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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나리 Oct 15. 2023

[서른수집기] 대전살이 4년, 공기업 직원 민기의 서른

대전을 닮은 민기의 서른


민기와는 대학교 때 합창동아리에서 처음 만났다. 공대생이었던 민기는 노래도 곧잘 하고 피아노도 잘 쳐서 테너파트와 반주자를 겸하는 한 인재였다. 대전에서 일을 하면서도 한동안 피아노 강습을 받았을 만큼 음악적인 취미를 가지고 있는 친구이기도 하다. 민기는 졸업을 하고 취업을 하면서 대전으로 내려갔고, 가끔 동아리 친구들 모임이 있을 때나 얼굴을 볼 수 있었다. 인터뷰를 통해 민기의 서른은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지 들어보았다.  


-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대전에서 직장 생활하면서 살고 있는 김민기(가명)라고 합니다. 서른 살이고, 공기업 다닌 지 3년 됐습니다. 지금은 공공보안과 관련된 일을 하고 있습니다.

 

꿈에 그리던 첫 직장을 그만둔 이유

- 여기가 첫 직장은 아니었지?

응. 두 번째 직장이지. 첫 직장은 사기업이었어. 나는 4학년 1학기 마칠 때쯤부터 거의 게틀링 건(기관총의 한 종류)처럼 지원을 많이 했어. 나는 실전에 그렇게 강한 타입이 아니여서 기회를 많이 만들어야겠다고 생각 했거든. 내 나름대로 전략을 짠 거지. 내가 가고 싶었던 회사들, 할 수 있겠다 싶은 일들 다 지원했었어.


- 와 지원을 엄청 많이 했었구나.
응. 나는 안정적으로 할 수 있는 걸 많이 추구했던 것 같아. 그때 썼던 자소서가 100개는 넘게 있어. 진짜 안 가리고 넣었어. 그렇게 해도 서류에서 걸러지고 인적성 필기시험에서 또 걸러지면 면접 볼 수 있는 데는 손에 꼽는 거야. 근데 면접 보러 가면 나를 내세울 수 있는 그런 경쟁력이 없다 보니까 잘 안 됐던 것 같아.


이제 와서 생각해 보면 다 도움이 되는 과정들이었지만 그때는 힘들기도 하고 생각보다 벽이 높다 싶었어. 4학년 땐 취업이 안 됐고, 다음 상반기 준비하면서 어디 도서관에서 자리 잡고 공부하고 있는데 갑자기 연락이 오더니 추가 합격이 됐다고 하더라고. 그래서 첫 직장에 들어갔었지.


- 1년 만에 취업이 된 거네.

응. 그때는 되게 좋았어. 거의 1년간을 준비해 왔던 게 끝났다는 생각이 드니까. 바로 집에 전화해서 됐다고 얘기하고 그런  기억이 나. 거기에 붙으면서 대전으로 내려가게 됐지. 근데 결론부터 얘기하면 사실은 되게 힘들었어. 그 회사 다닐 당시에 너네랑 모임 하면 힘들다고 찡찡대고 했을 거야. 생산 관리 직무로 처음에 이제 입사를 했는데 말이 생산 관리지 온갖 일을 다 하는 거야. 설비가 9대인가 10대인가 이랬는데 그걸 나 혼자 관리를 했어.

 

- 말도 안 된다.

하나당 몇십 명이 붙어 있는 설비인데 그거를 이제 대졸 신입사원이 다 관리를 했던 거지. 말은 생산 관리 직무인데 구매 업무, 현장 인력 관리, 생산 관리, 생산 계획, 이슈 관리 했었어. 혼자 해야 될 게 너무 많으니까 되게 짧은 시간 안에 벅참을 느꼈던 것 같아. 난 진짜 열심히 했거든. 근데 힘들었었던 기억이 지금은 많이 남는 것 같아.

 

- 그때 야간근무도 많이 했었지?

야근도 많이 했지. 거기는 심지어 포괄임금제여서 한 달에 30시간까지는 거의 수당 없이 해야 되는 상황이었는데 30시간은 가뿐히 넘기고 이슈 터지면 퇴근 못 하고 그랬어. 정신은 없고, 이게 할 수 있는 일인가 라는 생각도 들고. 그런 생각을 입사 초기 때부터 했던 것 같아.
 

- 그래서 이직 준비를 했던 거구나

맞아. 그때도 전략은 똑같았어. 총알은 많이 쐈는데 아무래도 준비할 시간이 부족했지. 필기 같은 경우는 절대적인 공부량이 필요한데 그게 만족이 안 되니까 이제 더 뚫기가 어려웠어. 그래서 면접 기회는 생각보다 많지는 않았어. 거의 취준생 때 준비했을 때랑 비슷하게. 그때도 한 100군데 넣었나? 근데 역시나 결과는 잘 안 됐지. 그래서 이제 실망을 하고 있던 와중에 지금 일하던 곳에 합격해서 이직을 하게 됐어.
 

- 공기업 입사도 쉽지 않았을 것 같아.

공기업은 NCS(국가직무능력표준)를 봐. 문제를 짧은 시간 안에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을 보는 건데 취업 준비할 때도 계속 준비했던 거라 아예 까먹지는 않았었던 것 같아. 전공 시험이 없었던 것도 커. 전공 시험을 보는 전형이 있었다고 하면 쉽지 않았을 것 같아. 전공 시험을 준비할 시간까지는 없었으니까.
 

- 지금 하는 일은 좀 할 만해?

지금이 바쁜 시기긴 한데 확실히 사기업 하고는 느낌이 많이 달라. (어떤 점이?) 실적에 대한 압박이 별로 없고 업무량도 전만큼 많지 않고. 사실 그전 회사를 경험하고 보니까 어디 가도 괜찮을 것 같다. 이런 생각이 들어. 당연히 나름의 어려움도 있긴 하지만.

 

주거에 대한 고민, 서울과 대전 사이

- 지금은 계속 대전에서 지내는 거지?

응. 서울로 발령이 나지 않으면 대전에서 자리를 잡고 살아야 되니까 부동산이나 거주를 어떻게 해야 할지에 대한 고민이 있어. 지금은 사택에서 살면서 버티고 있거든. 아직 서울로 발령이 날까 기대하는 부분이 있다 보니까 대전에서 전세 계약을 하기도 그렇고, 그렇다고 월세로 어딜 들어가서 마냥 기다리거나 집을 사기도 그냥 애매한 거지. 그게 사실은 지금 가장 큰 고민 중에 하나야.


- 대전에서 지내는 것 자체는 좀 어때?

나는 좋아. 편안한 느낌이야. 대전이 노잼도시라고 하잖아. 크게 막 재밌는 게 있지 않은데 주변에 있을 카페 다 있고 맛있는 맛집들 다 있고. 특히 나는 차를 가지고 다니니까 오히려 서울보다는 차를 가지고 다니는 게 훨씬 편하고. 대전도 물론 사람 많은 데 가면 정신없긴 하지만 서울보다는 훨씬 덜하거든. 서울 올라오는 게 그렇게 멀지도 않고.


- 요즘 최대 관심사는 앞으로의 주거나 자리를 어디에 잡을지에 대한 거겠구나.  

응. 성향도 안정적인 걸 좋아하다 보니까 빨리 내 보금자리를 마련하고 싶은 욕구도 되게 커. 부동산에 계속 관심 갖고 공부하려고 하고는 있지.  대전 부동산에 대해서는 좀 빠삭해. 하하. 아직 구체적으로 얘기를 하진 않지만 여자친구도 만난 지 꽤 됐으니까 자연스럽게 결혼 얘기가 나올 거고. 그러려면 여자친구는 직장이 서울이고 나는 대전이니까 어디에 자리를 잡아야 될지 고민이지. 사실 그전에 근본적으로 장거리로 할지 말지부터가 고민이기는 해. 여자친구도 열심히 쌓아온 커리어가 있고, 그걸 옆에서 지켜보기도 했으니까. 그래서 같이 얘기하고 있어. 지금 당장 결론 낼 순 없는 문제지.  


나는 아직 나 혼자만의 공간을 가져본 적이 없어. 학교 다닐 때도 기숙사 4인 1실이었고. 그래서 내 보금자리에 대한 로망이 아직도 있어. 이게 쌓이고 쌓여서 좀 약간 터지기 직전인 것 같아. 지금은 대전에 행복주택 예비로 기다리고 있는데 그게 되면 가장 좋지.


- 부동산 관련 공부도 하고 있구나.

응. 우리가 21년 불장을 겪었잖아. 그 과정을 겪으면서 되게 상실감이나 허탈함을 많이 느꼈어. 내가 이렇게 일해서 뭐 하나 싶고 근로소득이 너무 의미가 없는 것처럼 느껴지는 거야. 집 값이 그렇게 오르고 매일같이 얘기를 하는 걸 보다 보니까 경제적인 자유를 얻으려면 부동산밖에 없다고 생각했어. 진짜 보이는 게 그때는 그거밖에 없었어.

 

내가 연봉이 대기업처럼 엄청 높아지고 열심히 모아서 뭘 할 수 있는 상황이면 모르겠는데 그렇지가 않다 보니까. 어떻게 보면 배부른 고민일 수도 있기는 한데 그런 게 고민이지. 행복주택에 들어가려고 하는 것도 시세보다는 저렴하기도 하고, 내가 원하는 시점에 총알을 장전을 한 상태에서 지켜보고 있는 거 들어갈 수 있으니까. 행복주택맞을 것 같아.


주말엔 거의 서울에 오는 민기

내가 과연 준비가 돼 있을까?

- 여자친구랑 롱디(장거리연애)생활은 좀 어때?

잘 지내고 있어. 근데 서로 보고 싶을 때 못 보고 하는 건 있지. 지금은 여자친구는 자취를 하고 있고 나는 사택에서 살고 있다 보니까 내가 좀 많이 보러가게 되지.

 

- 여자친구 보러 왔다 갔다 하는 게 체력적으로 힘들지는 않아?

관계에 있어서 느슨해지거나 약간 그러지 않게 서로 노력하는 부분도 있는 것 같아. 올라오는 게 물론 체력적으로 아무렇지도 않다고는 말을 못 하겠지만 그래도 그 이상으로 만났을 때 좋은 게 있고. 배려해 주는 것도 있고 그런 게 느껴지니까.
 

- 결혼에 대한 생각은 좀 어때?

나는 서른 정도면 결혼을 할 거라고 생각을 했었어. 근데 여자친구가 나보다 어리고 사회생활 한 지 얼마 안 돼서 아직 크게 생각은 없어. 늦지 않게 가고 싶다는 생각은 있어. 아빠도 나를 딱 서른에 낳았더라고. 내가 지금 자녀를 낳아야 똑같은 거지. 근데 지금 서른이면 빠른 편이잖아. 특히나 남자는 조금 더 그렇고나는 결혼을 하고 싶은 나이가 거의 됐는데 주변을 봐도 그렇고 나 스스로를 돌아봐도 '내가 과연 준비가 됐을까?' 이런 생각을 하지. 그래서 지금은 이것저것 알아보고 공부하면서 기다리고 있어.

 

- 때를 기다리고 있구나. 서른은 너한테 좀 어떤 시기인 것 같아?

20대 때 취준할 때 나랑 똑같다. 별 차이가 없다. 거기서 걱정만 늘었다. 하하. 나는 서른에 대해 정형화된 생각이 강했던 것 같아. 서른 정도 되면 최소한 안정적으로 되는 진입 단계는 되어있지 않을까? 했지. 근데 막상 지금은 학생 때 나랑 그렇게 크게 변화가 없는 것 같아. 정해진 건 없다고 생각하지만, 틀에서 벗어나는 에 대해서 불안함이 있는 것 같아. 가정을 꾸리는 것부터 시작해서 직장에서도 좀 자리 잡고, 집도 사고, 더 나아가면 투자도 좀 적극적으로 하고 싶은 마음이 있어.


- 잘하고 있고만 뭐.

걱정만 하고 실제로는 퇴근하면 지쳐서 쉽지 않아. 요즘은 또 전반적으로 좀 많이 늦어진 것 같아서 확실히 예전하고 다르긴 한 것 같아. 이렇게 미리 걱정하는 게 좋은 건 아닌 것 같아서 쓸데없는 걱정 안 하려고 하고 있어. 열심히 살다 보면 내 공간을 마련할 수도 있을 거니까. 그럼 잠깐 만족하고 그다음에 또 뒤따르는 목표나 걱정거리가 또 생긴다는 걸 이제는 잘 알게 된 것 같아.

 

- 너무 걱정하지 말고 그때 그때 해야 할 일을 하려는 거구나. 마흔의 너에게 말을 해줄 수 있으면 뭐라고 해줄 것 같아?
그때는 조금 불안해하지 않고 상황에 맞게 즐기면서 살았으면 좋겠어. 점점 시간이 더 소중해지는 것 같아. 알면서도 그냥 보내는 시간들이 되게 많은데 그때그때 놓치지 않고 지냈으면 좋겠어. 그때 되면 자녀가 있을 수도 있을 텐데, 지나가면 끝이잖아. 그 시간들을 놓치지 않게 잘 챙겼으면 좋겠어.




민기의 취업과정이나 일하는 것에 대해 자세히 물어본 적이 없었기에 그저 순탄하게만 지내는 줄 알았지, 이런 우여곡절이 있었는 줄은 몰랐다. 게틀링 건처럼 원서를 넣었다고 웃으며 얘기를 하지만, 100개가 넘는 자소서를 쓰는 것이 말처럼 쉽지 않은 일임을 잘 안다. 민기는 지금의 생활을 위해서 부단한 노력을 해왔을 것이다. 겉으로 보는 누군가의 모습과 나를 비교하는 것이 얼마나 의미가 없는 일인지를 또 한 번 깨닫는다.

민기의 서른은 더 안정적인 미래를 위해 때를 기다리는 시기인 것으로 느껴진다. 그때를 위해 민기는 열심히 일을 하고, 부동산을 공부하고, 좋은 관계들을 만들어나갈 것이다. 문득 편안함과 안정을 추구하는 민기와 자연재해의 피해가 적고 조용한 도시로 알려진 대전이 많이 닮은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잔잔하지만 누구보다 찬란하게 빛날 민기의 시간들을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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