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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을 추구하는 것만큼 완벽한 바보는 없다

by 이정호

나는 한때, 차가운 서릿발처럼 날카로운 완벽함이야말로 삶의 유일한 존재 증명이라 믿었다.


내 안의 모든 것들은 정교하게 깎인 조각처럼, 오차 없는 말투와 흐트러짐 없는 일상의 각으로 세공되어야만 했다.


타인의 시선은 나를 비추는 천 개의 스포트라이트였고, 나는 그 아래서 단 하나의 그림자도 허용하지 않는, 유리벽에 갇힌 미라와 같았다.


그 완벽의 껍데기 아래서, 내면은 언제나 팽팽하게 당겨진 활시위처럼 숨 막혔다. 조금의 어긋남이라도 생기면, 그 균열은 나를 갉아먹는 독이 되었다.


나는 나 자신의 가장 잔혹한 심판관이었고, 사소한 실수 앞에서는 세상의 무게가 무너져 내리는 듯한 고통을 느꼈다.


그 강박은 나를 지탱하는 힘이 아니라, 오히려 유리벽에 파국을 예고하는 미세한 진동을 일으키는 투명한 쇠사슬이었다는 것을, 끝없이 이어진 긴장의 연속 속에서는 깨닫지 못했다.


완벽을 향한 열망은 아이러니하게도 자기부정이라는 그림자를 길게 드리운다. 빛이 강렬할수록 그림자가 짙어지듯, 틈 없는 삶을 고집할수록 내 마음의 온도는 점점 차갑게 식어갔다.


인간은 본디 유한하고, 끊임없이 삐걱대는 톱니바퀴와 같은 존재인데, 그 자연스러운 마찰음을 스스로 징벌하려 했던 것이다.


주름 하나 없는 꽃잎이 있다면, 그것은 생명의 약동이 멈춘 조화(造花) 일뿐, 살아 숨 쉬는 꽃이 아니다. 생명이 있는 모든 것은 습기에 젖기도, 바람에 흔들리기도 하며, 그 과정에서 흠을 얻고 역사를 새긴다.


문득, 모든 힘을 놓고 멈춰 서서 스스로를 바라본 순간이 있었다. 굳게 닫혔던 마음의 창을 아주 미세하게 열었을 때, 거울 속에서 발견한 것은 내가 그토록 숨기려 했던 ‘결함’이 아닌, ‘흔적’이었다.


지친 듯 보이지만 부드러운 눈가의 선, 서툰 표현을 감추려 애쓰다 만들어진 미소의 주름은, 그동안 내가 치열하게 살아왔다는 생존의 기록이었다. 완벽을 쫓느라 버려두었던 나의 불완전함 속에서 비로소 '나다움'이라는 희미한 빛이 반짝이는 것을 보았다.


세상은 끊임없이 더 높은 곳을 가리키며 '더 나은 나'를 주문한다. 마치 목표 지점만이 존재의 이유인 것처럼 몰아세운다.


그러나 가장 용감한 여정은 타인의 시선이나 미래의 이상향을 향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 흙먼지 묻은 '지금의 나'를 두 팔로 끌어안는 데서 시작된다.


그 옹졸한 완벽주의의 잣대를 내려놓았을 때, 비로소 마음은 낯선 땅에 뿌리내린 풀처럼 편안하고 자유로워진다.


이제 나는 모서리가 닳아버린 컵을 집어 든다. 그 울퉁불퉁하고 삐뚤어진 손글씨 안에 숨겨진 진심의 따스한 맥박을 느낀다. 삶의 완성은 티끌 하나 없는 무결함이 아니라, 습기와 상처, 그 모든 결핍이 만들어낸 시간의 무늬를 기꺼이 끌어안고 품어낼 수 있는 너그러운 품에 있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오늘, 나는 가장 어리석고 완벽했던 과거의 나에게 안식의 속삭임을 전한다.


“세상에 완벽을 추구하는 것만큼 완벽한 바보는 없다.”


나는 이제 그 고독한 강박의 굴레를 벗어던지고, 덜 다듬어져 더욱 인간적인 나의 모습을 온전히 받아들인다.


조금은 젖어 있고, 조금은 흔들리지만, 그 불완전한 상태야말로 가장 빛나는 생명의 증거이자 자유의 표식임을 알기에.


나는 그 불안정함 속에서 비로소, 나다운 가장 아름다운 빛을 찾아 영원히 걸어 나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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