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로 제주도를 한 바퀴 돌다, 허름한 옷차림의 할머니 한 분을 만났다.
나와 다른 삶을 사셨을 듯한 할머니가 나를 멈추게 한다.
6월이지만 벌써 태양이 뜨겁다. 반팔아래 보이는 피부는 이미 벌겋게 달아올랐다. 그 뜨거운 태양 아래 나무에 기대어 앉은 할머니는 귤을 굽고 계셨다. 이상해 보였다.
더운 날씨에 그것도 겨울에나 먹을 법한 귤을 굽는 모습은 나에겐 특이한 광경이었다. 자전거를 세우고 멍 때리 듯 자신을 바라보는 나를 보며 할머니는 아무 말 없이 무심한 듯 귤을 내민다. 타버린 겉껍질은 벗겨진 채, 무심한 듯 내밀어진 손끝의 귤은 발가벗겨진 채였다.
나도 아무 말 없이 귤을 집어 입속에 넣었다. 생각보다 뜨겁지는 않았지만 이런 낯선 상황에서 건네진 낯선 귤에 대한 예의로 '오 맛있는데'가 나올 만도 하건만 이건 모지 '맛없다' 아니 '무' 맛이다. 이걸 왜 먹나 싶었지만 '음 맛있네요'라고 친절한 척 할머니에게 건네며 '귤을 왜 구워 먹어요?' 묻는다. 하귤이라고 하셨는데, 하귤을 구웠다는 건지 여름에 먹는 귤이 따로 있다는 건지 서로 자세한 소통은 되지 않은 채 대화는 끝이난 듯하다.
대뜸 '혼자완?' 물으신다. '네' 하니 '여자 혼자 겁도 없지' 라며 나를 힐끗 보신다.
각자의 할 일을 하겠다는 듯 나는 관광지 입구를 살펴보고 자전거와 묶여있는 가방은 어쩌나 쳐다보고 있는 내게 또 한 번 무심한 듯 들어갔다 오란다. 자전거는 두고, 산신령 같은 기운을 느끼며 나도 무심하게 '네' 하고 들어간다. 관광지를 돌아보고 나오니 여전히 앉아 계신 할머니에게 감사하다고 인사하고 가려는데, 할머니도 주섬주섬 짐을 챙기며 저녁은 먹었냐고 묻는다. 먹으러 갈까 생각 중이라고 하니 따라오란다. 모지 이 시크함은 '따라가도 되나'라는 생각을 먼저 하겠지만, 전혀~ '아싸~ 이게 왠열~~'
멀지 않은 거리를 뒤따라 걸으며 제주도의 전통가옥 같은 집을 예상하며 신이 났다. 그러나 현실과 이상은 좀 멀어 보였다. 너무도 익숙한 1층 벽돌집이 눈앞에 '딱', 도시 골목 어느 동네에나 자연스럽게 있을 만한 주택으로 들어가신다.
아무렴 어때 저녁 주신다는데, 양파김치라는데 정말 생양파에 고춧가루 얹은 듯한 모습의 양파김치와 나물을 주셨다.
제주도 한 달 살기 중인 나는 노형동에 오피스텔을 얻어놓고 자전거로 제주도를 한 바퀴 돌고 있다. 보통 2박 3일이 걸린다고 하는데 난 오늘이 3일째이고, 이제 성산을 지났다. 자전거를 버리고 싶은 마음이지만 빌린 자전거를 난 이고라도 가야 할 판이다. 너무도 지쳐있는 나에게 할머니는 최고의 저녁을 주셨고, 식당에서는 볼 수 없었던 아버지 고봉밥그릇은 잊을 수 없는 추억이다.
여행하던 나는 지금 멈추어있다.
멈춘듯한 이 순간이 오히려 성장하는 아이들을 위한 시간이며, 무언가의 멈춤은 또 다른 무언가의 성장으로 이어지는 게 아닌가 생각해 본다.
그때와 같은 멈춤도 또 한 번 경험하고 싶다.