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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나리 Oct 06. 2023

[서른수집기] 도전하기 좋은 시기, 주원의 서른

실패해도 뭐 어때?


기계공학도였던 주원이와는 대학교 3학년 때 동아리에서 처음 만났고, 2년 정도 동아리 생활을 같이 했다. 처음 만났을 때 주원이는 나보다 한 학번이 빨랐고, 당연히 나이가 많을 것이라고 생각해 한동안 오빠라고 부른 게 아직도 흑역사로 남아있다. 동갑이라는 걸 한참 뒤에나 말해주다니. 지금 생각해도 어이가 없어 웃음이 난다. 졸업 후에도 동아리 친구들끼리 종종 만나는 편이었지만 '취업을 했다, 이직을 했다.' 정도의 근황만 전해 들었다. 주원이의 만두귀를 보며 '와 취미로 레슬링 한다더니 진짜 열심히 하나 보네'라고 추측을 할 뿐이었다. 설비를 다루는 외국계기업에서 근무하고 있는 주원이의 서른을 들여다보았다.


주말이면 자전거를 타러 나가는 주원

- 편하게 얘기하면 돼.

응. 편하게 할 거야.
  

- 자기소개를 해주세요.
불편한데? 하하. 광교에 살고 있는 직장인입니다. (더 없어?) 취조 같은데. 하하. 외국계기업에서 일하고 있고, 구매 팀 업무를 하고 있습니다.


자유로운 외국계기업 근무  

- 구매팀 업무라면?
우리 회사의 물류 자동화 설비가 기업에 들어가는데, 설비가 고장 났을 때 갈아 끼우려고 미리 부품을 사놓거든. 그럼 고객이 부품을 우리한테 사는 거지. 내가 그걸 요청하면 본사에서 보내주고.
 
- 아 그렇구나. 그럼 기계 설비와 관련된 구매 팀 업무를 하는 거네
응응. 그러면서 이제 해외에서 들어오는 통관 같은 거 관리하고. 나는 서비스 팀이라 고객이랑 설비 유지보수에 대한 서비스 계약도 담당하고.


- 외국계회사면 출퇴근이나 이런 게 좀 자유로운 편이야?
응. 재택도 되고. 출퇴근 시간도 비교적으로 자유로운 편이지. 


30대 초반에 할 수 있는 재미있는 일  

- 그렇구나. 일하고 남는 쉬간엔 주로 뭐 해? 운동을 엄청 좋아하지? 요즘도 운동해?
레슬링도 하고 자전거도 타는데 요즘에 자전거가 더 재밌어서 자전거만 타고 있어. 레슬링은 다시 할지도 모르는데, 일단 레슬링이랑 자전거 두 개 하긴 힘들고.
 

- 아 그래? 네가 레슬링에 너무 진심이길래 평생 할 줄 알았어.
응. 1년 정도 열심히 했지. 근데 너무 많이 다쳐. 그리고 처음에는 아무것도 모르니까 져도 신경 안 쓰고 배웠지. 근데 어느 정도하고 기술도 어느 정도 나오고 그러니까 승부욕이 생기는 거야. 제대로 하면 1등이 돼야 되고 근데 하다 보니까 너무 재밌는데 거기까지가 너무 오래 걸릴 것 같은 거야. 그러면 한 3-4년은 더 해야 될 것 같은데, 30대 초반에 할 수 있는 것 중에 그거보다 더 재밌는 게 있지 않을까? 약간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 최근에.

 

- 다이나믹한 삶을 추구하는구나. 레슬링 얘기 좀 더 해줘.
레슬링을 하게 됐던 계기는 그때 잘 되어가는 여자가 있었는데 잘 안 돼서 일단 충격을 받았고. ‘하. 운동이나 하자’ 해서 하게 됐는데 재밌었어. 딱 나한테도 잘 맞고. 3-4개월 됐을 때 대회도 나가고. 물론 졌는데, 그래서 레슬링 한 게 많이 기억이 남아. 아무것도 안 하면 별로 남는 게 없거든. 근데 그거는 실패했어도 확실히 후회가 안 남더라고.

(*주원이는 인터뷰를 마치고 한 달 뒤에 다시 레슬링을 시작하였으며, 그 누구보다 열정적으로 레슬링을 하고 있다.)
 

- 네가 거의 1년 동안 매주 3일 이상 다녔다고 했잖아. 나는 뭔가 시작하면 꾸준히 못하는 성격이라서 되게 대단하다고 생각했어.
우리 회사 사람들도 다 그러더라고. 김종국 같대. 뭐 겉보기에 여자도 안 만나고 맨날 주말에 뭐 했냐고 그러면 자전거 아니면 이 레슬링 이런 것만 하니까.

주원이의 널부러진 자전거

- 얘기 나온 김에 그것도 물어보자. 내가 알기로 연애를 쉰 지가 좀 된 것 같은데
응. 근데 잘 될 뻔한 것도 많았는데 그게 별로 마음에 안 찼어. 연애는 하고 싶은데, 20대 초중반 때는 그냥 단순히 외모만 예쁘고 하면 그냥 아무 생각 없이 만났다면, 확실히 어느 정도 장기 연애도 해보고 하니까 머릿속에 계산기가 생기는 것 같아. 처음에 봤을 때도 내가 나랑 맞겠다 안 맞겠다 그런 것도 느껴지고. 예를 들면 소개팅 같은 거 하면은 이제 느껴지는 거지.
 

- 예전보다 보게 되는 게 좀 많아진다는 거지?
응. 그러니까 몇 번 그렇게 해서 사귀어도 결국에는 실패한 적이 많으니까 데이터가 쌓이는 거지. 이런 사람과는 실패하는구나. 예전에는 단순히 외모만 봤다면 지금은 예쁜데 말이 좀 잘 안 통한다거나 취미가 다르다거나. 특히 나는 취미가 약간 특이하잖아. 그래서 대화가 잘 안 되는 사람도 많아. 예를 들면 전시랑 미술이랑 막 그런 예술 쪽으로만 하는 사람과 소개팅했다고 해 봐. 앉으면 처음에 가벼운 얘기는 하는데 더 깊어지지 못하지.
 

사실 잘 통하는 상대를 만나면 결혼도 나중에 생각할 것 같긴 한데 별로 급한 마음은 없어. 한편으로는 돈을 많이 벌고, 사회적으로 자리를 잡아야 하는 그런 압박감은 있지.

 

도전과 실패를 경험하기에 이보다 더 좋은 때가 있을까?

- 요즘들어 하게 되는 고민이 있어?
최근에는 뭔가 너무 안정적인 것 같아. 내가 생각할 때 지금 시기에 그런 도전과 실패를 많이 하기 제일 좋은 때인데. 왜냐하면 별로 잃을 게 없잖아. 잘은 모르지만 언젠가는 사업을 하게 되지 않을까 싶기도 해. 내가 또 스타트업 출신이니까. 예전에 면접 보러 가면 실제로 사장도 우리랑 나이랑 똑같은 사람도 있더라고. 동갑인데 벌써 실패도 엄청 많이 맛보고 그런 게 신기했던 기억이 있어.

 

- 그런 생각도 있구나. 너한테 지금 시기는 좀 어떤 시기인 것 같아? 서른이라는 시기가.
나는 약간 남들이 올라가기 시작할 때 밑바닥에 떨어졌다가 오히려 이제 서른이 돼서 쭉 올라간 것 같아. 예를 들면 대학교 4년 나와서 학점 잘 나오면 취업 엄청 빨리하고 대기업 가고 탄탄대로인 것 같고. 나는 스타트업 갔다가 결국에는 그 과정이 있어서 내가 하고 싶은 일 찾아서 상승세에 있는 것 같아. 근데 만약에 내가 약 4년 동안 모범생으로 살고 학점 잘 나오고 대기업 들어갔으면 오히려 그것도 어려웠을 수도 있다고 생각해. 나한테는 지금이 진짜 좋은 시기인 것 같아. 오히려 요즘에는 이보다 더 좋은 때가 나중에는 없을 수도 있겠다. 하고 싶은 거 맨날 다 하고 그런 출퇴근 시간도 자유롭고. 연애 빼면 진짜. 하하. 이때가 제일 만나기 좋은 것 같은데 근데 뭐 없으니까.


- 너무 부러운 말이다. 가장 좋은 시기일 수도 있는 지금을 즐길 수 있으면 좋겠네. 그럼 마흔 정도 되면 뭘 하고 있을 것 같아?
진짜 서울역 길거리에 있거나 억만장자가 되거나. 근데 또 그전에 결혼하면 모르지. 그냥 뭐 안정적인 외국계 다닐 수도 있고.
 

- 중간이 없구나. 하하.  어디 있을지 모르는 마흔 살의 너한테 한마디를 한다면?
이런 초심을 잃으면 안 돼. 맨땅에 헤딩하는 정신. 그러니까 요즘에 유튜브 같은 거 보면 나이 7-80대도 로스쿨 준비하고. 이런 배움의 마음이 꺾이면 인생이 힘들어지는 것 같아. 그런 걸 잃지 않았으면 좋겠어.





주원이는 '이보다 더 좋은 때가 있을까?' 싶을 만큼 찬란한 서른을 보내고 있었다. 주원이에게 서른은 별로 잃을 게 없기에 실패를 기꺼이 감수할 수 있고, 도전을 즐길 수 있는 시기이다. 그저 레슬링만 하고 자전거만 타는 줄 알았던 주원이가 '지금 할 수 있는 게 뭘까', '더 재밌는 건 뭘까'에 대해 끊임없이 생각하는 것이 인상 깊었다.

그리고 나의 서른에 대해서도 돌아보게 되었다. 너무나도 좋은 이 시기를 나는 불안한 마음 때문에 못 누리고 있는 건 아닐까? 생각이 너무 많은 나와 달리 주원이의 삶은 심플해 보여 부럽기도 했다. 10년 뒤 성공한 CEO들을 모아놓은 잡지 속 칼럼과 서울역 길거리 중 어디에서 그를 보게 될까? 어디에 있어도 "허허, 그렇게 됐어" 라며 특유의 표정을 지을 것 같은 주원이를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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