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의 파편 속 굴러들어 온 과거의 나, 아니 ‘희망’
Synopsis
스물여덟 살 홀리는 늘 자신이 어딘가 잘못된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고, 삶이 기대했던 방향으로 흘러가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그러던 중 아라벨라를 만나고, 그는 그 아이가 어린 시절의 자신이라고 믿게 된다. 집을 떠나고 싶어 하던 아라벨라는 과거를 바꾸고 다시 한번 특별한 존재가 되기 위해 홀리의 계획에 동참하기로 한다.
감독
카롤리나 카발리Carolina CAVALLIi
출연
Benedetta PORCAROLI, Lucrezia GUGLIELMINO, Chris PINE, Marco BONADEI, Eva ROBIN
성숙한 아이와 미성숙한 어른의 조합은 친숙하다. 국내 영화만 해도 2020년 개봉한 <담보>가 납치라는 소재와 어른보다 성숙한 아이라는 비슷한 구성으로 머릿속에 떠오른다. 이처럼 친숙한 주제를 베이스로 한 로드무비에서 카롤리나 카발리 감독은 자신만의 블랙코미디를 마음껏 펼친다.
만찬 중 연설을 하는 아빠에게 아라벨라가 "타코 킹!", "세금!"을 우렁차게 소리 지르는 장면은 따라 짖는 개소리와 함께 '헉'할 정도로 싸한 분위기를 자아내며 상류층에 대한 가장 썰렁하고 격식 없는 비판이 되고, 이어 딸을 잡으러 허겁지겁 계단을 뛰어 내려오는 크리스 파인의 모습은 블랙 다음의 코미디까지 완성시킨다. 이제는 감독의 페르소나라 불릴 법한 베네데타 포르카롤리의 공허하고 희망 없는 눈과, 처음으로 이탈리아어 연기에 도전하며 망가짐을 불사한 크리스 파인의 연기는 영화에 색채를 더한다.
<아라벨라의 납치>의 가장 주된 관전 포인트는 무미건조하게 표현된 사건들이다. 영화는 현실과 비현실성을 자유롭게 넘나들며 모든 상황과 행동들을 자연스럽게 만든다. 어린아이가 총을 들고 어른을 위협해도, 남의 집에 침입해 빵에 버터를 발라먹어도, 귀가 먹은 염소와 함께 잠을 청해도 선을 넘을 듯 말 듯하면서 마치 늘 그랬다는 것 마냥 자연스럽게 표현해낸다.
물론 주인공의 상황이 결코 평탄하다는 것은 아니다. 아르바이트에서 잘리고 밥을 먹을 돈이 없어서 협박으로 공짜 감자튀김을 얻어먹는 홀리는 그야말로 잃을 것이 없는 상태다. 한때 베테랑 무용수에게 "성공할 재능이 있다"는 말을 들었었지만, 지금은 우연히 길에서 만난 아라벨라에게 철없이 발을 절며 도망쳤던 어린 시절의 자신을 투영한다. 심지어 무턱대고 아라벨라가 자신에게 찾아온 어린 시절의 나라는 착각까지 할 정도로, 홀리에겐 어린 시절의 파편들만 남았기 때문이다.
죽은 어머니에게 무의식적으로 통화를 거는 모습은 인정과 사랑의 결핍이 극에 달함을 보여주며 마치 조현병처럼 보이기까지 한다. 이런 홀리에게 아라벨라는 단순한 착각이 아닌 파편 속에서 빛나는 단 하나의 희망이 되고, 아빠가 싫었던 아라벨라에게는 홀리가 훌륭한 도피처가 되며 두 사람만의 기묘한 로드트립이 시작된 것이다.
영화의 결말은 예정되어 있었다. 아라벨라는 다시 아버지의 품으로, 홀리는 재판을 받고 수용 시설로 들어가며 미화나 억지 감동 대신 담담한 현실이 둘을 마주한다. 그러나 만찬 자리에서 거대한 닭 탈을 쓴 사람 곁에 홀로 남겨진 채 반대편 아이들과 어울리지 못했던 아라벨라는 이번 여정을 통해 (비록 닭처럼 바보같지만) 자신을 사랑해주는 어른 곁에서 비로소 다른 아이들과 자유롭게 놀 수 있었고, 홀리 역시 과거가 아닌 현재의 삶에서 사랑을 찾으며 위태롭던 삶의 안정을 찾게 된다. 나사 하나가 빠진 듯한 이 로드트립에도 적용된 성장과 변화라는 로드무비의 문법은 관객들의 어린시절에 미소와 위로라는 마침표를 찍으며 막을 내린다.
Schedule
2026.4.30 10:30 메가박스 전주객사 1관 상영코드 112
2026.5.4 21:30 메가박스 전주객사 3관 상영코드 571
2026.5.6 10:30 메가박스 전주객사 4관 상영코드 711
전주국제영화제 기간 2026.4.29 ~2026.5.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