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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드니맘 May 09. 2023

나의 봄, 그리고 마늘종

봄이다.

봄! 푸르른 산 중간중간 분홍, 빨강, 노랑 색색을 자랑하는 꽃들이 살포시 고개를 드는 계절. 모두들 그 아름답고도 감동적인 순간을 눈에 담기 위해 바쁜 계절. 그 계절에 우리 부모님은 전화로 안부를 여쭤보는 게 죄송할 만큼 바쁘시다. 가을에 심어 둔 마늘이 자라 마늘종을 뽑아주어야 하고, 모내기를 위해 모판을 준비해야 하고, 옥수수를 심어야 하며, 양파를 수확해야 하기 때문에....


언젠가, 매번 바쁜 부모님을 걱정만 하다가 직접 도와드려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부모님 댁으로 내려갔다. 그런데 처음부터 내가 농부의 딸이었던 것도 아니고, 주말농장 따위를 꾸려본 적도 없으니, 내가 뭘 할 줄 알았겠는가. 그저 도와드리겠다는 마음 하나만 앞세운 발걸음이었다. 그래서 부모님은 제대로 부려먹지도 못하시고, 멀리 사는 자식이 내려왔다며 이것저것 챙겨주시느라 더 바쁘기만 하셨더랬다.




마음이 불편했던 그때, 엄마의 한마디.

"엄마 집 왔으면 좀 쉬었다 가라. 뭐 하러 일을 하려고 해. 정 할 게 없으면 마늘밭에 가서 너네 먹을 마늘종이나 좀 가져가라." 오호라! 마늘밭!! 나도 드디어 할 일이 생겼다는 사실에 뭘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묻지도 않고 그길로 마늘밭으로 향했다. 눈앞에 펼쳐진 너른 밭을 보고 조금 걱정을 하기도 했지만, 나이 많으신 부모님도 하시는데 젊은 내가 못할 리 없다는 근거 없는 자신감으로 발을 내디뎠고, 마늘종을 뽑기 시작했다.


나는 젊었다. 그리고 내 귀에는 에어팟이 있었고, 노동요에 버금가는 신나는 노래를 들을 수 있었다. 게다가 마늘종은 쏙쏙 뽑는 손맛도 있었다. 한 고랑, 한 고랑 그렇게 뽑다 보니, 어느새 세 번째 고랑의 반까지 해치우고서야 허리를 폈다. 뽑은 마늘종을 가지런히 정리해서 포대에 담고 집으로 갔다. 그때의 내 기분을 비유하자면, 개선장군이 된 느낌? 그렇다. 그렇게 위풍당당한 느낌이었다. '엄마! 내가 이만큼이나 했어!'라고 소리치고 싶은 것을 꾹꾹 누르고, 실룩실룩 올라가는 입꼬리를 밑으로 당겨 내리면서 대문을 넘어서는 순간, 아빠가 눈을 크게 뜨고 짐을 받아 주셨다. 아빠에게 첫 번째 포대를 넘겨드리고, 차에서 두 번째, 세 번째 포대를 계속 꺼내는데, 아빠가 물어보셨다. "니 이거 뭘로 잘랐노? 뽑았디나?"


응? 무슨 질문이 이렇지? 해마다 내가 먹을 마늘종은 내가 뽑았는데... 뽑았냐니? 무슨 말인지 몰라 어리둥절하고 있으니 저 멀리서 엄마가 와서는 "니 먹을 것만 뽑으라 했디!"라며 말을 보태신다. 하하. 사정은 이러했다. 마늘종을 좋아하는 편이 아니었던 나는 해마다 쥐꼬리만큼 가져가기 때문에 그냥 뽑으라고 했지만, 원래 마늘종은 자르는 것이고 마늘종을 뽑으면 그 구멍에 이슬이나 빗물이 들어가 마늘이 썩는다는... 하... 하하.. 하...





도와드리기는커녕 한 해 농사를 망칠 뻔한 딸. 그럼에도 부모님은 (포기하셨던 걸까?) 웃으시면서 "이거 다 우짜노! 장아찌라도 담아서 가져가라, 우리도 다 못 먹는다." 하시며 자식 먹을 먹거리를 만드시느라 다시 바빠지셨다. 그 해 내가 먹었던 마늘종은 아마 세상에서 가장 비싼 마늘종이 아니었을까? 마늘밭 두 고랑하고도 반에 해당하는 만큼의 마늘과 맞바꾼 마늘종이었으니...


그때부터였다. 남들은 봄이 되면 벚꽃을 떠 올리고, 냉이며 방풍나물이며 봄나물을 떠올리지만, 내게 봄의 상징은 마늘종이 되었다. 마늘종 장아찌도, 마늘종 고추장 무침도, 마늘종 볶음도... 봄이 되면 줄줄이 생각난다. 봄이 되면 생각나는 음식, 그 끝에 우리 부모님의 얼굴이 함께 떠오른다. 이번 주말, 부모님 댁에 다녀와야겠다.


"엄마! 마늘종 좀 뽑아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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