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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정호 Jun 03. 2023

선을 긋는 시대는 벗어나야

몇 년 전 모 기관에서 ICT전문가 인력풀을 공개모집한다는 공고를 보고 공고문에 나와 있는 담당자 전화번호로 전화를 하였다.


첫 번째 질문이 공학박사학위나 기술사자격증이 있느냐 하는 것이기에 그런 것은 없고 바로 밑의 학위와 자격을 소지하였으며 경력은 모집요강에 충분하다고 하였더니 잠시 침묵이 흐르고 사무적인 말투로 인터넷으로 지원을 하라고 한다. 혹시나 하여 이런저런 서류를 챙겨 e-mail로 보냈지만 역시나 답변하나 없었다.

     

우리나라의 이력서 양식을 보면 거의가 일반적인 인적사항 아래에 학력, 자격, 경력을 적는 난이 분명한 칸으로 나뉘어 있고 지원자는 이른바 틀에 박힌 칸 메우기를 하여야 한다. 이에 비해 미국이나 선진 유럽의 이력서는 특별한 양식이 없다. 단 3가지는 분명히 쓰도록 되어있다.


첫째, 당신이 우리 회사를 얼마나 알고 있으며, 둘째, 우리 회사에서 당신의 능력을 어떠한 형태로 발휘하며 업무에 얼마만큼의 기여를 할 것이며, 셋째, 그로 인한 결과물을 어떤 형태로 도출할 것인가 하는 것이다.

     

참으로 유연하면서도 합리적인 이력서이자 자기소개서이며, 간단한 업무계획서가 함축되어 있는 느낌이다. 승진의 경우에도 구글 같은 빅테크 기업에서는 왜 내가 승진을 하여야 하며, 승진 후 해야 할 프로젝트에 대한 청사진을 반드시 경영진 앞에서 발표하도록 하는데 비하여 아직도 한국은 학연, 지연, 혈연 등이 더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사실이다.

     

자격제도를 한번 살펴보자. 한국은 어느 정도의 학력과 경력이 합해지면 바로 최상위급 시험을 볼 수 있고 정해진 점수만 넘으면 한 번에 자격을 거머쥘 수 있는데 비하여 미국은 아무리 실력이 뛰어나도 철저하게 제일 낮은 급수의 자격부터 차례로 올라가도록 규정하고 있다. 한국 땅에서 고시 제도가 존재하는 한 개천에서 용 나기는 계속될 것이다.

     

자격시험이나 학교에서 출제하는 문제를 가만히 들여다보면 획일적인 표준을 만들어놓고 거기에 맞는 확률을 높이면 자격증을 주고 학점을 준다. 이제는 각자 제일 잘할 수 있는 분야를 개발해 줄 수 있는 것이 학교가 되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이러한 유연함이 결여되다 보니 요즘 MZ세대들이 획일화된 업무에 구속되고 틀에 박힌 생활에 길들여져 있는 공무원이나 군인, 경찰 등의 이른바 계급사회를 싫어하고 기피하는 까닭이다. 최근 하늘을 찌르던 공무원 경쟁률이 사상최저로 떨어지고 사관학교의 자퇴율이 최고점을 찍고 있다는 뉴스가 이러한 현상을 직접적으로 나타내고 있다.

     

우리나라는 이제 경제적 지위는 세계 10위권 안에 들어있다. 그러나 합리적인 생각과 함께 유연함을 가지지 않는다면 결코 문화 선진국이 될 수 없다고 본다. G7에 들어가 있는 영국이나 일본도 경직된 문화와 지배 우선적 관념이 지속된다면 언제 G7에서 빠질지 장담할 수 없다. 대표적인 일례가 왕실이 존재하며, 한때 전 세계를 식민지로 쥐락펴락 하였던 나라이기에 더욱 국격이 저하하기 쉬운 구조라는 것을 알아야 할 것 같다.

     

포장과 쯩과 간판과 뺏지가 그 사람을 평가하던 시대는 이제 끝이 나고 있다. 이제는 한 분야에서 최고 전문가가 되어야 인정받을 수 있는 사회가 급속히 우리 사회를 향해 돌진하고 있다. 무엇을 하느냐가 중요하지 않고, 어떤 조직에 몸을 담고 있는지도 그리 중요하지 않다. 다만 어느 정도의 능력과 변화에 적응하는 속도가 빠른지가 중요한 시대가 되었다. 개성과 다양함을 인정하고 틀리다 보다는 다름을 인정하여야 한다.

     

이제 선을 긋는 시대는 벗어나야 한다. 칸에 매워진 학력, 자격, 경력보다 현재 필요한 일을 할 수 있는 능력을 검증하는 것이 더욱 중요하고, 의미 있는 결과물을 도출하는 자세를 최상의 가치로 여기는 사회가 되어야 할 때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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