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노민주 Apr 03. 2024

'가여운 것들'에서 가여워하기까지

에릭슨의 심리사회적 발달 이론으로 보는 영화 <가여운 것들>

[The Psychology Times=노민주 ]

영화 <가여운 것들> 포스터

최근 제96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엠마 스톤에게 두 번째 여우주연상을 거머쥐게 해준 영화가 있다. 바로 영화 <가여운 것들>이다. 영화 <가여운 것들>은 80회 베니스 국제 영화제에서 최고 영예인 황금사자상 등을 수상하며 극찬을 받은, 성인 여성의 몸에 태아의 뇌를 이식해 탄생한 주인공 ‘벨라’의 모험을 다룬 영화이다.


영화의 주인공 ‘벨라’는 성인의 몸을 가지고 탄생했기에 영화에서 외면의 변화는 거의 없지만, 내면에서는 발달이 비정상적으로 빠르게 일어난다. 처음에는 겨우 옹알이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은 영화 후반에 사회주의를 외치는 벨라의 모습이 이를 잘 보여준다. 



발달은 어떻게 설명되고 있는가?


발달에 대한 주요 이론적 관점으로는 심리적 동인들의 관계를 통해서 발달에 관해 설명하는 정신 역동적 관점, 자극과 반응이라는 측정 자료에 근거해 발달에 관해 설명하는 행동적 관점, 정신의 내면 기제를 통해서 발달에 관해 설명하는 인지 발달적 관점, 생존을 위한 진화를 기반으로 발달에 관해 설명하는 동물행동학적 관점 등이 있다.



에릭슨의 심리사회적 발달 이론


영화에 나온 벨라의 발달 과정은 정신 역동적 관점 중 ‘에릭슨의 심리사회적 발달 이론’과 매우 유사한 모습을 보인다. ‘에릭슨의 심리사회적 발달 이론’은 개인이 해결해야 하는 특정 위기, 혹은 발달 이슈들을 특징으로 하는 8단계로 발달이 이루어진다는 이론이다.


첫 번째, ‘신뢰 대 불신’ 단계는 양육에서 얻는 신뢰 관계로 신뢰 능력이 발달하는 시기이다. 이 시기에 신뢰 관계를 경험하지 못하면, 이후에 친밀 관계를 형성하는 데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두 번째, ‘자율성 대 수치’ 단계는 능력의 발달과 함께 스스로 선택하려는 소망과 자율성을 성취하는 시기이다.


세 번째, ‘주도성 대 죄책감’ 단계는 양심의 발달과 함께 주도적으로 삶에 관여함으로써 목표와 가치를 추구하는 시기이다.


네 번째, ‘성실성 대 열등감’ 단계는 자신이 있는 문화에서 중요한 인지적 및 사회적 기술을 숙달하는, 자아 발달에 결정적인 시기이다.


다섯 번째, ‘정체성 대 역할 혼동’ 단계는 강한 성적 충동의 출현과 함께 사회적 압력이 동반되면서 자신의 위치를 파악하는 시기이다. 


여섯 번째, ‘친밀감 대 고립감’ 단계는 성인 초기에 친밀한 대인관계를 형성하는 시기이다.


일곱 번째, ‘생산성 대 자기 침체’ 단계는 성인 중기에 다음 세대를 생산하고 희생하는 시기이다. 


여덟 번째, ‘자아 통합 대 절망’ 단계는 노년기에 자신의 인생을 평가하고 삶이 의미 있었는지 인식하는 시기이다.



‘가여운 것들'에서 가여워하기까지의 과정


벨라의 발달 과정은 영화 속에서 고스란히 볼 수 있다.


영화 초반, 단어를 막 배우기 시작하던 시기에 이마 뽀뽀하면서 인사하고, 침대에 함께 누워 책을 읽기도 하면서 갓윈 박사와 아빠와 딸처럼 유대관계를 가지는 모습은 벨라가 타인을 신뢰하는 능력이 발달하는 첫 단계인 ‘신뢰 대 불신’ 단계에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어른의 몸에 점차 적응하면서, 세상을 탐험하겠다면서 지붕 위에 올라가고, 밖에 나가고 싶다는 고집을 부려 소풍을 허락받아 밖을 경험하는 모습은 벨라가 스스로 선택하면서 자율성을 성취하는 두 번째 단계인 ‘자율성 대 수치’ 단계에 접어들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 후 벨라는 인지적으로 많이 성장하면서 세 번째 단계인 ‘주도성 대 죄책감’ 단계에 접어들어 집을 떠나겠다 선언하며 변호사 던컨과 세계 여행을 떠나고, 여행을 하면서도 타르트를 먹기 위해 혼자 밖에 나와 주변을 돌아다니면서 목표를 세우고 성취한다. 그리고 여행 중 여객선에서 사귄 새로운 친구들과 어울리면서 철학에 대한 서로 다른 견해도 접해보고, 파리에서 사회주의자들 모임에 참여하면서 네 번째 단계인 ‘성실성 대 열등감’ 단계에 접어들어 벨라는 중요한 인지적 및 사회적 기능을 숙달한다.


다음은 ‘정체성 대 역할 혼동’ 단계가 되어 강한 성적 충동과 함께 사회적 압력으로 자신의 위치를 파악해야 하지만 이 부분에서는 벨라는 다른 경향성을 보인다. 이미 집을 떠나기 전부터 강한 성적 충동을 보였던 벨라이기에, 오히려 다른 단계에 비해 성적 충동이 덜한 것처럼 보여진다. 그러기에 벨라는 심한 정체성 혼동을 겪지 않고 이 시기에 초연하게 자신에 대해 생각하며 발달한다.


영화에서는 '에릭슨의 심리사회적 발달 이론' 8단계 중 성인이 된 이후 3개의 단계의 모습이 나오지 않는다. 그리고 각 단계가 일어나는 특정한 연령대가 있지만 벨라는 이를 무시하고 짧은 기간에 발달이 일어난다. 이처럼 이론과 다른 부분이 있지만, 유사한 발달 과정을 거치기에 이론을 통해서 우리는 벨라가 어떠한 과정으로 성장하는지 알 수 있는 것이다.



벨라가 그 누구보다 특별한 이유


영화에서는 벨라와 유사하게 탄생한 또 다른 존재가 나온다. 그 아이는 벨라가 설명할 수 없는 이유로 급격하게 성장하는 특별한 존재란 것을 보여주기 위해 영화에 등장한다. 나는 그것과 더불어 그 아이의 모습을 통해 주변 사람들의 사랑이 발달에 중요하다는 것도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갓윈 박사는 그 아이를 철저히 실험체로만 대한 것에 비해, 벨라에게는 자신도 모르게 부성애를 가지고 사랑을 보여준다. 갓윈 박사가 준 사랑은 ‘기본 신뢰 대 불신’ 단계에 있는 벨라에게 처음으로 타인을 믿는 경험을 하게 해주어 더 큰 세상을 경험할 첫 단추를 끼워준 것이다. 벨라는 그 시기에 받은 신뢰 경험, 즉 사랑으로 많은 세상을 경험할 수 있는 주체성을 가진, 누군가를 가여워하며 눈물 흘릴 수 있는, 실험체와 다른 특별한 사람이 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비극적이지만 매력적인


‘에릭슨의 심리사회적 발달 이론’은 정신적 발달이 신체의 발달을 통해서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성취, 경험을 통해서도 이루어진다는 것을 시사한다. 영화는 ‘에릭슨의 심리사회적 발달 이론’과 함께 영화의 시작과 끝 모두 같은 외형을 보여주며 발달 과정에 신체적 변화를 제외시킨다. 정신적 발달을 극적으로 관객들에게 상기시키는 것이다. 이를 통해 영화는 비극적 장치인 엄마의 몸에 아이의 뇌를 이식한 모녀, ‘가여운 것들’에서 가여워할 수 있는 사람으로 변하는 과정을 더욱 매력적으로 만든다. 




출처

Robert Siegler,Jenny R. Saffran,Nancy Eisenberg,Judy DeLoache,Elizabeth Gershoff.(2019).발달심리학.미국:시그마프레스.


http://psytimes.co.kr/news/view.php?idx=8328



매거진의 이전글 '뮤지컬'을 통해 보는 '심리 장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