요가 있을까 싶어 미루고 있었다. 그러던 중 나이키에서 세일을 한다는 광고를 보게 됐다.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니 입문용으로 괜찮게 신을 수 있을만한 모델이 사이즈도 있고 세일을 하고 있으니 가격 또한 마음에 들었다. 그래서 바로 클릭해서 결제를 하고 두근 거리는 마음으로 제품이 도착하기만을 손꼽아 기다렸고 드디어 꿈에 그리던 나이키 운동화를 신어 보는구나 싶어 오래전 기억처럼 들떴다. 박스를 열고 포장을 벗기고 보니 영롱하다는 표현이 이럴 때 쓰는구나 싶었다. 끈을 넉넉하게 벌린 후에 발을 쏙 넣어 보았다. 이제 끔 나이키를 외면하고 살았으니 매장 가서 한 번도 신어본적도 없거니와 리뷰를 보니 반사이즈 업하면 괜찮을 거란 말에 반사이즈 업해서 구입을 했는데도 불구하고 무지 작았다. 웬만큼 작으면 그냥 신으려고 했는데 엄지발톱이 움직이지 않을 정도로 발등이 낮고 작았다. 한 사이즈 더 크게 신으면 될 것 같아서 홈페이지를 들어가 봤더니 사이즈 교환 같은 건 없고 반품만 가능하다고 나와 있었다. 그럼 반품하고 또 구입하면 되겠지 해서 봤더니 이미 품절이 되어있었다. 그래서 반품하려고 포장을 다시 해놨다.


오래전에는 어떤 기회가 생기면 다음이 있겠지 생각했지만 조금씩 세월이 흐르면서 그런 기회라고 생각되는 크고 작은 것들의 빈도수가 상당히 줄어든다는 느낌이 들었고 실제로 그런 것들에 대해서 점점 멀어진다는 생각이 든다. 이럴수록 어쩌면 절박한 기분을 느끼는 빈도수는 조금 더 늘어나고 있는 것 같다. 모든 기회들을 다 품을 수는 없지만 적어도 내게 온 기회는 잘 활용할 수 있도록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늘 하는데 나이키에 대해서는 그 바람을 자꾸 미루다 기회를 놓치게 됐다. 내 삶의 굴곡을 만들어 낸 것들이 내가 잘 준비된 상태에서 기회를 잡았기에 가능했던 일들이었는데 아주 사소하다고 생각하는 부분들은 크게 신경을 못쓰고 산 것 같다. 이제는 어떤 것들을 새로 시작한다는 생각보다는 하지 못했던 것과 간과했던 것들을 좀 신경 쓰면서 나중에 아쉬움을 좀 줄일 수 있는 그런 일들을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갖는 것도 중요할 것 같다. 이제 미션이 하나 생겼다. 나이키 매장에 가서 마음에 드는 제품들을 신어보고 느껴봐야 겠다. 반드시 다시 올 기회를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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